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의 청간정에서 북쪽으로 조금더 올라가면 천학정을 만나게 됩니다.
청간정과 마찬가지로 천학정도 바닷가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청간정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면
모래 해변이 우리의 시선을 끌고 어느 정도 달려가다 바다와 만나지만
천학정은 해안 절벽에 자리잡고 있어 곧바로 눈밑에서 파도가 넘실댑니다.
청간정과 마찬가지로 천학정을 찾은 날도 12월 19일이었습니다.
몇 걸음 올라가지 않아 곧바로 정자가 나옵니다.
크기는 아담했습니다.
벌써 올라와 구경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실 어느 정자나 정자는 구경거리가 못됩니다.
우리는 정자의 이름을 따라 정자가 있는 곳으로 오르긴 하지만
정작 보고자 하는 것은 정자가 아니라
정자에서 바라본 주변의 풍경이며,
아니면 정자에서 듣는 파도 소리나 바람의 시원함을 만나고 싶어합니다.
천학정은 그 이름으로 보면
하늘에서 내려온 학이 노닐던 정자입니다.
상당히 신비스런 이름이긴 하지만 또 곰곰히 생각하면
학이 땅에서 솟을리는 없고,
어느 학이나 모두 하늘에서 내려오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하늘에서 내려온 학이 내려앉은 곳이라고 하면
그 당연한 곳도 갑자기 신비로운 곳이 됩니다.
그게 바로 말의 힘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학은 볼 수 없었지만 그 말의 힘 때문인지
아침 햇살이 대신 찾아와 내려앉고 있는 천학정은
주변 소나무의 경배까지 받아가며 신비로움을 챙기고 있었습니다.
천학정 밑으로 보이는 바다 위로
배 한 척이 섬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섬의 이름은 가도입니다.
가자는 탈것가자입니다.
그렇다고 그 탈것이 자동차는 아닌 것 같습니다.
아마도 수레나 가마를 염두에 두고 지어진 이름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수레보다는 가마의 모습에 좀더 가까워 보입니다.
이름을 우리 말로 바꾼다면 가마섬 정도로 하면 될 듯 합니다.
이 섬에는 남녀가 서로 마주보고 있는 모습의 연인 바위가 있다고 합니다.
정자가 해변의 절벽에 있다보니
바로 아래쪽의 바위들이 갖가지 형상으로 사람들 눈길을 끕니다.
어떤 것은 물고기 모양이고, 어떤 것은 손가락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형상을 가진 바위마다 모두 이름을 붙여 두었습니다.
요건 손모양의 바위입니다.
정자의 바로 곁으로 간단하게 요기하듯 한바퀴 돌아볼 수 있는
숲속 산책로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고개를 젖혀야 그 끝을 볼 수 있는
아득한 키의 소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작은 동산입니다.
바다를 더 멀리 보고 싶어 발돋움을 하다가 저렇게 컸나 봅니다.
숲길은 소나무가 떨어뜨린 솔잎으로 푹신푹신 하더군요.
햇살이 용하게도 나무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빛을 숲길에 길게, 또는 좌판처럼 조그많게 펼쳐놓고 있었습니다.
안내하는 아저씨의 말에 의하면 1200년된 소나무.
아마도 유머를 좀 섞어서 소개했다면
1207년된 소나무라고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수명을 정확히 알 수 있냐고 물으면
아마도 이렇게 답하겠지요.
“내가 여기서 천학정 안내를 시작할 때
1200년된 소나무라고 했어요.
그런데 그게 7년전의 일이니
이젠 정확히 1207년된 소나무죠.”
그럼 아마 나는 킥킥대고 웃었을 겁니다.
그렇지만 소나무는 지난해나 올해나
그 수명을 계속 1200년에 묶어두고 있는 듯 싶습니다.
하긴 1200년의 나이에 서너 해를 보태고 뺀들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소나무가 그 아득한 세월을 싣고 오늘도 하늘로 뻗고 있었습니다.
