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항의 저녁

Photo by Cho Key Oak
2007년 3월 8일 속초 동명항에서

속초의 작은 항, 동명항에 저녁이 찾아옵니다.
저녁은 하루가 저무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아울러 태양이 기우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보통 갈매기는 한낮엔 바람을 타고 날거나
어깻죽지를 땀으로 촉촉히 적시면서 날개의 힘으로 날지만
저녁 때가 때면 더 이상한 바람이나 날개의 힘으로 날지 않습니다.
저녁 때가 되면 태양이 비스듬히 기울여준 빛의 사면을 타고 미끄러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낮의 빛은 그렇게 옆으로 기우는 법이 없습니다.
태양은 우리의 머리맡으로 꼿꼿이 몸을 세우고 있고,
빛들도 모두 수직으로 하강합니다.
한낮엔 어디나 훤하고 밝기 이를데 없지만
사실 알고보면 한낮의 세상은 어디나 빛의 절벽입니다.
올려다 보면 그저 아득하기만 하지요.
빛의 절벽으로 막힌 한낮엔
하늘이 빤히 보여도 너무 멀기만 합니다.
그러다 저녁이 오면
하루 종일 우리의 머리 위에서 놀던 빛이
이제 비스듬히 몸을 기울이고
우리 옆으로 길게 발을 뻗습니다.
빛이 발을 길게 뻗고 몸을 비스듬히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것은
물위로 부서지는 저녁 햇살로 시선을 옮기면 더더욱 분명해 집니다.
저녁빛은 발을 길게 뻗어 바다에 걸치고
일렁대는 바다의 느낌을 종아리 전체로 즐깁니다.
보통 발을 물에 담그면 그 느낌은 시원함으로 와닿지만
빛이 발을 길게 뻗어 바다에 담갔을 때의 느낌은 그와는 좀 달라서
반짝반짝하는 느낌입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갈매기는
저녁빛의 사면을 타고 비스듬히 미끄럼을 탈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게 아니라 빛을 타고 바다로 미끄러져 내려가는 거죠.
그건 보통 재미가 아닙니다.
아마도 빛은 곧 우리 옆에 드러누울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 어둠과 함께 잠드는 것 같아도
사실 그 어둠이란
알고 보면 눈을 슬쩍 감고 우리 옆에 드러누운 빛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저녁이 되면
어둠과 함께 잠드는 것이 아니라 매일 빛과 함께 눕습니다.
우리가 매일 밤 눕는 것을 좋아하는 것도
알고 보면 그 아득하던 빛과 이제 한 자리에 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속초의 작은 항, 동명항에 가시거든
꼭 빛의 사면을 타고 미끄러지는 갈매기들의 저녁을 구경하시고
그 날 밤 잠자리에 누웠을 때
옆을 한번 살펴보십시오.
분명 곁에 빛이 누워있을 것입니다.

Photo by Cho Key Oak
2007년 3월 8일 속초 동명항에서

28 thoughts on “동명항의 저녁

  1. 사진잘보구 갑니다..
    고향이 문곡이시군요.. 제 아버지 고향이 북면이라.
    정춘화님은 저랑같은 상동이 고향이신 것 같네요..

    먼 이국에서 글 남깁니다…

    1. 반가워요. ^^*
      오늘따라 고향 생각하다보니 ..
      동향분을 뵙는군요.
      좋은글과 사진.. 많은 위안받고 갑니다.
      감사 드릴게요.

    2. 영월에도 문곡이라고 있어요.
      북면에 있죠.
      정선이면 좋은 고향을 가지셨네요.
      결혼식에 가느라고 딱 한번 가봤네요, 정선은.

  2. 핑백: fore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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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윗 사진은 정말 예술이네요.^^
      물빛도 아름답고 나르는 갈매기하며.^^
      영목항 갔을때 생각나네요.

    2. 영목항, 영목항… 많이 들어온 항구 이름인데… 아, 우리도 가보았던 태안반도 맨 아래쪽의 그 항구네요.
      비오는 날 갔었는데 아주 좋았었죠.

    3. 받는 건 되는데 쏘는게 안돼.
      업그레이드 해야 하는데
      스킨도 손봐야 하고, 결정적으로 리턴값 처리 방법이 달라져서 안하고 있어.
      사파리에서 원활하게 쓸 수 있게 되면 그때 업그레이드하려구.

    1. 헉! 첨으로 글을 남긴다는게 글도 제대로 안 읽구선..
      사진 밑에 서명이 있구만… 죄송..ㅠ.ㅠ
      옷! 포레스트님이 이스트맨님 사모님이신가보네요…
      두분이 항상 부럽습니다.. 나는 장가나 갈수 있을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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