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자는 자유로워 보였다.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여자였으며 배우였다. 배우 답게 여자의 얼굴에선 표정이 살아 있다는 인상을 받을 때가 종종 있었다. 남자에게 그 표정은 자유로운 삶의 결과로 보였다. 결혼을 속박으로 체감하고 있던 남자는 여자로부터 혼자의 삶이 보장해주는 자유의 얘기를 듣고 싶었다. 그러나 여자의 얘기 중에 자유를 체감으로 감지할 수 있는 얘기는 거의 없었다.
결혼한 사람과 혼자 사는 사람을 나누어 구분할 때면 여자의 입에서 결혼한 사람은 남편이나 아내가 있고 더하여 아이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 구분 속에서 혼자 사는 사람은 그것을 하나도 갖지 못한 사람이 되곤 했다. 남자가 여자에게서 듣고 싶어 했던 자유는 여자의 얘기 속에선 결핍으로 표정을 바꾸었다.
여자가 말하는 혼자 사는 삶의 결핍은 여자에게 남편이나 아이가 없다는 데서 오는 막연한 느낌이 아니었다. 그것은 체험과 결합된 매우 구체적인 순간에서 온 것이었다. 여자는 가끔 동료들과 함께 해외로 공연을 나갔다. 공연이 끝나고 귀국하면 결혼한 동료들은 모두 공항에서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들의 도착을 알렸다. 여자는 그때마다 자신에게도 돌아갈 집이 있지만 그 집에 자신의 전화를 받아줄 상대가 없다는 것을 실감했다. 혼자 사는 삶은 그 순간 그녀가 처한 결핍을 매우 구체적으로 일깨웠다. 여자에게 혼자 산다는 것의 자유는 결핍과 동의어였다. 앞뒤가 똑같은 동전이 아니라 앞은 자유였으나 뒤집으면 결핍이 새겨져 있는 동전이었다. 그런데 왜 여자는 자꾸 자유의 동전을 결핍쪽으로만 뒤집는 것일까.
결혼을 억압으로 느끼고 있던 남자는 집을 나가 혼자 사는 삶에서 자유를 다시 찾아보려 했다. 하지만 집은 나간다는 것은 두려움이기도 했다. 평생 한 번도 집을 나가 혼자 살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집을 나가기 전에 누군가의 확실한 경험으로 자유를 보장받고 싶어 했다. 그러나 여자에게선 자유를 보장할 실마리가 잡히질 않았다. 그렇다고 남자에게 다른 길은 없었다. 남자는 두려움 속에서 집을 나오는 수밖에 없었다.
집을 나오며 얻은 원룸의 작은 거처에서 방의 한쪽으로 옹색하게 놓인 침대에 몸을 눕혔을 때 남자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자신이 드디어 자유를 찾았다는 것을. 여자의 느낌은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자유는 곧 결핍이었다. 그러나 여자가 말할 때 받았던 결핍과는 느낌이 크게 달랐다. 여자가 결핍을 말했을 때 그 결핍은 부족함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그러나 직접 마주한 그 결핍은 부족함이나 모자람이 아니라 없음이나 비어 있음에 가까웠다. 자신 이외에 아무 것도 없을 때 비로소 우리는 자유였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아무 것도 걸리는 것이 없을 때 우리가 비로소 자유일 것이기 때문이다. 혼자라는 것은 모든 것이 결핍되어 하나도 걸릴 것이 없는 상태였다. 여자의 말은 사실이었다. 다만 오해의 소지는 있었다. 남자는 여자가 공항에 내렸을 때 전화할 사람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도 전화할 필요가 없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결혼을 억압으로 경험해보지 않은 여자의 감각에 온 이상 징후였다. 남자가 그 결핍을 자유로 감지하는데는 한 시인의 도움이 컸다.
남자는 어둠을 생각했다. 어둠은 두 가지로 감지된다. 어떤 이는 어두워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어떤 이는 어둠 속에서 지천으로 우리를 둘러싼 어둠을 본다. 시인 오규원이 그의 시 「어둠은 자세히 봐도 역시 어둡다」에서 “어둠이 내 코 앞, 내 귀 앞, 내 눈 앞에 있다/어둠은 역시 자세히 봐도 어둡다”라고 말했었다. 말하자면 시인은 어둠이 눈앞에 있을 때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고 그 어둠을 응시한다. 남자는 깨달았다. 여자가 자유 속에서 아무 것도 없다고 말했다는 것을. 텅빈 공간을 자유로 감지하는데는 어둠 속에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일상적 감각이 아니라 바로 “내 코 앞, 내 귀 앞, 내 눈 앞에 있”는 어둠을 보는 눈이 필요했다. 그 눈을 가지면 아무 것도 없다는 결핍은 충만한 자유로 뒤바뀌었다. 남자는 집 나온 첫날, 텅빈 방의 침대에서 눕는 순간, 그 자유를 실감했다. 자유는 보이지 않으나 이 우주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현재의 균형을 이루는 물질과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처럼 빈공간에 가득했다.
