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의 영화 <헤어질 결심>

아이폰 캡쳐 화면
영화 <헤어질 결심>의 입장권이다

•개봉 첫날 봤다. 영화도 시간이 가면서 식어간다. 개봉 첫날은 영화가 가장 따끈할 때이다.

•박찬욱 영화는 빼놓지 않고 모두 봤다. 이제 내게는 이 영화가 그의 최고 걸작이다.

•한국 영화 맞나 하면서 봤다. 영화는 프랑스 영화의 느낌이 너무 강했다.

•예술은 현실을 뒤집는다. 현실에선 좋은 남자 만나 가정을 꾸리고 알콩달콩 사는 것이 사랑의 궁극이지만 예술은 그것이 사랑으로 포장된 위선이 아닐까 되묻게 한다. 그러면서 사랑을 사람을 여러 명 죽인 살인자에게서도 찾아낸다. 그게 가능할까. 영화를 보면서 우리는 그게 가능하다고 설득당한다. 물론 영화의 전제를 잊지 말아야 한다. 그 살인자가 탕웨이여야 한다는. 박해일이 탕웨이에 빠져들 때 사실은 우리도 탕웨이에 빠져든다. 영화 속의 사랑은 남이 해도 나의 늪이 될 수 있다. 늪은 위험한 것이다. 그래도 영화에는 러닝타임의 안전장치가 있다. 그 장치 덕에 우리는 영화가 끝나면 어쨌거나 그 늪에서 벗어난다.

•사랑이란 박해일이 대사를 잃고 15초 동안 탕웨이에게 빠져드는 것이다. 사랑의 명연기란 그렇다.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사랑은 놀라운 것이다. 사랑은 죽음이 되어 그의 미결이 됨으로써 완성되기도 한다. 미결이니 평생 그가 찾아헤매는 사랑이 될 것이다.

•사랑은 심장을 울리는 일이다. 둥, 둥둥, 둥둥둥. 심장은 점점 더 크게 울린다.

•현실에선 폭력을 행사하는 남편도 죽이면 안된다. 현실의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그를 죽일 수가 없다. 죽이는 경우가 있다고 해도 그것이 허용되진 않는다. 이상한 것은 어쩌다 죽이는 경우, 그 살인이 치밀하면 치밀할수록 우리가 더 강력한 처벌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것이 현실의 세상이다. 영화는 그 현실을 버리라고 우리를 유혹한다. 그러면서 함께 사랑에 빠져보자고 한다. 그리고 우리가 그 영화의 유혹에 넘어가면, 아니 사랑의 유혹에 넘어가면 이제 살인자는 법의 심판이라는 현실에서 벗어난다. 그럴 수밖에 없다. 우리가 이 전환, 그러니까 법대신 사랑을 선택하는 이 전환을 통하여 법이 정의가 아니라 사랑의 목을 조이는 올가미라는 사실을 깨닫기 때문이다. 현실의 우리는 모두 사랑을 버리고 법을 산다. 법의 올가미로 사랑의 목을 조이고 사는 세상이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는 얼마나 숨이 막히겠는가. 영화에서 우리는 그 올가미를 벗어던지고 잠시 사랑의 세상을 산다. 우리는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숨쉰다.

•영화는 죽어 마땅한 놈과 그래도 죽여선 안된다의 사이에 우리를 세워놓는다. 문제는 죽어 마땅한 놈을 죽인 살인자가 탕웨이란 것이다. 우리는 살인자와 사랑에 빠지고 만다. 가끔 우리의 세상에선 죽어마땅한 놈을 죽인 여자들이 실제로 나타난다. 영화는 내게 속삭인다. 어떤 여자가 죽어마땅한 놈을 죽였을 때는 네가 영화 속에서 사랑에 빠졌듯이 그 여자와 사랑에 빠져야 한다고.

•잊지 못할 마지막 장면이었다. 여자는 바닷가에서 죽고 바다는 바닷가로 휩쓸고 들어와 그녀를 바다에 품는다. 그것으로 그녀는 바다가 된다. 남자는 그 여자를 찾아 바다를 헤매고 다닌다. 발밑에 두고도 남자는 여자의 이름을 애타게 부른다.사랑은 때로 본인들도 모르게 비극적으로 완성된다.

