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하남의 미사역 주변은 옛날의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가 남아있질 않다. 내 말은 그만큼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는 얘기이다. 나는 이곳이 허허벌판이던 시절을 기억하고 있다. 어느날 이곳에 넓은 도로가 하나 뚫렸고 우리는 두물머리로 걸음하는 날이면 항상 그 도로를 이용해 팔당쪽으로 나갔다. 집으로 돌아올 때도 우리가 이용한 길은 그 길이었다. 차가 거의 없는 한가한 길이었다. 그 길의 양옆으로 자리한 풍경은 거의 논과 밭이었다. 그 풍경은 상당히 오랫동안 그대로 유지되었다.
지금은 논밭대신 아파트가 빼곡이 들어서 있다. 그때부터 우리는 그동안 다니던 이곳의 길을 버렸다. 다른 뜻은 없었고 길이 막히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만 알던 한가하던 옛길은 항상 차들이 붐비는 길로 바뀌었다.
이곳에 지하철역이 생기고 미사역이라 불리고 있지만 이곳은 미사보다는 미사리가 입에 붙은 이름이었다. 미사리 조정경기장의 앞쪽이다. 한동안 그곳에 횟집이 여럿 있었다. 나는 그곳의 횟집을 좋아해서 가끔 그곳에 나가 회를 한 접시 먹고 오곤 했다. 맥주집을 하던 그 동네 출신의 처자도 있었다. 맥주집의 이름은 호운광장이었다. 이웃가게에서 회를 떠다 맥주집에서 회를 먹기도 했다. 이곳의 횟집은 가락동의 번잡함이 없었다. 지금은 횟집의 자리도, 맥주집의 자리도 짐작이 가질 않는다.
미사역에서 내리면 어디가 어딘지를 모르겠다. 익숙하던 풍경이 어떤 실마리도 남기지 않고 아무 흔적도 없이 모두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지리적으로 보면 그곳은 여전히 옛날의 그 자리에 있다. 이제는 지하철로 편하게 갈 수 있기까지 하고 몇 정거장 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심리적으로 보면 마치 태평양 건너의 머나먼 도시에 온 것처럼 낯설다. 아마 이곳에서 나서 자란 사람들은 나보다 이곳이 더 낯설 것이다.
바로 지척에 아파트촌이 새로 생긴다. 가보면 태평양 건너만큼이나 먼 도시이다. 나는 아마도 김포 사람들도 나와 같은 심리적 당혹감을 겪지 않았을까 싶다. 차를 몰고 가면서 30분이나 끊임없이 이어지는 아파트촌에 놀란 것이 김포에서의 내 경험이었다. 아마도 그곳도 한때는 논과 밭이었을 것이다. 때로 옛것의 실마리를 하나도 남기지 않고 하늘에서 떨어지듯 새로운 도시가 들어선다. 가끔 지척의 도시를 아득하게 먼 태평양 건너처럼 건너가 잠시 걷다 온다. 그래도 그곳에 사진 찍을만한 것들이 많다. 너무 멀리갔다 왔는지 갔다 올 때마다 많이 피곤하다.
옛날 미사리에 호운광장이란 맥주집이 있었다. 바로 옆집에서 회를 떠다 이 맥주집에서 먹곤 했었다. 집주인이 그녀 친구의 동네 친구였다.
지금은 이 맥주집이 있던 자리도 짐작을 못하겠다.
한동안 우리가 다니던 미사리의 길가 풍경은 논과 밭이 지배했다. 가을이면 황금벌판이 아름다운 곳이었다. 지금은 모두 아파트가 빽빽히 들어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