2
여자는 자유로워 보였다. 다른 여자였다. 결혼을 했었으나 이혼 했으며 혼자 살고 있었다. 집나온 남자의 술친구가 되어 주었다. 술자리에서 마주 앉으면 여자는 집에 갈 생각을 않고 술을 마셨다. 맥주를 마실 때면 어느 순간부터 남자보다 잔 하나를 더 빨리 나갔지만 술의 한계치에 먼저 도달하는 것은 남자였다. 때문에 오늘은 여기까지라며 술자리를 정리하는 것은 남자의 몫이었고, 그 시간은 언제나 밤 12시를 넘겼다.
밤늦은 술자리를 정리하고 여자를 보낸 뒤 거처로 돌아오는 시간의 거리는 언제나 드문 인적으로 한산했다. 마치 혼자 사는 남자의 거처처럼 텅 비어있는 느낌이었다. 그것은 이제 남자에게 자유의 느낌이기도 했다. 결혼 생활 와중에도 왜 늦은 술자리가 없었겠는가. 그러나 결혼하고 나자 늦은 귀가는 항상 같이 사는 여자의 잔소리를 동반했다.
집을 나온 남자는 자유를 잔소리 없는 늦은 귀가로 다시 정의했다. 잔소리를 감내해야 하는 늦은 귀가는 자유가 아니었다. 그것은 자유 없는 세상에 대한 저항에 가까웠다. 결핍된 자유가 술의 힘을 빌어 저항을 부를 때 늦은 술자리가 되곤 했다. 때문에 늦은 귀가가 곧 자유는 아니었다. 그 늦은 귀가에 대해 이해를 구할 필요조차 없을 때 비로소 자유이다.
돌아오면 하루 종일 텅비어 있던 방이 남자에게 속삭였다. 오늘은 아주 많이 늦었네. 술자리가 좋았던 가봐. 그래도 나는 하루 종일 너를 기다렸어. 너의 늦은 귀가도 마다 않는 나는 너의 자유야. 늦은 귀가의 남자는 그 달콤한 속삭임 속에서 잠에 들었다. 여자가 밤늦은 시간도 마다 않고 술을 마시다 놓고가는 것은 바로 그 자유에 대한 체감의 시간이었다. 그 자유는 늦은 밤에만 비로소 체감이 되었다.
여자는 남자의 생일에 케익을 보냈다. 치즈 케익이었다. 맥주 안주로 곁들이기에 좋은 케익이었다. 케익이 배달되어 온 날부터 남자는 케익이 모두 소진될 때까지 아침에 일어나면 항상 맥주를 마셨다.
생일 케익은 결혼 생활 때도 있었다. 항상 케익을 사이에 두고 둘이 마주 앉았고 둘의 사이에 자리한 케익은 사랑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것은 달콤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케익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랑의 형식이 된다. 사랑의 형식이 되면 사랑은 지워지고 케익만 남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케익에 여전히 사랑이 있다고 믿으며 사랑을 둘 사이에 마련되는 케익에 의존한다. 처음에는 사랑이 케익을 가져왔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케익이 사랑을 담보한다. 사람들은 사랑이 파탄났다는 것을 알면서도 끈기있고 참을성 있게 케익이 담보하는 사랑에 기댄다. 남자도 예외가 아니었다.
남자는 이제 둘이 마주 앉아 축하를 주고 받으며 먹던 케익 대신 혼자 먹는 케익을 마주하고 맥주를 꺼내 아침부터 한 잔한다. 케익은 그런 측면에서 사랑이나 생일에 대한 축하라기 보다 혼자 즐기는 자유의 다른 이름이 된다. 자유의 케익은 시때와 상관없이 맥주를 부를 수 있다. 케익이 속삭인다. 형식을 지키다 파탄난 사랑을 아쉬워 하지마. 잃은 사랑의 자리를 이제 자유가 채우게 될 거야. 며칠 동안 아침마다 남자의 자유가 달콤했다.
