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바다에 가고 싶다.
특히 미시령을 넘어 속초 바다에 가고 싶다.
미시령에 올라서서 바람을 맞으면 코끗이 찡하다.
밤에 속초를 간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진고개, 구룡령, 한계령, 미시령을 골고루 넘어 속초로 갔던 것 같다.
오늘도 속초에선 아침해가 떠오르고 있겠지.
그곳 사람들에겐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겠지만
우리에게 속초 바다의 아침해는 생전 처음보는 아침처럼 다가선다.
그곳의 반복되는 무료한 일상이 우리에겐 이처럼 설레이는 아침이 될 수 있다니.
그 아침에 서면 매일보던 그녀의 느낌마저 새롭다.
아마도 밤의 어둠을 뚫고 아득바득 속초까지 가서 아침을 마주하고 싶은 것은
내가, 그리고 그녀가, 아침의 새로움에 물들기 위해서 인지도 모르겠다.
(사진은 모두 2004년 12월 22일에 찍은 것이며, 일출은 속초에 있는 영금정 등대에서 찍었다.)
어둠은 우리의 잠이다.
낮엔 일렁이며 헤엄치던 바로 그 바다가
그래서 밤이 되면 이리저리 몸을 뒤척인다.
바다도 밤이 되면 잠을 청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침은 그 잠을 깨우는 먼바다의 기지개로 시작된다.
그러니 아침에 일어나면 일단 한번 기지개를 켤 일이다.
우리가 팔을 뻗을 때
동해의 어디에선가는 그에 맞추어 태양이 기지개를 켜고 있을 것이다.
나는 바다 위에 점점이 떠 있는 배들이
도저히 고기를 잡으러 나갔다고 생각할 수 없었다.
내 눈에 그 배들은 분명 아침을 마중나간 것이었다.
구름 사이로 해가 뜨면서 아침이 시작되고,
해는 구름 사이로 우리의 아침을 엿보고 있었다.
그 순간 아침과 시선이 마주쳤다.
해가 구름 사이에서 내 눈높이에 걸려있을 때는
세상 사람들의 아침이었는데
해가 높이를 얻자 세상의 빛이 되어 갔다.
그러니까 해에게서 우리는 눈높이를 맞추면 아침이 되고,
높이를 얻으면 빛이 된다는 사실을 매일 배울 수 있다.
아침의 빛이 어느 정도 완연해지면
그때 바다의 느낌은 평화롭다.
그때의 평화는 마치 산고의 고통 뒤에 오는 평화 같다는 느낌이다.
매일 바다는 그렇게 아침을 낳고 있다.
멀리 철새들의 날개짓이 아득하게 보였다.
혹 밤새 날아 이곳을 지나치는 길이라고 하더라도
아침과 함께 할 때마다 새들의 날개짓도 힘을 얻을 것이다.
아침해는 바다에 빛의 수로를 놓는다.
그 빛의 수로에선 빛이 흐른다.
이때까지만 해도 아직 아침은 해의 몫이다.
그러나 곧 아침은 해의 것에서 바다의 것이 된다.
아침은 해에게서 바다로 내려와 푸르게 일렁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푸른 바다의 아침은 다시 갈매기의 것이 된다.
아침에 호흡하는 갈매기의 바다는 남다르다.
그리고 속초에 가면 그 모든 아침이 우리의 것이 된다.
속초에 가고 싶은 것은 아마도 그곳에선
그 모든 아침을 모두 다 호흡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