빽빽한 소나무숲 사이로 올려다 보니
가지가 가로막은 사이사이로 푸른 하늘이 언듯언듯 내비칩니다.
숲에서 가지 사이로 하늘을 올려다보면
마치 푸른 호수 같습니다.
우리가 신기루를 쫓듯
소나무도 마치 푸른 하늘을 호수처럼 쫓아
하늘로 자꾸 키를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언젠가는 그 호수에 닿고 말겠다는 듯이.
나도 잠시 호수의 꿈에 젖어 가지 사이의 하늘을 호수처럼 바라봅니다.
숲속의 바위가 시선을 끌어당깁니다.
마치 일부러 가운데를 잘라놓은 듯한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어떻게 저렇듯 칼로 잘라놓은 듯 가지런한 지요.
옆으로 세워져 있긴 했지만 갑자기 햄버거가 생각났습니다.
산책로에서 내려와
천학정 바로 옆의 해돋이 전망대로 올라봅니다.
해돋이 전망대는 천학정보다 약간 더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저기 멀리 가도가 보이는 군요.
혹시 이쪽에 있는 바위섬은 나도나 와도가 아니냐구 묻는 분은 없겠죠.
가도로 가는 듯 싶었던 배는 두 바위섬의 사이로 빠져나갔습니다.
내려오다 입구에 서 있는 이색적 건물 하나가 궁금하여 물었더니
성황당이라고 합니다.
성황당이라는 이름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지만
새로 짓다 보니 그렇게 되었나 봅니다.
문은 잠겨져 있었습니다.
열어놓으면 술먹고 그곳에서 자는 사람들이 있어서
할 수 없이 닫아놓았다고 합니다.
참, 배짱 좋은 사람들도 많습니다.
성황당에서 잠을 다 자고 말입니다.
사람들이 하도 성가시게 해서
성황당 귀신들이 문걸어놓고 살아야 하는 세상입니다.
천학정에서 내려와
바로 아래쪽의 교암리항 방파제를 따라 걷습니다.
바다가 커다란 바위 위로 올라탔다 내려갑니다.
분명 물이 올라왔다 미끄러져 내려가는 것인데
마치 바위에서 물이 샘솟고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교암리항 방파제에서 바라본 파도입니다.
바다는 끊임없이 파도를 말아쥐고 방파제로 달려옵니다.
무슨 급한 전갈이 있는가 싶지만
매번 하는 얘기는 철썩하는 알아듣기 어려운 말이 전부입니다.
시험을 앞둔 수험생이라면 철썩 붙으라는 성원으로 들릴 법도 합니다.
우리 딸도 내년에 대학 시험보는데 언제 바다에 한번 데려와
파도의 성원을 하루 종일 들려주어야 겠습니다.
그러다 정말 철썩 붙으면
시험을 앞둔 수험생들에게
어디 바다의 파도 소리가 효험있다고
헛소문이 나는 건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사실 1200년된 소나무나 섬의 이름 같은 것은
내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 것은 천학정에 나와 있던 동네분 한 분이 친절하게 알려주더군요.
함자를 물었더니 김근영씨라고 했습니다.
선글라스가 잘 어울리는 멋진 분이었습니다.
매년 1월 1일엔 교암리항에 불을 크게 피워놓고
해맞이 행사의 하나로 불놀이를 한다고 합니다.
외지인들도 환영하니 구경오라고 했습니다.
술과 안주는 무제한으로 내놓는다는 말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아저씨 뒤로 보이는 항구 너머의 바다가 언젠가는
마을까지 덮친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여기도 항구냐고 물었더니
항구라고 하기는 뭣하고 항구로 만들려고 하는 중인데
암초가 너무 많아 큰 배가 드나들기는 어렵다고 했습니다.
항구를 만들려면 들어오는 길목의 암초를 모두 제거해야 한다는 군요.
별 걸 다 알게 됩니다.
아저씨에게 고맙다고 했더니
그냥 알고 있는 거 가르쳐 주는데 무엇이 고맙냐고
내 감사를 되돌려 주시더군요.
