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종종 꿈이란 게 나아닌 다른 무엇인가가 되고 싶은 욕망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가령 민들레는 민들레를 버리고 다른 무엇인가가 되고 싶은게 민들레의 꿈이고,
오리는 또 오리를 버리고 다른 무엇인가가 되고 싶은게 바로 오리의 꿈이지 않을까 싶다는 거죠.
민들레가, 오리가, 혹은 내가
민들레를, 오리를, 그리고 나를 버리고
나 아닌 다른 무엇인가를 꿈꾸는 것,
그게 바로 꿈이지 않을까 싶어요.
이유는 사실 아주 단순합니다.
민들레가 민들레로 살고, 오리가 오리로 살고, 또 내가 나로 사는 게,
거의 항상 비슷하기 때문이죠.
나는 지난 해도 나였고, 올해도 나이고, 또 분명 내년에도 나일 거예요.
매해가 비슷하고, 매일이 비슷하면 살아있어도 마치 굳어 있는 듯하고,
내가 나로 굳어 있는 듯한 느낌이 들면 삶이 따분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민들레나 오리가 될 수도 없고,
또 민들레가 오리나 내가 될 수도 없는 노릇이죠.
하지만 꿈은 실제로 무엇이 되는게 중요한 건 아닌 것 같아요.
사실 우리는 그릇과 같아서 끊임없이 비우고 담아내는게 가능하단 생각이 듭니다.
우리에게 담긴 스스로를 비우고
무엇인가 다른 것을 얼마든지 담아낼 수 있다는 얘기예요.
그런 생각 때문인지
올봄에는 은행나무에서 솟아나는 잎들을 살펴보다가
나는 은행잎에 담긴 나비의 꿈을 엿보았습니다.
그 나비의 꿈을 본 순간,
은행나무는 온통 푸른 나비로 가득찬 나비의 세상이었죠.
항상 굳고 단단한 나무를 가득채워 묵묵히 한해를 살던 은행나무는
올해는 나비의 꿈을 품더니
그 나무를 모두 비우고, 꽃이 되어 버렸습니다.
나비들이 저렇게 몰려든 것을 보면
은행나무가 나무가 아니라 꽃인게 분명할 테니까요.
올가을, 아마도 저 나비들은 눈부신 노란빛으로 성장을 한 뒤엔
바람 속을 우르르 날아올라 집단비행에 나설 것이 분명합니다.
그 노랑나비의 집단 비상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군요.
가끔 우리들이 나를 비우고
나아닌 다른 무엇인가로 나를 채우고 싶은 것도
바로 이와 같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은행나무가 품은 나비의 꿈을 엿본 나는
매해 그냥 은행나무로 지나쳤던 그 나무 아래서
올해는 노랗게 날아오를 나비들의 가을 비상을 머리 속에 그려보며
그때마다 한껏 기대감에 부풀고 있습니다.
요런게 아마도 꿈의 좋은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7 thoughts on “나비의 꿈”
나는 같은 은행나무를 보면서도 은행나비의 꿈은 보지 못했는데…ㅎㅎ
그게 나도 올해 첨봤다.
좀 찬찬히 들여다 봐야 보이더라.
저 은행나비(제가 그냥 붙였어요)가 가을이 되어 노란 날개짓을 펼치면,
가을빛이 노랗게 물들겠죠?
* 이런… 은행이 먹고 싶어졌어요. ^^;
그럼 이제부터 은행은 은행나비의 알!
은행나비는 노랑나비의 전신^^!
완연한 가을날, 찬찬히 비상하는 노랑나비들의 몸짓
생각만 해도 씨익 미소가 지어져요~
실제로 가을에 날을 잘 잡아서 남이섬에 가면
그런 광경을 볼 수가 있다는 것 아니겠어요.
거긴 요새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그게 좀 흠이긴 하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