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6월 5일 경기도 마석의 서울칼국수에서
원래 가려고 한 곳은 종가집이었다. 물어보니 화도에 있다고 했다. 집에서 그렇게 멀지는 않다는 소리였다. 그런데 화도에 그런 이름의 음식점은 없었다. 사실 종가집은 가려고 한 곳의 정확한 명칭이 아니었다. 그 집은 간혹 외갓집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문제는 외갓집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 집의 정확한 명칭은 김삿갓밥집이었다. 한 번도 그 명칭으로 불려 본 적은 없었다. 그녀는 그 집의 정확한 명칭은 무시하고 항상 다른 이름으로 그곳을 불렀다. 다만 종가집이란 이름이 그녀의 입에 가장 빈번하게 오른 이름이었을 뿐이다.
이름이 어찌되었든 그녀는 그곳의 위치만큼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혼란스런 이름에도 불구하고 위치는 흔들림이 없이 정확했다. 어쨌거나 그 집을 가자고 한 것은 그녀였고 그 집에 가려는 이유는 내게 맛있는 음식을 사주고 싶다는 것이 이유로는 가장 컸다.
나는 음식을 먹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에 그러면 내가 좋아하는 곳으로 가자고 했고 마석역에서 가까운 곳에 서울칼국수라고 있다고 하니 그곳에 가서 칼국수를 먹자고 했다. 처음에는 그녀가 반대했다. 사실 내가 음식점을 골라 성공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래도 나는 갖가지 반찬이 즐비하게 나오는 한식집이 내 취향이 아니란 것은 분명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에 종가집이란 이름을 들었을 때 그 이름만으로도 무엇인가를 먹기 위해 그런 곳을 간다는 것이 내키질 않았다. 몇 차례의 밀고 당기는 실갱이 끝에, 결정적으로 딸이 나는 여기도 좋을 것 같아라며 내가 골라 놓은 곳을 지지하는 의사를 표현해준 덕택에 우리는 마석의 서울칼국수로 가기로 했다.
건물의 간판은 세월의 느낌을 확연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간판이 너무 낡아 장사는 하는 건가 잠시 의심스러웠다. 건물의 3층이어서 엘리베이터를 탔다. 탈 때 보니 식당에서 내건 안내문이 있었고 일요일에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밖에 안한다고 되어 있었다. 건물 앞에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엘리베이터에 오른 것은 우리 뿐이었다. 3층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을 때 바로 앞에 우리가 찾아온 식당이 있었고 식당 앞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우리 앞에 두 팀이 있었다. 식당 안을 엿보니 빈자리가 없었다. 하지만 자리는 금방 났다.
칼국수를 시키고 낚지볶음을 함께 시켰다. 칼국수 주문을 받을 때 양은 많은 것으로 하겠냐고 물었다. 적당한 것으로 달라했다. 낚지볶음도 중간 것으로 하나 시켰다. 주문이 밀려 있어 조금 늦을 수 있다 했다.
칼국수가 먼저 나왔다. 국물 한 숟가락을 먼저 떴다. 진한 맛이 확연했다. 이렇게 진한 국물맛은 생전 처음이란 느낌이 들었다. 나는 매운 맛을 좋아해 청양고추를 넣었고 고춧가루도 풀었다. 칼국수 자체는 그렇게 맵지 않았다. 하지만 김치는 매웠다. 그렇다고 심하게 맵지는 않았다. 이 정도 맛이면 서울서 거리를 마다하고 찾아올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당 안을 메우고 있는 사람들의 걸음이 그만한 가치를 했다는 느낌이었다.
먹다 보니 낚지볶음이 나왔다. 칼국수를 작은 접시에 덜고 낚지볶음을 섞어서 한 젓가락 먹었다. 또다른 맛이었다. 뜨겁고 매운 것을 잘 먹지 못하는 그녀는 맛있다고 하면서도 잘 먹지를 못했다. 그녀가 먹다가 자신의 것도 좀 가져가서 먹겠냐고 했다. 냉큼 덜어와서 먹었다. 약간의 국물만 남기고 다 먹었다. 땀이 많이 나 먹고 나선 이마의 땀을 닦아야 했다. 그녀가 거의 소스만 남아있는 낚지볶음을 싸가겠다고 했다. 집에 가서 밥을 비벼먹겠다는 것이었다. 낚지는 다 골라먹은 낚지볶음 남은 것을 싸왔다. 나올 때 보니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저녁 때 국수를 삶고 찬물에 헹군 뒤 싸온 낚지볶음 남은 것에 비벼서 먹었다. 뜨거운 국수와 함께 먹을 때와 달리 이 또한 색다른 맛이었고 여전히 맛있었다. 곧바로 집앞 편의점에 내려가 캔맥주를 사다가 맥주를 저녁 자리에 곁들였다. 그녀는 이 음식점이 고춧가루를 아주 잘쓰는 것 같다고 했다.
대개는 그녀가 뭘 먹자고 하면 그냥 그녀가 가자는 대로 따라가는 편인데 생전 처음 먹을 것을 내가 정한 날이기도 했다. 마석의 서울칼국수가 음식으로 기억에 남을 하루를 남겨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