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호동 집의 책장을 정리했다. 책꽂이 세 개가 벽에 나란히 서기는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원래는 벽을 달리하여 두 개와 하나로 나뉘어져 있었다. 딸의 방이 내 방이 되면서 한쪽 벽면으로 세 개의 책꽂이가 모두 들어서게 되었다. 모두 정리하는데 이틀이 걸렸다. 대부분은 시집이다. 시인의 이름 순서로 꽂았지만 가장 좋아하는 시인은 순서에 관계없이 맨앞에 두었다. 오규원이다. 정리하고 나니 보기에 좋았다.
한 때는 시를 좋아하면서도 시집을 사보지 못할 정도로 가난했었다. 돈을 벌었을 때 가장 좋았던 점은 책을 마음대로 사볼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그 때문에 읽지도 않으면서 책을 사들이곤 했었다. 언젠가는 읽게 되겠지 하는 심정이었다. 지금이야 책을 인터넷으로 사니까 사기 전에 책꽂이를 살펴보지만 서점에서 책을 사던 시절에는 시집을 펼쳐보다 시가 좋으면 사들고 들어오곤 했었다. 하지만 이미 집에 있는 시집일 때가 여러 번 있었다. 같은 책들이 겹쳐서 눈에 띄는 것은 그 때문이다. 시대가 시대여서 이제 그런 일은 없을 것 같다. 시인이 서명을 하여 보내준 시집들도 같은 시집이 겹친다. 내가 미리 사두었을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집을 나와 작업실 성격의 거처를 따로 갖게 되면서 이제 원없이 읽고 써보자 했었다. 잘 안된다. 한 달에 시집 다섯 권은 읽겠다 결심했는데 집 나온지 6개월째에 접어들었지만 두 권을 읽었다.
대신 자유에 대한 소중한 경험을 얻었다. 앞으로 이 경험은 내가 글을 쓰는데 엄청난 자산이 될 듯하다. 얼굴도 좋아졌다는 얘기를 많이 듣고 있다. 모두 자유의 위력이려니 생각하고 있다. 인터넷도 손봐야 해서 통신사 서비스를 신청했다. 방이 바뀌니 이것저것 손볼 것이 많다. 한 작가가 글로 생을 마감한 방이 되었으면 좋겠다.
지금은 글은 방화에 마련한 거처에서 쓰고 있다. 책보다는 맥북이 달랑 하나 놓여있는 방이다. 시집은 집에서 들고 나온 다섯 권 정도가 있다. 거처의 시집은 다 읽으면 집으로 가져가고 새 시집을 들고 온다. 이것도 괜찮은 글쓰기의 방법 같다. 아울러 서울에서 살면서 집과 거처를 따로 두다니, 내 삶이 참 호사스럽기도 하다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