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한 유혹

Photo by Kim Dong Won

가끔 나의 그녀가 가볍게 스치듯 던지는 한마디의 얘기가 오래 전에 보았던 영화 하나를 떠올리게 하는 경우가 있다. 영화의 제목은 <은밀한 유혹>이었다. 스크린을 장식했던 얼굴로는 데미 무어와 로버트 레드포드가 생각난다. 나머지 또 한 명의 배우는 인터넷의 도움을 빌린 결과에 따르면 그 이름이 우디 해럴슨이었다. 데미 무어와 우디 해럴슨이 부부로 나오며, 그들 각각의 이름은 다이애너 머피와 데이빗 머피이다. 로버트 레드포드의 몫은 백만장자인 존 게이지였다.
원래의 제목은 Indecent Proposal이었다.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도덕이나 성적 행태에 반하는 제안이란 뜻이다. 영화의 제목이 된 그 제안은 영화의 이야기 얼개를 그대로 따라가자면 존 게이지가 100만 달러를 줄테니 다이애너에게 하룻밤을 자신과 같이 자지 않겠느냐고 한 제안이다.
대체로 이 영화가 떠오르는 경우는 나의 그녀가 던진 말 속에 아주 가정적인 일반적 남편에 대한 기대가 묻어있다고 느낄 때이다. 가령 설날을 앞두고 원고와 씨름하느라 꼼짝할 수 없을 때 나의 그녀가 시장 바구니를 들고 문을 나서며 “이럴 때 같이 시장가면 너무 좋은데”라고 한마디 하면 바로 그 순간 그 영화 <은밀한 유혹>이 내 뇌리를 스친다. 왜 유독히 이 영화는 아내가 가정적인 남편을 기대할 때마다 내 뇌세포를 자극하는 것일까?
이 영화 속에서 나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장면 하나는 건축가인 다이애너의 남편 데이빗이 그녀의 손을 잡고 유명 건축물을 돌아다니며 그 건축물을 구경시켜 주고 또 설명해주는 부분이다. 혹자는 그 장면에서 가정적이며 친절한 연인을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나는 전혀 그렇질 않았다. 그의 건축은 당시 내가 걸어가고 있던 문학과 등호를 그으면서 결코 일반적이지 않은 세계로 보였고, 때문에 그런 세계를 아내에게 보여주며 신이 나서 설명을 한다는 것은 일반인들의 동참을 설득하기에 어려운 특별한 제안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말하자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도덕이나 성적 행태에 반하는 제안이란, 사실은, 돈의 유혹이 아니라 건축이라는 예술의 유혹이란 느낌이 강했다.
사람들이 도덕이란 이름으로 아무리 방어벽을 편들 사실 돈의 유혹이란 얼마나 일반적이고 보편적인가. 건축이나 예술의 제안 앞에서 마음이 흔들리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측면에서 그것은 일반적이질 못하다. 한권의 시집이나 한폭의 그림 앞에서 마음이 흔들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러나 돈의 유혹 앞에선 비록 도덕을 방패막으로 삼아 그것을 뿌리친다고 해도 대개의 경우 마음의 흔들림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런 측면에서 그것은 매우 일반적 유혹이다.
나는 나의 그녀가 나에게서 그런 일반성을 기대할 때면 내가 그런 일반성이 아니라 일반성에 반하는 유혹의 대상이 되었으면 하는 기대를 버리지 못한다. 그것은 누구나 마음이 흔들릴 수 있는 일반적 대상이 아니라 나의 그녀만이 어렵게 소화할 수 있는 그녀만의 대상이 되었으면 하는 기대이다.
물론 나는 항상 그렇게 그녀를 유혹한다. 돈이 아니라, 시장을 같이 가는 가정적 남편의 친절이 아니라, 바로 글의 힘을 빌려 은밀하게. 장바구니를 들고 함께 시장으로 나서지 않고 버티고 글을 쓰는 것은 보면 그 점은 분명한 것 같다. 그녀와 결혼하여 오랫 동안 같이 살아온 것을 생각하면 나의 그녀가 그 은밀한 유혹에 넘어간 것이 분명해 보이기도 하지만 가끔 나는 그녀가 정말 나의 유혹에 넘어간 것일까 하는 의심이 고개를 들곤 한다. 나는 앞으로도 나의 그녀가 나의 그 은밀한 유혹을 방패삼아 일상적 유혹의 파고를 넘어설 수 있었으면 좋겠다.

4 thoughts on “은밀한 유혹

  1. 그런 경우를 두고 삼고초려라고 한다.
    그런데 100번을 가야 한다는 옛말도 있다. 백문이 불여 일견이라는 얘기가 그거다. 100번을 가서 살펴보아야 물건 하나를 제대로 보고 고를 수 있다는 얘기이다.

  2. 세번 갔다 왔다^^
    많이 사는거 아닐 땐 동네 시장 이용해주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시장 여러번 왔다갔다 했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