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이름이 장미와 아주 잘 어울릴 때가 있다. 독일 장미 람피온이 그렇다. 람피온은 우리의 초롱과 같은 등을 말한다. 이름이 등을 뜻한다는 것을 알고 나면 장미 람피온이 등과 잘 어울리는 꽃이란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그러면 그때부터 람피온은 꽃밭을 작은 등으로 가득 채운다. 프랑스 장미 프린세스 드 모나코도 그렇다. 이름은 모나코 왕비란 뜻이며, 그 왕비는 미국의 여배우 그레이스 켈리이다. 장미를 보며 그레이스 켈리를 꽃에 겹쳐보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장미가 그 이름과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일본 장미 탄초가 그렇다. 설명에 의하면 탄초는 두루미를 가르킨다고 한다. 두루미의 머리에 붉은 부분이 있는데 그 부분을 연상시키는 것이 탄초란 것이다. 두루미를 찾아보면 정말 머리에 붉은 부분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두루미란 이름에서 아무도 그 붉은 부분을 떠올리질 않는다.
일본의 사정은 다르다. 일본에서 두루미는 단정학(丹頂鶴: 단쪼스루)이란 이름으로 불린다. 정수리가 붉은 학이란 뜻이다. 이름만으로 보면 탄초라는 장미의 이름은 일본에선 곧바로 두루미를 연상시킬 수밖에 없는 이름이다. 일본에선 머리 부분에 붉은 반점이 있는 잉어도 탄초라고 부른다. 영어로 봐도 두루미에서 장미 탄초를 떠올리는 일은 자연스럽다. 두루미는 영어로 red-crowned crane, 즉 붉은 왕관을 쓴 학이다. 영어명은 장미 탄초에서 곧바로 두루미를 떠올리게 해준다. 이렇게 이름의 연유를 파고 들어 멀리 일본과 미국에서 두루미를 가리키는 이름을 알고 나면 그제서야 장미 탄초는 자연스럽게 두루미를 불러오는 이름이 된다. 장미 꽃밭에선 길을 돌아 일본과 미국을 거쳐와야 장미 탄초에서 두루미를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