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의 아이들

Photo by Kim Dong Won
2007년 10월 6일 집앞 골목길에서


갑자기 집앞 골목이 왁자지껄 합니다.
가끔 다큰 어른들이 골목에서 싸울 때면
그 목소리가 담을 타넘어
방안까지 무단으로 들어오곤 합니다.
보통은 주차문제로 싸우곤 합니다.
난 별로 그 소리를 좋아하질 않습니다.
오늘의 소리는 그 소리는 아닙니다.
또 가끔 바로 앞건물의 주차장에서
젊은 연인들이 사랑을 속삭일 때도 있습니다.
연인들은 자신들의 속삭임을 곁에 붙들어두려 하지만
그 속삭임은 그들 옆을 슬그머니 빠져나와
우리 집 담을 넘은 뒤 방안까지 들어오곤 합니다.
시끄러운 한낮이라면 소리가 소리를 묻어버리는데
꼭 연인들은 조용한 밤에 그 자리를 찾아오기 때문에
아무리 목소리를 낮추어도
그 자리의 속삭임을 그들의 귓가에 묶어두기 어렵습니다.
난 그 소리도 별로 좋아하질 않습니다.
오늘의 소리는 그 소리도 아닙니다.
오늘의 소리는 아이들의 소리입니다.
아이들의 소리는 경쾌하고 발랄해서
깡총깡총 뛰거나 공중을 제 키만큼 붕붕 날아다니다가 담을 훌쩍 넘습니다.
보통 어른들은 그 소리를 아주 시끄럽다고 생각합니다.
그 때문에 아이들이 놀면 꼭 쫓아내는 어른이 있는데
오늘은 그런 어른도 없습니다.
옥상에 올라가 내려다 보았습니다.
근래에 골목길에 저렇게 많은 아이들이 모여있는 건 처음보는 것 같습니다.
골목길이 아이들의 소리로 가득합니다.
노는 것도 제각각입니다.
보고 있노라니 그것만으로 즐겁습니다.
그러다 골목길의 아래쪽으로 내려가던 아이들이 사진찍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어, 아저씨가 우리 찍는다.”
“저는 찍으려면 100만원이예요.”
–애들이 벌써부터 무슨 돈을 그렇게 밝히냐?
내가 그렇게 한마디했더니 아이들이 다시는 그 얘기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아이들입니다.
말 한마디에 통하는 걸 보면 말입니다.
–여기 보고 손흔들어 줄래.
아이들이 일제히 좋아라하고 손을 흔들어줍니다.
하루종일 적막으로 누워있던 골목길이 오늘 간만에
아이들을 품에 안고 즐겁게 뛰고 달음박질치며 놀고 있었습니다.
골목이 환했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2007년 10월 6일 집앞 골목길에서

11 thoughts on “골목의 아이들

  1. 제가 하고 싶은 것 중에 하나가 어른들 놀이터를 만드는 거예요.
    그네도 만들고 시소, 미끄럼틀도… 정글집도 좋구요.
    어른들도 아이들 눈치보지 않고 맘껏 좀 놀아줘야 해요.
    그런 놀이터 하나 만들면 대박일것 같지 않으세요.^^

    1. 전 애들하고 그냥 어린이 놀이터에서 노는데…
      아이클 때 화양리 어린이 대공원가서 종종 놀곤 했어요.
      거기 모래밭에 줄로 얼기설기 엮어서 높이 올라가는 놀이기구가 있는데 그거 흔들어주면 아이들도 아주 좋아하더라구요.
      저희는 집 바로 옆에 놀이터가 있어요.
      아이들도 와서 놀긴 하는데 어른들은 거기서 술을 마셔요. 별로 보긴 안좋더라구요. 술은 다른데 가서 먹었으면 좋겠어요.

  2. 골목에서 아이들이 저렇게 모여 노는 그림은 본 지 오랜 거 같아요.
    요즘은 아파트 놀이터에도 아이들이 없어요.
    그래서 가끔 저희 애들이 어디 갔다 오다 놀이터에 또래로 보이는 애들이 보이면
    애들 할아버지 말씀따나 ‘환장을 하고’ 놀이터로 내달려요.^^

    동네 애들이 저렇게 골목에서 만나 놀기도 하는구나~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생일파티로 모인거군요.^^

  3. 저는 차소리가 너무싫어 빨리 이곳을 떠나고싶습니다.
    평소엔 느끼지못했는데 요새들어 차소음이 자꾸만 귀에거슬립니다.
    툭하면 빵, 찍하며 급브레이크 밟는 소리…
    조용히 새소리나 들으며 꽃이나보고 살고싶습니다.

    학교에서 학원으로 바쁘게 공부하는 아이들이 많아져서인지
    놀이터의 놀이기구는 녹슬고 골목길도 조용합니다.

    아이들은 아이답게 맘껏 뛰놀아야 정상인데
    너무 공부만 열심히 하라고 닥달하다보니
    인권도, 환경의 중요성도 모르고 지나칠 때가 많은 것같아요.

    우리 복둥이는 중학교 들어가면 맘껏 못노니
    초딩 때 열심이 뛰놀아야된다면서
    공부보다는 놀기에 바쁘답니다.ㅎ
    쨔식이 퐁퐁타러갈 때 저도 같이가서 뛰자고하네요.^^

    1. 근데 어딜가나 사는게 다 그런 거 같아요.
      조용한 데도 하루이틀인 거 같고.
      가장 좋은 건 시끄러운 데 사는 사람은 조용한데 가서 가
      끔 하루 이틀 놀다가 올 수 있어야 하는 거 같아요.
      조용한데 사는 사람은 또 시끄러운 데 가서 하루 이틀 휩쓸리다 오구요.
      모든 것 다 팽개치고 복둥이랑 어디 조용한데 가서 잠시 머물다 오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어제 박남준 시인의 시집을 읽고 있었는데
      “산중의 삶도 세상사와 다름아니었습니다”라는 구절이 있었는데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습니다.
      시인은 세상에 “떠나온 삶은 없다”고 말하더군요.
      세상을 들고 사시는 평등공주님이 가끔 세상을 내려놓고 조용히 공주처럼 하루를 지내는 날이 있어야 하는데…
      기다린 김에 조금 더 기다려보죠, 뭐.
      좋은 날이 올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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