아저씨에게 부탁하여 사진 한 장 찍어갖고 왔습니다.
천학정 바로 위엔 곧바로 문암포구가 있습니다.
항구의 동네분에게 항구 이름을 물었더니 문암2리항이라고 했습니다.
작은 항이지만 사람이 많지 않아 한적하게 바다를 즐기기엔 아주 좋습니다.
항구로 드나드는 길목이 좁아
들고 날 때 두 척이 마주치면 한쪽 배가 기다려 줍니다.
지금 막 항구의 입구에서 들어오던 배가 잠시 길을 멈추고 기다리는 중입니다.
그러자 나가던 배가 눈인사를 하면서 옆을 지나쳐 바다로 나갑니다.
나가는 배가 밀어낸 파도가 기다리는 배를 마구 흔들어놓곤 합니다.
그때면 방파제 위에 서 있는데도 내 몸이 마구 흔들리는 듯 했습니다.
항구는 육중한 콘크리트 방파제로 굳어 있지만
바다가 끊임없이 몸을 뒤채며 삶의 활력을 불어넣는 곳입니다.
8 thoughts on “고성 교암리의 천학정 구경”
사실은 제가 고마워야 할것같습니다
제가 자랑삼고 있는 제 고향을 멋진사진과 글로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심에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혹시 속초로 가시는 경우가 있으시면 교암리에서 뵈었으면 합니다
저는 지금은 대구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2주에 한번은 교암리에 계신 부모님을 뵙고, 아버지가 하시는 어업을 도우러 갑니다
아버지 어업은 할아버지때부터시작하여 80년이 엄는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ㅈ제연락처는 010-9325-8778입니다
무슨 말씀을요.
속초는 자주 갔었는데 요즘은 뜸한 편입니다.
사실은 상황이 좋질 않아서 어디든 가질 못하고 있습니다.
딸아이 하나를 유학보냈더니 그 뒷바라지에 허덕거리고 있거든요.
속초로 갈 기회가 생기면 연락드릴께요.
연락처 핸펀에 등록해 놓겠습니다.
고향분에게 듣는 속초 얘기만큼 생생한게 있을까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연락처 남겨주신거.
천학정의 역사적의미는 1930년경 일본의 정자말살정책에 조용히 동네유지분들이 항거한 점입니다
그리고 교암리는 과거에 5일장이 있었던 주변동네중 규모가 있었으며 다음에는교암리 남쪽의 해변가를 가시면 군부대 주둔으로 출입이 어려워진 과거 해수욕장을 볼 수 있습니다. 요즈음 낮에는 군인이 없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요모조모의 바위와 어우러진 모습이 이쁩니다.
혹시 교암리 및 천학정등에 대하여 궁금하시면 제메일이 hhangu@kdic.or.kr입니다
저희가 갔을 때는 철조망이 쳐져 있어 못들어가게 되어 있었는데 요즘은 들어갈 수 있는가 보네요. 철조망 너머의 고인 물에서 목욕하고 있는 새들은 많이 구경했던 기억이 납니다. 언제 들리게 되면 그때 마을 이야기 들으면 그것처럼 좋을 게 없을 거 같습니다. 사실 마을의 겉모습만 보고 지나칠 뿐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얘기를 들은 기회는 거의 없으니까요. 고맙습니다. 연락처까지 남겨주시구.
가도의 “가’자는 탈것도 있지만 교암리에선 멍애가로 합니다
섬의 모습이 멍애를 지고 있는 모습이기때문입니다.
아 그런 거군요.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풍경이 좋은 곳이었는데 다시 가고 싶네요.
동해 바다에 가본지가 꽤 오래된 것 같아요.
배가 고팠군. 바위를 보고 햄버거를 생각하다니…ㅎㅎㅎ
허긴 먹을 곳이 마땅찮아 굶고 돌아다니고 있었으니 그럴만도 하지.
그래도 바위를 뜯어먹진 않았는데…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