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2024

지난 해 집을 나가 1년 6개월 동안 5호선의 서쪽 끝인 방화역 근처에서 방을 얻어 혼자 살았다. 집을 나가 혼자 산 것은 생전 처음이었다. 올해는 그 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집으로 들어왔다. 집에 다시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아 내년에 다시 나가보려고 창작촌의 입주 작가 신청을 했지만 안됐다. 당분간 계속 집에서 작업을 하며 머물러야 할 듯하다. 그래도 가장 힘든 시기는 넘기고 조금 적응한 듯 싶다.
사람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역시 사람 사이의 갈등이다. 특히 같이 사는 사람과의 갈등이 가장 힘들다. 매일 얼굴을 봐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혼자 살면 그런 갈등이 전혀 없다. 얼굴 볼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 시절 사람과의 대면이 어려워지면서 사람이 그리움의 대상이 되었지만 마음 잘 맞는 사람이 아니면 사람과의 대면만큼 괴로운 일도 없다. 창작촌 입주는 무산되었지만 돈 모아서 어디 지방쯤에 한달쯤 머물 수 있는 방을 얻고 혼자 지내는 시간을 다시 갖고 싶다. 한달 정도는 어떻게 지내도 큰무리 없이 가능할 듯하다.
집으로 돌아온 뒤로 거의 집에만 머문 것 같다. 그녀와 딸을 일행삼아 전주와 대전을 다녀왔고, 딸의 일본인 친구 히로타가 왔을 때 다시 대전을 함께 다녀왔다. 문원민의 시집이 나온 뒤에 아는 얼굴과 일행을 꾸려 부산을 1박의 일정으로 다녀왔다. 그 이외에는 어디 다녀온 기억이 별로 없다.
올해는 해의 말에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다치는 우환이 있었다. 손목 골절로 수술을 받았고 일주일만에 퇴원했다. 다행이 경과가 좋다. 어머니 건강이 나의 큰 복이었는데 빨리 그 복이 다시 예전의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
집나가 있는 동안 좋은 친구가 있었다. 구체적으로는 가끔 술을 함께 하는 시간이 좋았던 술친구였다. 그 친구가 동네로 이사를 왔다. 예전에는 술을 마시면 항상 집에 갈 시간을 염두에 두었는데 이제는 동네서 시간을 힐끗거리지 않고 술을 마실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동네는 밤새워 술마실 수 있는 곳은 없다. 그래도 전화하면 금방 마음을 맞춰 술자리에 나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딸이 올해 승진을 하고 회사에서도 능력을 좋게 평가받는 듯 싶다. 연봉도 많이 오른 듯하다. 자식 잘되는 것은 부모의 큰 복이다. 가끔 자식 자랑을 입에 올리면서 살고 있다는 측면에선 내가 걱정이 하나도 없는 삶을 사는 측면이 있다.
항상 그랬듯이 해의 말에 올해 찍은 사진들 가운데 한 달에 한 장씩의 사진을 골라 올해를 마무리해 본다.

Photo by Kim Dong Won
(2024년 1월 14일 서울 방화동에서)

1
눈이 내렸지만 나무에 맺힌 것은 물방울이었다. 눈을 기온으로 세공하면 항상 물방울 보석이 된다. 나무가 잠시 가지를 장식하는데 쓴다.

Photo by Kim Dong Won
(2024년 2월 19일 강원도 속초에서)

2
속초의 청초정이다. 나는 속초하면 영금정밖에 몰랐다. 영금정은 낮에도 가보고 밤에도 가봤다. 이번에는 청초정을 낮에도 가보고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이른 아침에도 가봤다. 청초정은 청초호에 있고 내가 묵은 숙박 시설이 그 근처에 있었다. 이른 아침이 더 분위기가 좋았다. 지붕 위가 환했으나 아침해의 빛은 아니었다. 청초정의 지붕 위는 해가 뜨거나 말거나 빛날 수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24년 3월 8일 서울 방화동에서)

3
저녁은 알 수가 없다. 서쪽으로 지면서 창으로 들어와선 북쪽으로 길을 낸다. 그 길에 서면 가는 저녁이 잘 보이긴 했다. 저녁의 길은 갈려고 펴는 길이 아니라 남는 이들이 손흔들어 작별하기 좋게 펴놓는 길이다.

Photo by Kim Dong Won
(2024년 4월 28일 경기도 미사리에서)

4
강원도 산골에서 자란 내게 밤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시간이었다. 도시의 밤은 다르다. 도시에서 밤은 세상이 낮과는 전혀 다르게 얼굴을 바꾸는 시간이다. 밤에도 세상이 반짝거리면서 환하게 보인다.

Photo by Kim Dong Won
(2024년 5월 20일 서울 천호동의 천호공원에서)

5
산딸나무의 시절이다. 마치 얼굴이라도 내밀듯 잎들 사이로 꽃들이 사이사이 피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24년 6월 3일 서울 천호동에서)

6
나는 길을 횡단하고 구름은 길위의 하늘을 횡단한다.

Photo by Kim Dong Won
(2024년 7월 7일 서울에서)

7
비가 비스듬히 옆으로 날렸다. 차가 바람처럼 달리자 비가 차창에 빗줄기로 바람을 새겨주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24년 8월 31일 강원도 철원에서)

8
논에는 온통 가을이었다. 황금보다 더 아름다운 황금빛을 가을의 벼가 갖고 있다.

Photo by Kim Dong Won
(2024년 9월 22일 서울 천호동에서)

9
가을 가을한 날이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24년 10월 30일 경기도 팔당의 두물머리에서)

10
나무밑에 앉으면 계절이 어깨위로 내려 앉는다. 가을은 계절을 어깨에 얹어줄 수 있다.

Photo by Kim Dong Won
(2024년 11월 2일 경기도 구리의 동구릉에서)

11
색이란 칠하는 것이 아니다. 잎에 받아 채우는 것이다. 그때 비로소 아름다운 채색을 얻을 수 있다.

Photo by Kim Dong Won
(2024년 12월 26일 경기도 팔당의 한강변에서)

12
겨울이 되면 팔당의 한강으로 고니가 찾아온다. 그때부터 한강은 강을 버리고 백조의 호수가 된다. 고니는 강을 호수로 바꾸고 음악을 가득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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