한계령이나 구룡령을 넘어 동해로 가면
바다를 보고 싶은 급한 마음에 남대천을 따라 곧바로 바다로 향하게 되며
때문에 항상 낙산 해수욕장에서 가장 먼저 바다를 만나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급한 마음으로 양양의 낙산 해수욕장에 들린 것이 벌써 몇번째라서
3월 8일 동해를 찾았을 때는 낙산을 지나쳐
바로 그 위의 설악 해수욕장에서 처음으로 걸음을 멈추었다.
낙산 해수욕장과 달리 작고 아담해서 호젖하게 걸어보기에 좋았다.
설악 해수욕장의 한가운데 서면
왼쪽으로 등대 하나가 보인다.
등대가 있는 곳에 작은 항구가 하나 있다.
항구의 이름은 후진항이다.
등대는 밤이면 이 작은 항구로 들어올 배의 길을 밝혀줄 것이다.
배의 길은 등대가 밝혀주지만
파도의 길은 바람이 안내한다.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면
멀리 산위로 낙산사의 부처님 상이 보인다.
저 산너머가 바로 낙산 해수욕장이다.
원래는 나무가 무성한 산이었는데
어느 해 이곳을 휩쓸고 지나간 화마에 나무가 모두 타서
지금은 민둥산이 되어 버렸다.
나무가 그대로 있었다면
올여름 바다에선 푸른 파도가,
산에선 나무의 녹색 파도가 일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산은 나무의 바다인 셈이다.
바닥을 드러낸 나무의 바다는 마음을 아프게 한다.
저 멀리 바다 위로 등대가 하나 떠 있고,
하늘엔 구름이 떠 있다.
구름도 길을 갈 때
등대를 표지 삼아 방향을 묻기도 할까.
어어어, 또 밀려온다.
바다가 양팔을 벌려 스윽 파도를 일으키고
바닷가의 바위를 향하여 밀려오기 시작한다.
바위가 바짝 긴장한 느낌이다.
바위는 또 바닷물을 하얗게 뒤집어 쓰셨다.
바닷가에 자리를 잡으면
파도 소리에 귀를 적시는 것은 좋은데
파도의 장난을 피할 수가 없다.
파도를 유심히 살펴보았더니
파도가 몸을 세우고 일어설 때
벌써 작은 물알갱이들이 그 위에서
바람을 타고 하얗게 날아오르고 있었다.
바닷물이 밀려올 때마다
물이 물을 타고 논다.
바람이 지나간 자리엔
모래밭에도 물결이 새겨진다.
바람은 모래밭에 물결을 새기기도 하지만
또 모래밭에 새겨놓은 누군가의 발자국을 지우기도 한다.
한 사람의 발자국 같지는 않고
둘이 걸어간 발자국 같았다.
둘이 걸어간 발자국엔 사랑도 함께 새겨진다.
바람은 지나갈 때마다 그 발자국을 조금씩 조금씩 지워간다.
사실 그건 지우는 것 같아도
알고보면 지우는게 아니라 모래로 덮어두는 것이다.
모래밭에 발자국을 새겨놓은 사람들이라면
다시 그 곳을 찾는 어느 날,
그때는 자신들이 발자국을 남겼던 곳을 어림잡아
그곳의 모래를 살짝 걷어내볼 일이다.
그럼 그들이 발자국에 실었던 그때의 사랑이
모래 속에 그대로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조개껍질엔 오랜 바다의 추억이 새겨져 있다.
모래 한가운데 버려져도 바다의 추억은 여전하다.
모래에게도 추억이 있다.
아마도 모래의 추억을 아득하게 거슬러 오르면 거대한 바위를 만나게 될 것이다.
거대한 바위는 부서지면 바닷가의 잘디잔 추억으로 흩어진다.
그러나 바닷가에선 모래가 흩어놓고 있는 그 수많은 잘디잔 바위의 추억보다
조개껍질이 움켜쥐고 있는 바다의 추억이 더 우리의 눈길을 끈다.
바닷가는 조개가 죽은 뒤에도 그 껍질에 새겨진 바다의 추억으로 살 수 있는
조개의 홈그라운드이다.
파도의 손길이 미치는 곳에 자리를 잡으면
바닷물이 밀고 올라와 바다의 추억을 촉촉히 적셔주고 간다.
추억도 너무 목마르면 갈증이 된다.
목마르지 않도록 추억의 갈증을 적실 수 있는 자리가 좋은 자리이다.