어느 날 밤 술자리를 정리하고 여자를 보낸 뒤 거처로 돌아온 남자는 지하철역에서부터 거처까지 짧은 구간의 풍경을 스케치하듯 메모하기 시작했다. 그 스케치 속의 풍경은 다음과 같았다.
“지하철에서 내리자 역의 전광판이 이제 더 이상 열차는 다니지 않는다, 열차의 운행은 모두 끝났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 말은 ‘열차없음’이라는 짧은 글귀에 요약되어 있었다. 역의 출구를 나오자 길이 젖어 있었다. 비가 왔다는 소리였다. 하루 종일 사람들이 우산을 들고 다녔으나 열차를 타기 전까지 우산을 펼칠 기회는 없었다. 비는 내렸으나 여전히 우산을 펼칠 기회는 없었다. 비가 거리를 적시고는 그쳤기 때문이다. 역을 나오자 횡단보도의 신호등이 붉은 색과 초록색을 버리고 노란빛으로 점멸하고 있었다. 밤 12시가 넘었다는 소리였다. 밤이 깊어지면 신호등은 색으로 구분하여 길을 건널 시간의 질서를 구획하던 습관을 버리고 길을 사람들의 눈치 아래 방치했다. 잠시 길은 질서를 지운 자유의 공간이었다. 자동차의 불빛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술에 취한 걸음이 그 불빛을 무시하고 길로 들어섰다. 자동차가 곧바로 속도를 줄였다. 거처로 들어가는 길의 느티나무에서 잎들이 받아놓은 빗방울을 무겁다는 듯 내려놓으며 후둑후둑 떨어뜨렸다.”
남자에겐 전에도 스케치하듯 풍경을 메모하는 버릇이 있었다. 풍경을 언어로 새롭게 여는 것이 남자에겐 큰 자유의 호흡이 되곤 했다. 그러나 그때와 지금의 언어는 달랐다. 결혼이 억압일 때 남자에게 언어는 자유의 도피처였다. 이제 남자에게 언어는 세상을 묘사하는 자유로운 도구였다. 도피로서의 자유가 된 언어와 말 그대로 자유롭게 구사된 언어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그 둘을 글에서 구별할 수는 없으나 풍경을 스케치한 당사자는 알 수가 있다. 때로 쓴 자만이 알 수 있는 자유의 구별이 있다. 남자는 그가 이제 자유롭게 풍경을 말하는 언어를 가졌음을 알 수 있었다. 남자는 그것이 가능해진 것을 여자가 남겨준 자유의 힘 때문이라 생각했다.
3
여자는 자유로워 보였다. 남자가 결혼한 여자였다. 남자는 글을 썼다. 글을 쓸 때 가장 힘든 점은 그 행위가 널리 인정되는 일이 아니란 것이었다. 세상의 대부분은 삼성에 다닌다고 하면 삼성에서 그 사람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는 확인하지도 않고 곧바로 그의 삶을 수긍하고 인정해 주었다. 하지만 글을 쓴다고 하면 남자가 쓰는 글에 관심을 보이기 보다 글을 써서 먹고 살 수는 있냐고 되물었다. 그러나 그런 세상에 남자의 글에 대한 유일한 지지자가 한 명이었다. 바로 그 여자였다. 여자의 지지와 응원은 남자에게 곧 글의 자유였다. 남자에게 세상의 지지는 필요 없었다. 단 한 명의 지지로 오는 글의 자유면 글을 쓰기에 충분한 힘이 되었다. 남자는 여자와 결혼했다. 자유를 영원히 담보해줄 것만 같은 여자였다.
기대와 달리 결혼은 순항하지 못했다. 결혼 뒤에 남자의 글과 그의 글쓰기에 대한 여자의 지지로 맺어진 관계에 균열이 생겼다. 남자는 큰 변화가 없었다. 남자는 결혼 후에도 여전히 글을 쓰고 있었다. 남자와 달리 여자에게 결혼은 엄청난 변화를 불러왔다. 여자는 결혼과 함께 생활을 책임지게 되었다. 결혼 전의 여자에게 그런 책임은 없었다. 생활을 하려면 돈을 벌어야 하고 돈을 버는 일은 고생스럽다. 생활이 고생스러워지면 가치의 전도가 발생한다. 글이 설거지의 뒤로 밀린다. 남자의 글은 무력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여자는 가장 가까이에 자리한 세상이 되어 버린다. 남자는 세상에서 유일했던 지지자를 잃는다. 결혼은 숨막히는 관계가 되고 만다.
