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8월 26일 우리 집에서
고양이는 가끔 베란다에 나가 캣타워의 중간에 자리를 잡고는 집안을 지긋이 바라보다 들어오곤 했다. 베란다는 우리에게 밖을 내다보는 곳이었다. 고양이는 왜 밖이 아니라 베란다에서 안을 들여다 보다 들어오는 것일까. 다행스러운 점은 고양이와 말이 통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고양이에게 물었다.
–너는 왜 베란다 나가면 안을 들여다 보다 들어와?
내가 묻자 고양이가 말해주었다.
–그거야 안을 들여다 보면 나는 바깥이 되니까. 하지만 바깥을 보면 나는 집안에 갇힌 고양이가 확연해 지지. 8층의 베란다는 더 이상 집을 벗어날 수 없어 바깥을 볼 때마다 내가 집안에 갇혔다는 사실이 더더욱 확연해져. 이 집안에서 내가 갇힌 나를 벗어나 바깥의 자유를 체감할 수 있는 방법은 베란다에서 안을 들여다보며 베란다를 바깥으로 삼는 그 방법 밖에 없어.
바깥을 보면 베란다도 안이다. 그러나 안을 보는 순간 베란다는 바깥이었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여 그녀를 바라볼 때 나는 그녀의 바깥이다. 바깥에는 자유가 있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여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데도 그녀에게 갇힌 듯 답답하다면 나는 어느새 그녀의 안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안은 사람을 가둔다. 우리는 사랑할 때 나도 모르게 자유를 잃고 안에 갇혀 자유의 바깥을 곁에 두고도 나갈 줄을 모른다. 고양이가 내게 관계가 답답하다면 내가 관계의 집, 그 안에 갇혀 바깥을 보고 있는 것이니 관계의 집을 나와 안을 보며 살라했다.
일주일 매일 집을 나가 바깥을 돌아다니다 온 날이었다. 바깥을 나가면 좀 살만했다. 안은 여전히 답답했다. 다음 달에는 좀 멀리 바깥을 나가야지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