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에서 만난 능소화

Photo by Kim Dong Won
2026년 7월 3일 서울 서대문역 근처 농협중앙회 빌딩 앞에서

서대문역에서 내려 5번 출구로 길을 나섰다. 시선을 돌리는 곳 어디나 빌딩들이다. 어떤 빌딩은 너무 높아 고개를 꺾은 뒤 그 맨위로 시선을 올려 놓아야 높이를 가늠해 볼 수 있다. 빌딩은 시선을 가로 막는다. 빌딩이 수없이 보이는 데도 시선은 그 빌딩을 본다는 느낌을 갖는 것이 아니라 그 빌딩들에 시선이 막힌다는 느낌을 갖는다. 나무들이 늘어선 숲을 걸을 때와 달리 도심을 걸으며 빌딩의 숲으로 세상을 호흡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 빌딩들 사이, 한 건물 앞의 화단에서 능소화를 만났다. 그 순간 시선이 꽃을 호흡한다. 주황의 호흡이다. 꽃은 우리에게 색깔있는 호흡의 순간을 안겨준다. 7월이다. 거리를 지배하는 것은 여름 더위이다. 더위는 사람들을 에어컨 바람이 시원한 건물 안으로 몰아 넣는다. 그러나 누군가가 시선으로 능소화의 주황을 호흡하는 순간, 그 호흡의 순간을 방해하지 않으려 7월의 더위도 잠시 뒤로 물러난다. 빽빽하게 들어선 건물들에 막혔던 시선이 능소화가 내준 주황의 호흡으로 잠시 숨을 쉰다. 빌딩들만 있는 도심의 곳곳에서 사람들이 이 여름에도 꽃의 색을 호흡하며 도시의 밀봉된 시간을 견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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