•영화를 혼자 보려고 영화표 한 장을 예매했다. 그런데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다. 오늘 이 영화 같이 보자고 했다. 그러자고 하고 내가 예매한 표는 취소했다. 서로 시간을 조율한 뒤 그녀가 표를 끊고 내게 시간을 알려주었다. 영화관에서 만나기로 했다. 잠시 뒤 다시 연락이 왔다. 저녁에 회의가 하나 있는데 그것을 까먹었다는 것이었다. 일정은 다음 날로 미루어졌다. 그러자고 했다. 잠시 뒤 다시 또 연락이 왔다. 그냥 오늘 10시 10분 영화보자고 했다. 헤어질 결심이 쉽지 않구나 싶었다.

•영화를 보고 있는데 누가 자꾸 문자를 보냈다. 전화도 했다. 확인도 안하고 껐다. 나는 문자도, 전화도 거의 오지 않는 고립된 사람이다. 나중에 보니 딸이었다. 딸의 방해를 뚫고 영화에 집중하기는 처음이다.

•영화를 본 날이 달의 마지막주 수요일이어서 영화를 7천원에 봤다. 처음 알았다. 달의 마지막주 수요일은 문화의 날이어서 어떤 영화이든 7천원이라고 한다. 다른 날에 보면 비싼 좌석의 경우 1만2천원이다. 물론 어떤 관람료를 지불하든 <헤어질 결심>은 돈이 아깝지 않은 영화이다.

•둘이 봤지만 혼자서도 보고 싶다.

•한 다섯 번 정도 보고 싶다.

•이 영화엔 사랑이 도처에 있다. 사랑은 한번 봐선 알 수 없을 때가 허다하다. 심지어 이 영화의 두 주인공도 마찬가지이다. 때문에 여러 번 영화를 보면 아마도 영화를 볼 때마다 보지 못했던 사랑을 보게될 수 있다. 사랑은 지나가고 나면 그 사랑이 시작된 시점은 물론이고 방금 전의 과거로도 돌아가기가 어렵다. 영화는 그렇질 않다. 다시 보면 사랑이 시작되던 지점으로 얼마든지 돌아갈 수 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몇 번 다시보고 싶다는 얘기이다.

3 thoughts on “박찬욱의 영화 <헤어질 결심>

  1. 동일한 부분을 탕웨이에게 빠져든 장면으로 생각했다. 확인받고자 댓글 적은 것 같기도 해요. 저에게도, 둘이 봤지만 혼자서도 보고 싶은 영화라 넷플릭스 올라오기만 기다린 기억이 나요. ㅎㅎ 답글 감사합니다. 많은 도움 되었습니다.

  2. 안녕하세요. 좋은 글이 꾸준히 많은 덕에 가끔 들르는 팬입니다.
    헤어질 결심 영화는 ‘세련되게 풀어낸 옛날영화’같은 느낌에 인상적으로 보았기 때문에 게시글을 눌러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조그만 질문 하나만 드려도 될까요?
    ‘사랑이란 박해일이 대사를 잃고 15초 동안 탕웨이에게 빠져드는 것이다.’ 이 부분이요, 동원님이 말씀하시는 부분은 영화 중 어떤 15초 일지 궁급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박해일의 공백은, 사실 본인만 똑바로 인지하지 못했을 뿐 탕웨이의 등장부터 그녀에게 이미 발 정도는 담갔다고 생각하거든요. 동원님의 15초가 궁금해져 댓글 처음 남깁니다.

    1. 15초를 제가 젠 것은 아니구요, 박해일이 탕웨이를 처음 만나서 “패턴을 좀 알고 싶은데요”라고 묻기 전에 침묵이 15초간 흘렀다는 기사를 봤어요. 저는 그게 그렇게 길었나 싶더라구요. 아주 자연스럽게 빠져들었다는 느낌이었어요. 원래 침묵이란 것이 처음보는 사이에는 아주 어색한 것이거든요. 그런 건 사랑할 때나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 15초를 사랑에 빠진 시간으로 봤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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