이 둘의 관계가 왜 이렇게 변화되었는지에 대해 좀 더 깊은 이해를 구하려면 자유에 대한 한 철학자의 사유를 빌려올 필요가 있다. 그는 슬로베니아의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이다. 우리에겐 모두 자유이지만 영어는 자유를 가리키는 단어가 두 가지이다. 바로 프리덤(freedom)과 리버티(liberty)이다. 지젝은 이 둘을 구별하고 있다.
지젝에 의하면 리버티는 구체적 자유이다. 가령 내가 지하철을 타고 서울 시내를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을 때 그 자유는 리버티이다. 리버티는 돈이 가져다 줄 때가 많다. 지하철을 타려면 요금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리버티만을 자유로 보면 가장 자유로운 자는 가장 돈 많은 자이다. 돈으로 누릴 수 있는 것들이 엄청나게 많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돈은 자유의 환각을 부른다. 마치 돈이 곧 자유인 듯한 환각이다. 그리하여 모두가 돈을 좇게 된다. 사실은 돈을 좇는 것이 아니라 돈이 보장할 자유를 좇는 것이다. 세상이 좇는 자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는 한편으로 암암리에 알고 있다. 그것이 자유가 아니라는 것을.
프리덤은 이와 달리 근본적 자유이다. 그것은 세상을 나의 시각으로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자유이다. 감옥에 가두어도 사상범의 사상은 바꿀 수가 없다. 그것이 근본적 자유이기 때문이다. 돈이 한푼 없는 자도 생각의 자유는 내놓지 않아도 된다. 돈도 건드리지 못하는 자유이다.
언어는 그 자유로운 생각을 구현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이다. 남자는 그 자유가 가장 극대치로 구현되는 것이 문학 장르 중에서도 시라고 생각했다. 시를 읽고 글을 쓰는 것이 그의 삶이었다. 남자에게 세상은 시인의 수만큼 자유롭게 새로이 열린다. 그렇다고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갖기 위해 반드시 돈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세상 모두가 프리덤으로서의 자유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란 소리도 된다. 아울러 그것이 시인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들은 세상이 호흡할 수 있는 자유의 대기이다. 돈이 보장하는 리버티와는 또다른 자유의 세계이다.
자유에 대한 이 구분은 돈을 벌기 위한 생활의 힘겨움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일깨운다. 그 힘겨움은 바로 곁에 호흡할 자유를 두고도 그 대기를 호흡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여자가 생활의 힘겨움으로 비명을 지를 때, 사실은 그 곁에 가장 가까이 남자가 마치 태고적 처음으로 산소를 만들어내 대기를 채우며 세상의 모든 생물이 숨쉴 대기를 만들어내듯 글을 쓰고 있었다. 그러나 남자의 글은 여자에게 아무런 위안도 되지 못했다. 여자는 생활의 힘겨움에 짓눌려 비명을 질렀지만 남자에겐 그 비명이 글의 무력감이었다.
남자는 둘의 파탄이 궁극적으로 생활의 힘겨움 때문이 아니라 돈의 무서움 때문이라 생각했다. 돈을 쉽게 벌거나 많이 벌어도 자유의 대기를 호흡하지 못하는 사례는 수없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그때는 힘겨움 때문이 아니라 돈이 가져다주는 향략의 즐거움이 자유의 대기로부터 사람들을 멀어지게 만들며 자유의 환각 속에 또다른 형태로 삶을 가둔다.
남자는 집을 나왔다. 한 때 남자가 쓰는 글의 자유가 되었던 여자의 지지는 잃었지만 남자가 집을 나와 혼자가 되었을 때 그 공간으로 용케도 자유가 찾아와 남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랫동안 자유를 잃고 지냈지만 자유는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남자에겐 여전히 일말의 기대가 있었다. 그것은 천문학자들이 우주의 미래를 블랙홀까지는 결론을 냈지만 블랙홀의 이후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짐작을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모든 것을 다 집어 삼키고 우주를 어둠으로 몰아넣을 블랙홀이 우주의 미래라는 짐작이 나오긴 했지만 그 블랙홀 뒤의 미래는 아직 알 수가 없다. 남자는 가끔 생각한다. 여자가 결혼하기 전에는 이성복을 들고 다녔다는 사실을. 생활이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집어 삼켰지만 이성복으로 자유를 호흡했던 기억이 여자의 호흡을 되살릴지도 모른다.
(『포지션』, 2023년 가을호, 두 글자의 사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