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봇대는 선들의 교차로이다. 무슨 선인지 전문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선들이 전봇대를 가운데 두고 모여들고 뻗어나간다. 어떤 사람들은 풍경을 해치는 흉물이라고 말하지만 잘 정돈된 선들의 집합은 또 그것대로 볼만하다. 선들을 타고 전기가 오고, 온갖 방송이 오고, 또 전화가 온다.
나는 어렸을 때, 강원도 산골에서 성장을 했다. 그곳엔 선이 없는 세상이 많았다. 선이 들어왔을 때 우리에게 전봇대와 그 전봇대를 타고 가는 선들은 보기 흉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문명의 도래를 알리는 선물 같은 것이었다. 이제 우리 집도 더 이상 호롱불을 켜지 않아도 되었다. 내게 호롱불의 아름다움을 포기하지 못해 끝끝내 전기가 타고 들어올 선을 거부하는 고집 같은 것은 없었다.
내 눈에 그 선들이 흉물스럽게 보이기 시작한 것은 서울에서 살고 난 다음이었다. 더 이상 내가 사는 곳이 아니었을 때 그곳은 사는 자의 불편보다 보호해야할 자연이 더 눈에 들어오는 곳으로 바뀌었다. 시골 갈 때마다 내가 가장 조심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혹시나 전봇대가 풍경을 해친다는 내 시각이 그곳에 사는 자의 사정을 외면한 결과는 아닌가 하는 점이다. 때로 자연의 보존도 그곳에 사는 자들의 희생으로 얻어질 때가 있다.
가끔 골목에서 전봇대를 올려다본다. 얼마나 많은 편리가 저 선들에게서 우리에게 주어졌을까 싶다. 그리고 그 편리는 어떤 자연보다 아름다울 수 있다. 오래 전, 강원도 산골의 우리 집에 전기가 들어올 때 내가 경험한 일이었다.
문명이 그래서 무섭다. 문명의 세상이 도래하면 편리가 아름다움과 등가의 가치를 갖는다. 편리가 아름다움은 아니다. 그러나 문명의 세상에선 그렇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