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진 가족

Photo by Kim Dong Won
2023년 8월 9일 천호동의 내 방에서

천호동 집의 방정리를 마쳤다. 한쪽으로는 책꽂이 세 개가 나란히 서 있고 또 한쪽으로는 책상 위에 놓인 컴퓨터와 함께 온갖 컴퓨터 장비들이 자리한 방이다. 한쪽은 고전적이고 다른 한쪽은 첨단이다. 인터넷 회선은 거실에서 끌어가야 했다. 전화기 단자함으로는 속도가 100메가밖에 안나온다는 얘기를 들었다. 선을 끌고 측정해 봤더니 500메가 속도가 나온다. 이 방에는 음악도 있다. 스피커가 있다는 소리이다. 나중에 여유되면 스피커는 좀 좋은 것으로 바꾸고 싶다. 정리마치고 음악 들었다. 우퍼가 있는 스피커로 들으니 음악의 느낌이 좋다.
그러나 나는 이 방에서 기거하지 않는다. 방은 내 책과 컴퓨터를 맡아주는 공간이 되었다. 내 몸은 집을 나왔다.
오래 전에는 셋이서 방 하나를 썼었다. 그녀와 나, 그리고 딸이다. 가족으로 묶여 있는 셋이다. 셋이 방 하나에서 오랫동안 함께 살았다. 그러다 방이 두 개가 되었다. 딸은 그때부터 자신의 방을 갖게 되었다. 그녀와 내가 나머지 방 하나를 썼다. 딸은 도쿄로 유학을 갔다. 딸이 유학가 있는 동안 살고 있던 2층의 단독을 팔고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그녀와 나는 방을 따로 쓰게 되었다. 딸이 돌아오면서 방이 모자라 거실도 방으로 쓰게 되었다.
그러다 내가 집을 나와 따로 작은 거처를 구하면서 독립했다. 접이식의 책상 하나와 그 위에 올려놓은 맥북, 그리고 그 옆으로 침대가 놓여있는 작은 방이다. 얼마가지 않아 딸도 집을 나와 자신의 집을 얻고 독립했다. 딸이 얻은 방도 작다. 27인치 모니터가 너무 커서 불편한다는 얘기로 그 방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는 옛집에 그대로 산다.
한때 방 하나에서 모두가 함께 살던 가족이었지는 이제는 그녀가 서울 동쪽의 천호동에 살고 나는 서울의 서쪽 끝인 방화에서 거처하고 있다. 딸의 집은 그 중간이다. 모두 지하철 5호선 역에 자리를 잡고 있다. 집을 두고 집을 나와 동서로 갈라섰고 딸은 그 중간에 집을 두었다.
오래 함께 살면 서로를 가장 잘 알게 될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질 않다. 오래살수록 상대를 더 모르게 된다. 삶과 삶이 부딪치기 때문이다. 서로의 삶은 매우 완고해서 서로를 이해할 수 없게 만든다. 갈라서서 각자의 삶을 사는 것이 답이 된다. 셋이 방하나를 같이 쓰던 시절은 기적같은 시간이 된다. 삶에 쫓겨, 그리고 우리가 처한 환경탓에 서로의 삶이 각을 드러내지 못할 뿐, 우리의 삶에 서로 잘맞는 순간이란 없다. 사랑에 눈먼 짧은 순간에 잠깐 서로 잘 맞는다 착각을 할 뿐, 우리가 서로 잘 맞는 경우란 없다. 사랑은 짧고 갈등의 삶은 길다. 그러다 서로가 부딪치는 일이 잦아지면 매일 얼굴보는 것이 고역이 된다. 그때 매일 얼굴을 보지 않아도 되는 환경이 가능해지면 혼자사는 삶이 우리를 구원한다. 이제 우리는 방 하나를 셋이 살던 시간을 버리고, 한 집에서 각자의 방을 살던 시간도 버리고, 아득한 거리를 두고 각자의 집을 사는 또다른 시간에 섰다.
삶은 때로 모두가 혼자일 때 정상이 된다. 1인 가구가 대세가 되었다는 현실은 단순히 시대의 변화에 따른 결과가 아니다. 인간의 진화가 암암리에 방향을 옳게 잡고 있다는 소리이다. 인간은 밤하늘의 별처럼 서로 멀리 떨어져서 스스로 반짝일 때 가장 아름답다. 태양계에서 가장 가까운 별인 프록시마 센타우리는 지구에서 4광년이 넘는 거리로 떨어져 있다. 빛의 속도로 가도 4년이 넘게 가야 한다. 우리는 그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다. 지하철로 1시간반 정도가 걸린다. 가끔 집에 간다. 지하철은 한낮에 타도 터널의 어둠을 헤치고 달려간다. 1시간반의 거리를 마치 4광년의 거리를 가듯, 그리고 역들을 행성처럼 지나면서 방화에서 천호까지 간다. 행성 지구에서 살을 맞대고 으르렁대며 살다가 우주로 흩어져 별처럼 사는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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