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의 꿈

Photo by Kim Dong Won
2007년 4월 26일 우리집 마당의 은행나무에서

난 종종 꿈이란 게 나아닌 다른 무엇인가가 되고 싶은 욕망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가령 민들레는 민들레를 버리고 다른 무엇인가가 되고 싶은게 민들레의 꿈이고,
오리는 또 오리를 버리고 다른 무엇인가가 되고 싶은게 바로 오리의 꿈이지 않을까 싶다는 거죠.
민들레가, 오리가, 혹은 내가
민들레를, 오리를, 그리고 나를 버리고
나 아닌 다른 무엇인가를 꿈꾸는 것,
그게 바로 꿈이지 않을까 싶어요.
이유는 사실 아주 단순합니다.
민들레가 민들레로 살고, 오리가 오리로 살고, 또 내가 나로 사는 게,
거의 항상 비슷하기 때문이죠.
나는 지난 해도 나였고, 올해도 나이고, 또 분명 내년에도 나일 거예요.
매해가 비슷하고, 매일이 비슷하면 살아있어도 마치 굳어 있는 듯하고,
내가 나로 굳어 있는 듯한 느낌이 들면 삶이 따분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민들레나 오리가 될 수도 없고,
또 민들레가 오리나 내가 될 수도 없는 노릇이죠.
하지만 꿈은 실제로 무엇이 되는게 중요한 건 아닌 것 같아요.
사실 우리는 그릇과 같아서 끊임없이 비우고 담아내는게 가능하단 생각이 듭니다.
우리에게 담긴 스스로를 비우고
무엇인가 다른 것을 얼마든지 담아낼 수 있다는 얘기예요.
그런 생각 때문인지
올봄에는 은행나무에서 솟아나는 잎들을 살펴보다가
나는 은행잎에 담긴 나비의 꿈을 엿보았습니다.
그 나비의 꿈을 본 순간,
은행나무는 온통 푸른 나비로 가득찬 나비의 세상이었죠.
항상 굳고 단단한 나무를 가득채워 묵묵히 한해를 살던 은행나무는
올해는 나비의 꿈을 품더니
그 나무를 모두 비우고, 꽃이 되어 버렸습니다.
나비들이 저렇게 몰려든 것을 보면
은행나무가 나무가 아니라 꽃인게 분명할 테니까요.
올가을, 아마도 저 나비들은 눈부신 노란빛으로 성장을 한 뒤엔
바람 속을 우르르 날아올라 집단비행에 나설 것이 분명합니다.
그 노랑나비의 집단 비상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군요.
가끔 우리들이 나를 비우고
나아닌 다른 무엇인가로 나를 채우고 싶은 것도
바로 이와 같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은행나무가 품은 나비의 꿈을 엿본 나는
매해 그냥 은행나무로 지나쳤던 그 나무 아래서
올해는 노랗게 날아오를 나비들의 가을 비상을 머리 속에 그려보며
그때마다 한껏 기대감에 부풀고 있습니다.
요런게 아마도 꿈의 좋은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2007년 4월 26일 우리집 마당의 은행나무에서

7 thoughts on “나비의 꿈

  1. 저 은행나비(제가 그냥 붙였어요)가 가을이 되어 노란 날개짓을 펼치면,
    가을빛이 노랗게 물들겠죠?

    * 이런… 은행이 먹고 싶어졌어요. ^^;

    1. 실제로 가을에 날을 잘 잡아서 남이섬에 가면
      그런 광경을 볼 수가 있다는 것 아니겠어요.
      거긴 요새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그게 좀 흠이긴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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