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와 3은 그냥 2와 3일 뿐이다. 하지만 둘이 사랑을 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둘은 하나가 된다. 세상의 사랑은 하나가 아니어서 둘의 사랑은 여러가지 모습으로 하나된다. 더하기 사랑을 하면 둘은 하나되어 5로 보인다. 빼기 사랑도 있다. 그 사랑을 하면 -1이 되기도 하고 +1이 되기도 한다. 곱하기 사랑 때는 6이 된다. 나누기 사랑 때는 2/3이나 1.5가 된다. 사랑을 하면 둘은 보이질 않고 전혀 다른 하나가 보이기 시작한다.
수학을 한다는 것은 숫자들의 사랑을 이해하는 일이다. 그러니 수학을 잘하면 사랑을 잘할 수 있다. 내가 말한 것이 수학이라기보다 그저 셈에 불과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렇질 않다.
가령 살다가 𝑥²-𝑥-6이라는 문제에 부딪쳤다고 해보자. 답이 안보인다. 그런데 다행이 인생이란 것이 문제만 주어지지 않고 실마리가 주어질 때가 있다. 우리의 경우 0이란 실마리가 주어졌다고 가정하기로 한다. 그러면 𝑥²-𝑥-6=0을 풀면 우리의 문제가 해결된다.
문제를 그냥 들여다 보아선 아무리 들여다 보아도 해결을 할 수가 없다. 둘이 하나되어 얽히면서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는 하나되기 전 원래의 우리가 무엇이었는지 알아내야 한다. 그건 사실 더해서 -1, 곱해서 -6이 된 둘을 찾는 일이기도 하다. 그것이 하나된 -1과 -6에서 원래의 둘을 찾아낼 수 있는 방법이다.
그러면 이제 뒤엉킨 식을 (𝑥-3)(𝑥+2)=0이라는 형태로 다시 쓸 수 있고, -1과 -6으로 뒤바뀌면서 잃어버린 원래의 우리를 드디어 다시 찾을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원래는 -3과 2였다. 곱하기 사랑으로는 -6이 되고, 더하기 사랑으로는 -1이 되는 사이였다. 우리는 처음에는 둘이 0으로 하나되는 사랑법도 알고 있었다. 그 사랑을 위해선 가감승제로는 부족했고, 방정식이 동원되어야 했다. 그런데 단순하게 하나되는 방법으로 뒤섞이다 복잡하게 0으로 하나되던 순간을 가지면서 우리에겐 0만남고 사랑은 상실되고 만다.
그때부터가 문제였다. 수학은 속삭인다. 서로가 원래 모습을 찾으면 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하지만 나는 그 속삭임이 반가우면서도 또 의구심이 든다. 정말 수학이 사랑 문제도 풀어줄 수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