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단산에는 한 서너 번 간 것 같다.
집에서 가까운 하남시에 있는 산이다.
그 중에서 카메라를 갖고 올라가 사진을 찍은 것은 두번이다.
한번은 2004년 8월 26일이었고, 또 한번은 같은 해 9월 6일이었다.
서울권에 있다보니 항상 사람들이 너무 붐빈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공교롭게도 사진을 찍으러 올라간 두 날 모두
정상에 올랐을 때는 날이 많이 흐렸다.
올라가는 길.
올라가는 길은 더욱 아득해 보인다.
중간의 약수터쯤에 이르면
나무들 사이로 멀리 하남시의 아파트촌이 내려다 보인다.
그러나 이쯤에 이르면 벌써 눈의 반이 산으로 채워진다.
아니 이때쯤 마음의 절반이 산으로 채워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산을 찾고, 바다를 그리워하는 것은
산을 오르거나 바다에 가면
우리 마음에 산이 채워지거나 바다가 가득해지기 때문인지 모른다.
놀라운 것은 바쁘거나 혹은 무료한 일상이 우리의 마음을 점거하면
몸이 무거워지나
우리의 마음을 산이나 바다로 채우면
몸이 가벼워지고 또 즐거워진다는 것이다.
자연의 신비가 아닐 수 없다.
검단산의 약수터.
물에 목마른 자들에겐 물을 주며,
시간에 목마른 자들에겐 시간을 알려준다.
오늘은 누군가의 지팡이가 잠시 이곳에서 휴식을 청하고 있다.
나무는 사람들이 다리의 피곤을 달랠 수 있도록
세 개의 줄기 중 하나를 내주었다.
때로 숫자는 마술을 부린다.
안내판에서 정상이 120m 남았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
풀렸던 다리의 힘이 다시 솟는다.
사람들은 골인 지점에서 가장 힘든 것이 아니라
사실은 골인 지점이 눈앞에 보이면
그 순간부터 그간의 피로를 모두 잊는다.
안내판의 120m라는 수치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제 정상에 다 오른 것이나 진배없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그것은 ‘이겨라’의 응원이 아니라
‘이겼다’의 응원이다.
그러니까 아직 정상에 오르지도 못했는데
벌써 정상에 오른 기쁨을 미리 당겨다 맛볼 수 있도록 해준다.
그러니 검단산에 오를 때는 항상 이 마지막 표지판 앞에서
그 섣부른 기쁨을 먼저 맛볼 일이다.
그러면 검단산을 오를 때의 즐거움과 기쁨을 두 배로 맛볼 수 있다.
보통 산은 정상까지 나무들과 동행하는 수밖에 없다.
나무들과 동행하며 산을 오르면
중간에 뒤를 돌아보아도 내가 올라온 길의 자취를 짐작하기 어렵다.
무성한 나무들이 그 길을 묻어버리기 때문이다.
검단산도 그 점은 마찬가지이지만
특이하게 중간에 잠깐 휑하니 빈 공터를 한번 거쳐갈 때가 있다.
그곳이 지금 저만치 내려다 보인다.
내가 올라온 자취를 잠깐 엿볼 수 있다는 것은
검단산을 오를 때 맛보는 유다른 즐거움이다.
가끔 그렇게 지나온 자신의 자취를 돌아보는 것도 즐거움이 될 수 있다.
검단산의 정상에서 내려보면
세상은 내게 남다르다.
왜냐하면 동서남북의 어디나
내가 떠나고 돌아왔던 길의 추억이 서려있기 때문이다.
지금 저 길은 내가 양평 갈 때 타고 가는 길이다.
나는 저 길이 생기기 전에는 그 아래쪽의 옛길을 따라
구불구불거리며 양평에 갔었다.
정상에 올라 내려다 보면
양평길이 내 마음을 싣고 달려간다.
이곳은 퇴촌 방향이다.
양평길의 강건너 맞은 편인 셈이다.
이곳이 비포장이던 시절부터 나는 그녀와 함께 이 곳을 드나들었다.
지금은 모두 말끔하게 포장이 되어 있다.
아는 분이 퇴촌에 집을 갖고 있어 가끔 들린다.
미사리 조정경기장이다.
그녀와 딸을 데리고 간 적이 있다.
그때 자전거를 싣고 가서 탔었다.
중부고속도로의 톨게이트이다.
고향에 갈 때마다 거쳐가는 곳이다.
나에게 중부고속도로는 고향가는 길과 동의어이다.
그래서 다른 톨게이트와 달리 나는 이곳에 남다른 정을 느낀다.
덕소의 아파트들.
한강의 조망권이 좋고 고급아파트라 무지비싸다.
아는 사람이 살고 있어 몇 번 놀러갔었다.
팔당댐.
지금은 건너다니지 못하지만 예전에는 다리 역할을 겸했었다.
그때 몇번 건너다녔다.
홍수나서 수문을 열면 구경가곤 한다.
팔당대교.
동해에 갈 때면 항상 이 다리를 건너 국도를 타고 미시령이나 한계령을 넘어간다.
서울로 돌아오는 시간이 해질녘에 맞추어지면
이 다리에 걸리는 석양이 눈물나도록 아름다울 때가 많다.
다리를 건너면서 즐기는 붉게 노을지는 서울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곤 한다.
내게 검단산은 정상에서 내려보며 많은 추억을 되새김질 할 수 있는 산이다.
다른 산들과 달리 그 아래쪽에 내가 떠나고 돌아왔던
아주 낯익은 길들이 있다.
그 길을 떠나고 돌아올 때 나는 항상 검단산을 지나쳐 그 날의 길을 간다.
그리고 검단산에 올랐을 땐
그 길을 내려다보며 길의 추억에 잠긴다.
4 thoughts on “검단산과 길의 추억”
우리 동네에 오셨군요.^^
덕소, 퇴촌마냥 하남에도 아는 사람 집 하나 만드시죠.
하남에 사시는가 보군요. 그럼 검단산에 자주 올라 가시겠어요. 거기도 안가본지가 꽤 오래 된 것 같네요. 언제 한번 얼굴 보지요, 뭐. 지난 주에 이상진 선생님이랑 김형준 선생님이란 같이 저녁 먹기는 했는데… 다들 사람들이 너무 좋아서.
“이 다리에 걸리는 석양이 눈물나도록 아름다울 때가 많다.”
“그 길을 내려다보며 길의 추억에 잠긴다.”
이 곳에 대한 추억은 없지만… 괜히 울고 싶어지는군요. ㅠ.ㅠ
한번은 이 다리에 걸어 올라가서 서울쪽의 야경을 찍은 적이 있었는데 바람이 어찌나 세게 불던지 너무 무서웠던 적이 있어요. 매일 차타고 건너다니다 딱 한번 걸어서 올라갔었죠. 아무래도 서울을 떠나고 돌아오는 다리라서 낭만이 있어요. 그나저나 밤샌 거예요? 나의 그녀도 하는 일이 책편집이라 한달에 한두 번은 밤을 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