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2월 4일 서울 천호동에서
이미 낮에 눈이 예보되어 있었다. 정말 눈이 올까. 하늘에 점점이 떠있는 적당한 구름과 그 사이의 푸른 하늘이 예보에 의구심을 품게 하는 낮이었다. 예보를 믿기엔 날이 너무 맑았다. 하지만 눈이 온다고 예보된 때는 저녁이었다. 아직 저녁까지는 시간이 남아 있었다.
저녁이 가까워오자 하늘은 푸른 색을 지우고 하늘을 모두 엷은 회색으로 교체했다. 동쪽의 하늘은 아예 시커멓게 도포되어 있었다. 눈발이 조금씩 날리기 시작했다.
여자는 우산을 챙기고 집을 나섰다. 오늘은 비대신 눈이 우산 위에서 소리없이 그 걸음을 멈추며 쌓일 것이다. 그러다 우산을 접었을 때 그 두께를 한움큼 집어 그녀가 걸어오는 길에 모은 걸음을 모두 그녀의 앞으로 쏟아낼 것이다. 눈의 걸음을 우산 위에 하얗게 모으며 걸을 수 있는 날이다. 여자가 우산을 챙긴 이유이다.
동네에 도착하여 버스를 내린 여자가 전화를 걸었다. 남자의 목소리가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이야?” 여자가 말했다. “눈이 오네. 그래서 너네 동네 왔어. 집으로 갈께.”
여자가 이제 걷잡을 수 없이 쏟아지는 눈속을 걸어 그의 집으로 간다. 가로등 불빛 아래 쏟아지는 눈이 빛처럼 반짝거렸다. 그 느낌은 가로등의 속삭임을 불러왔다. 가로등은 눈이 사실은 반짝이는 하얀 빛이라고 속삭인다. 눈이 빛이기 때문에 어둠도 눈을 어둠으로 덮지 못한다는 속삭임이 그 속삭임에 또 이어졌다. 골목길에 빛이 하얗게 쌓였다. 어둠도 덮지 못하는 빛이었다. 여자가 빛의 길에 걸음을 또렷이 새기며 그에게로 걸어간다.
눈이 그녀를 그에게 데려다 주었다. 하얀 빛을 길에 쌓아 밤길을 열며 그녀에게 그에게 가자 했다. 그가 집앞에 나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머리에 걸음을 멈춘 빛이 하얗게 그 걸음을 쌓아놓고 있었다. 여자의 우산 위에도 걸어올 때 모은 빛의 걸음이 비슷한 두께로 하얗게 쌓여 있었다. 남자가 환하게 웃으며 머리의 눈을 털었고 여자가 우산을 접어 그 눈 위에 또 눈을 쏟았다. 기다린 걸음과 찾아간 걸음이 구별없이 뒤섞였다. 첫눈이 내린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