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서울에서 살다보니 가장 많이 접하는 곳이 서울이다.
2004년 7월 11일은 일요일이었다.
일이 끝난 나는 그날 용산에 나가 삼각대와 볼헤드를 구경했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명동에서 지하철을 내렸다.
그리고는 명동에서 광화문까지 터덜터덜 걸었다.
광화문엔 갈아타지 않고 집으로 갈 수 있는 지하철이 있다.
일 때문에 자주 나가는 곳이 광화문이기도 하지만
사진찍을 거리도 많은 곳이 광화문과 명동의 그 일대가 아닌가 싶다.
그러나 사실 서울에선 사진찍기가 쉽지 않다.
이상하게 찍어놓고 보면 사진이 잿빛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 화려한 빌딩의 미려한 자태는 분명 놀랍도록 매혹적인데
왜 잿빛 느낌이 나는지 모르겠다.
길을 묻고 길이 대답하다
(시청앞 보도)
뒤통수만 보다
(시청앞 광장)
도시의 일그러진 자화상
(세종로)
도시의 거대한 빌딩 앞에 서면
함성호의 다음과 같은 시 구절이 생각난다.
대지 면적 4,800평에 2만여 평의 비대한 부피는
어떤 가난한 이들의 추억을 뭉개고 있는가
도로와 대재벌의 사옥을 위해
우리는 우리들 그리움의 눈부신 기억들을 아낌없이 내주고 있다
이 거대한 공룡의 대뇌는
불어나는 욕망의 몸뚱이에 비례해서 커가는
이상한 진화의 변종을 보인다
–함성호, <파괴공학 – 건축사회학>에서
또다른 도시의 일그러진 자화상
(세종로)
아마 어느 한적한 시골의 연못가에 나무 한 그루가 홀로 서 있고,
그 나무가 제 모습을 물 속에 담그고 있었다면
나는 절대로 나무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란 구절을 떠올리진 않았을 것이다.
그 경우엔 아마도 연못에 비친 나무의 반영이
어떤 낭만적 구절에 실렸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도시에선 그런 낭만적 구절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왜일까?
낭만은 아무래도 식물성이 분명한 것 같다.
도시에서 낭만이 뿌리내릴 공간을 찾기 어려운 것을 보면
그런 생각이 절로 든다.
그렇다면 도시가 잿빛 느낌이 드는 것은
식물성의 부족 때문이다.
내 고향을 생각하면
그곳의 8할 이상은 식물성이다.
갑자기 식물성의 상상력이 더 그리워진다.
(헤, 이인성의 <식물성의 저항> 가운데서
식물성이란 말만 가져다 써먹어 버렸네.)
5 thoughts on “서울의 도심 한가운데서”
살며시 겨울이 왔습니다.
한강에도 눈발이 날리면 서울은 냉혹함으로 깃들겠죠.
그래도 사람들 마음은 따뜻하리라 믿고 싶습니다.
그 순간을 포착해 보고 싶은 갈망에 가슴이 답답합니다.
올해는 눈이 많이 온다고 하네요.
올겨울 내 계획은 눈이 오면 일이고 뭐고 무조건 덮어놓고 사진찍으러 간다 입니다.
작년에는 일 때문에 눈이 내려도 꼼짝 않고 일했는데 올해는 일을 무조건 접기로 했습니다. 눈만 오면. 사실 일이 절반으로 줄어서 그러는 것이긴 하지만.
너무 오랜만이예요. 잘 지내고 계시죠^^
멀리 있어도 가끔 글을 남겨주시니 아주 가까이에 있는 것 같아요.
좋은 글, 좋은 시 많이 써주세요^^
또 얼굴 뵐 때까지 추운 날씨 건강 조심하세요.
8할의 식물성인 고향. 멋진 표현인데요?^^
저도 어릴적 살았던 경기도는 9할정도의 식물성이었는데
그곳이 이젠 옛모습은 찾기 힘들정도라서 한번 가보고는
실망해서 다신 가기 싫어진거있죠.
다행히 제 고향은 강원도 산골인데다가 지금도 개발의 여지가 전혀 없어 완전히 원래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지요. 보존 정도가 아니라 더 옛시절의 자연으로 돌아가고 있어 그게 오히려 안타까울 정도예요. 다음 달에는 고향에 한번 가봐야 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