12 thoughts on “바닷가를 거닐다 – 속초 설악해수욕장에서”
바닷가와 하늘사진, 둘다 탁 트이네여
작고 아담해서 좋았던 느낌이 기억에 남은 해수욕장이예요.
작은 해수욕장이 품에 안기는 느낌이 있어 좋더라구요.
그동안도 평안하셨겠지요.
쉬는 날 대낮인 이 시간 창밖에는 무서우리만큼 세찬 바람이 불어오고
비를 살짝 흩뿌려 놓고 햇살을 비추이고 있습니다. 사이버를 여기저기
다니다 보니 어느 곳 ‘가을소리’란 곳을 들리게 되었고 한참을 보니
어디선가 낯이 익은 이름 <김동원>이란 글이 보여 혹시나하고 열어보니
거의 한달도 넘게 들리지 못한 님의 공간이었지요. 엄청 반가웠지요.
그동안 여러곳을 다녀오셨군요.
올려주신 사진중에서도 첫번째 두번째가 가장 깊이 영혼을 뒤흔듭니다.
아련한 모국에 대한 알지도 못하는 그 무엇인가 영혼의 가장자리에
밀물이 되어 밀려옵니다. 너무나도 먼 나라와 문화가 되어버린 모국
그러나 저런 이정표를 바라볼때면 왠지 모르는 그리움과 지난날
아득한 진정 아득한 유년이 떠오르지요. 지금은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 수없는 그런 모국의 향기 저 바닷가 모래사장에 그냥 그냥
아무말도 없이 앉아 있고 싶습니다.
지독한 바람이 불어오는 창밖의 정경에 추억과 유년도 흔들리네요.
저는 잘 지냈어요.
3월에 갑자기 눈이 내리는 바람에 대관령에도 갔다가 오고…
그 바람에 지금은 좀 일이 밀리기도 하고…
바다를 보면 정말 갈증이 싹~ 가시는 것 같어^^
우리는 바다로 놀러가니까 그렇지 바닷가에 사는 소설가 얘기를 들으니 삶의 터전으로서의 겨울 바다는 말할 수 없이 혹독하다고 하더라.
하긴 시골 사람들은 서울로 구경오면, 또 서울이 좋아 보이겠지.
무엇이 좋고 나쁜게 없고 놀러다니는게 중요한 거 같기도 하고…
실례지만^^
‘숲과 나무’ 매번 느끼지만, 참 보기 좋으세요.
좋고 나쁜 게 없고 ‘놀러다니는 게 중요’하단 말씀도 완전 공감입니다. ㅎㅎ
벌써 18년째 같이 살고 있는 사이죠.
처음에는 통통이와 동워니 사이였는데
올해부터 닉네임을 바꾸고 싶다고 해서 forest와 your tree가 되었어요.
요즘은 잘 지내고 있는데 사실 서로 속도 많이 썩이고 다투기도 하고 그래요. 특히 제가 그녀의 속을 많이 썩이죠.
뭐, 산다는게 다 그런 거죠.
마냥 좋을 수만도 없고, 마냥 나쁘지도 않고.
히, 그것 역시 함께 놀러다니는 게 중요한 거 아닐까요? 헤.
저랑 언니랑도 유난히 사이도 좋고, 또 그러면서 워낙 많이 싸우고 그래요.
계속 같이 여행 즐겨다니고 하면서 지금의 ‘닭살자매’까지 왔어요.
솔직한 댓글에 반가와 주저리 떠들어 봤어요.
사진 속의 바다라면 물에 들어가도 안 추울듯한 느낌이 들어요.
(그래도 추울까죠;? ^^)
저 등대도 기억나요…
대학 첫 여름 엠티를 속초(동해안)로 강력 추천한 친구가 있었어요.
그 녀석이 우리를 크게 유혹할 수 있었던 이유는, 동해로 가면 ‘오징어회를 싸게 먹을 수 있다’였었는데… 결국은 여름은 오징어철이 아니라서 선배들이 주머니 털어가며 저를 비롯한 후배들에게 제일 싼 모듬회를 먹였더라죠.^^
몇점 먹지 못했지만 방파제에 앉아 바다보며 먹었던 그 회는 참 맛있었어요.
아… 정말 다시 가보고 싶어요~
길이 좋아져서 속초나 강릉가는데 시간이 얼마 안걸리니까 자주가게 되는 거 같아요.
인제부터 미시령 구간만 2차로구 나머지는 4차로가 되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