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시지푸스가 생각나곤 합니다.
무슨 죄를 지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데
시지푸스는 신들로부터
아무 의미없는 일을 반복해야 하는 지루하고 무료한 일을
형벌로 받았다고 합니다.
돌을 언덕으로 굴려 올라가는 일이었죠.
그런데 돌은 시지푸스가 정상으로 굴려올리는 순간
아래쪽으로 다시 굴러 떨어집니다.
그 일은 끝을 희망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동일한 일을 끝없이 반복해야 하는게 그의 운명이었죠.
신들은 그게 세상에서 가장 큰 형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시지푸스는 신들의 의도를 보기좋게 배반합니다.
그것은 바로 돌을 정상에 올려놓고 그 일을 끝내는 것을 일의 완성으로 삼지 않고
그 일 자체를 목적화하는 것이었죠.
그러니까 한번 올릴 때마다
그 순간을 성취의 순간으로 뒤바꾸어 버리는 거였죠.
오예, 이번으로 벌써 1057번째야!!
언덕을 내려가는 시지푸스는
돌이 다시 굴러 떨어지는 것에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1058번째 성취의 순간에 대한 의지로
벌써 팔과 다리에 힘이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시지푸스에게서 가혹한 형벌 앞에 놓인 비참한 운명을 보았지만
눈이 밝은 사람이 있어 그에게서 신의 의도를 보기 좋게 배반한
자기 삶의 극복을 보았습니다.
그가 바로 알베르 카뮈였죠.
신들이 끝없이 절망하리라 예상했을 때,
그 삶에서 순간 순간을 성취의 순간으로 전복시킨 시지푸스는
어떤 가혹한 순간이 와도 삶은 살아갈만한 작은 틈이 있다는 희망입니다.
가만히 보면 나무가 그렇습니다.
봄으로부터 시작하여
매년 한여름내 뜨거운 태양밑에서 초록잎을 풍성하게 가꾸지만
가을이 되면 그 무성하던 잎을 모두 털어내고 빈가지로 돌아가야 합니다.
천천히 바위를 언덕으로 굴려올리는 시지푸스처럼
나무는 한여름내 잎으로 푸르게 제 몸을 뒤덮어 갑니다.
그리고는 가을이 오면 언덕 아래로 굴러떨어지는 바위처럼
잎들은 바람에 우수수 날려 발밑으로 떨어집니다.
하지만 나무는 매년 그 일을 반복합니다.
우리는 나무에게서 한번도 나무의 그 반복된 삶을 형벌로 본 적이 없었습니다.
아마도 그건 나무가 매년 잎으로 무성해지고,
가을엔 다시 빈가지로 돌아가는 그 일 자체를
시지푸스처럼 한해 한해 모두 성취의 순간으로 삼았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우리가 매년 단풍에 들뜨는 것도
바로 그 성취의 순간에 대한 희열에 동참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나무들이 올해도 각각 23번째, 107번째, 혹은 539번째
바위를 언덕으로 올려놓고
다음 해의 또다른 성취를 기약하며
빈가지로 겨울 언덕을 내려가고 있습니다.
6 thoughts on “잎과 가지”
잎들이 떨어져 거름 된다는 사실 깨닫고
엄청 감동했어요. ㅋㅋ
버림의 미학, 그래야 주워담을 수 있고..
이 이야기도 감동 ㅠㅠ 긍정의 승리군요!
작은 틈을 비집고 삶을 열어가는 시지프스같은 사람들이 실제로도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보면 정말 대단하단 생각이 들어요. 따로 신화 속에서 찾을 필요도 없는 듯…
얼마전 제 생일에 했던 우스운 생각 하나요.^^
울신랑이 마치 1년을 주기로 형벌을 받는 시지프스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장남으로 태어나 집안일이라고는 모르는 사람이 제 생일이면
새벽같이 일어나 어설픈 미역국과 너덜너덜한 계란말이를 만들지요.
그러고도 모자라 하루종일 죄지은 사람처럼 뭐 해줄게 없나 하면서
하루를 보내다가 저녁무렵에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열두시만 돼봐라’..ㅋㅋㅋ
아~ 멋진 글에 어울리지 않는 댓글이었습니당.^^;;
오, 요댓글, 은근한 자랑이 분명한데요.
신랑한테 요 글 보여주고 매일매일 ohnglse님 생일로 생각하고 성취의 순간으로 삼으라고 하면 확실한 응용이 되겠는 걸요.ㅋㅋ
그거 좋네요.
응용편이 어떻게 될지 해보고 말씀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