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나무의 가을

Photo by Kim Dong Won
2013년 11월 3일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대개 사람들은 벚나무의 봄만 기억했다. 겨울이 지나 따뜻한 봄이 왔다고 좋아들 할 때, 눈처럼 하얀 꽃을 뒤집어쓰고 봄을 알리는 나무였다. 꽃이 질 때도 꽃잎을 눈처럼 날리면서 졌다. 그러나 누구도 겨울을 떠올리지 않았다. 눈처럼 하얀 빛으로 가득하고 눈처럼 날려도 사람들은 겨울을 연상하지 않았다. 벚나무에 꽃이 피면 겨울이 갖고 있던 눈의 빛깔을 봄의 색이 되었다. 벚나무는 눈처럼 흰꽃으로 겨울을 지웠다.
그러나 꽃으로 채우는 봄의 시간은 짧다. 대개의 나무들이 그렇듯이 벚나무도 여름을 길고 오래 초록으로 지냈다. 사람들은 거의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리고 뜨거운 여름을 견딘 끝에 가을이 왔다. 붉은 가을이다. 사람들은 가을마다 꽃보다 아름답다며 단풍을 찾았지만 벚나무에게 나누어 주는 시선은 드물었다. 봄날 벚꽃 필 때 발디딜 틈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붐볐던 벚나무의 밑에선 어디에서도 북적거림을 보기 어려웠다. 그래도 봄의 벚꽃 시절보다 더 아름답게 벚나무의 가을이 온다. 눈처럼 흰 벚꽃으로 겨울을 지우던 봄처럼 한창 덥던 여름날의 뜨거움을 붉은 단풍으로 지우며 가을을 채색한다. 봄가을로 항상 그 전의 계절이 가졌음직한 색을 똑같은 색으로 지우며 벚나무가 계절을 바꾼다. 벚나무의 가을이 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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