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8월 1일 경기도 파주의 문산역에서
여행삼아 수도권 전철을 일주하고 있다. 그렇다고 세계 일주나 심지어 국내 일주는 전혀 꿈꾸지 않고 있다. 전철 일주는 번거로움이 전혀 없다. 여권을 준비하고 항공권을 끊어야 하는 번거로움 같은 것이 없다는 얘기이다. 국내도 멀리 다녀오려면 기차나 버스를 예매해야 한다. 아니면 차를 끌고 나서야 한다. 전철 일주는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 역으로 나가면 거의 곧바로 열차가 온다.
이번에 다녀온 곳은 문산이었다. 내게 문산을 갈 일이란 별로 없다. 하지만 수도권 전철 일주를 여행의 꿈으로 삼게 되면 문산은 경의중앙선으로 갈 수 있는 서북쪽 끝을 가보는 일이다. 문산에 뭐가 볼게 있나 싶겠지만 그냥 문산역 주변을 2시간 정도 어슬렁거리다 돌아오는 것만으로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집에서 나설 때의 시간은 오후 4시 가까이 가 있었다. 늦은 시간이지만 문산은 충분히 갔다 올 수 있다. 지하철앱은 공덕역에서 갈아타고 가라고 했으나 나는 왕십리역에서 갈아탔다. 한강을 따라 지상으로 갈 때 차창으로 보이는 풍경이 좋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구간에서 내가 얻은 가장 좋은 풍경은 창에 남은 빗줄기의 흔적이었다. 창은 비의 흔적을 가득 담고 바싹 마른 빗줄기를 연신 맞으며 한강을 따라갔다. 햇볕이 완연한 날 열차의 창에 담긴 마른 빗줄기를 보며 한강을 따라가는 일은 괜찮은 일이었다.
공덕에서 홍대입구까지 이어지는 경의선 숲길 구간이 예전에 열차가 다니던 길을 공원화한 것이며 그 구간에선 열차가 지하로 간다는 사실을 이번에 알았다.
대개 역에서 내리면 사람들은 한곳으로 몰려간다. 문산역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을 따라갈 필요가 없다. 가장 사람들이 한가한 통로로 터덜터덜 걸어서 역을 빠져나왔다. 내가 간 한가한 통로는 통로를 가면서 만난 사람들의 숫자를 세는 데는 한쪽 손의 손가락을 모두 꼽을 필요도 없었다. 통로를 나가자마자 사람들이 이런저런 작물을 키우는 밭이 있었고 밭은 내게 참깨나 고추와 같은 익숙한 농작물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흔한 풍경을 보며 걷다 지하도를 만났다. 짧은 첫 번째 지하도를 지나가자 또 다른 지하도가 나왔고 그 지하도의 입구에서 생긴 것이 귀티나는 고양이를 만났다. 녀석을 위하여 고양이 간식 하나를 땄다. 녀석이 아주 잘 먹었다.
양쪽 끝에 앉아서 쉬라는 듯 벤치를 하나씩 둔 두 번째 터널은 어디서 흘러나오는 물인지 알 수가 없었으나 바닥이 젖어 있었고 어디서 에어컨을 틀어 놓은 건가 싶게 서늘했다. 그리고 터널을 나와선 아마도 오래된 시가지인 듯 보이는 문산역의 앞쪽 거리를 걸었다. 역에서 내린 사람들이 모두 몰려나간 곳은 이 방향일 듯 싶었다. 거리에 군인들이 많았다.
그렇게 거리를 걷다 문산자유시장을 구경하고 그 뒤에는 번잡한 거리를 벗어나 문산1교를 건넜다. 이어 다리 아래쪽을 흐르는 개천을 따라 동문천교 방향으로 걸었다. 동문천교에선 신문산교 방향으로 걸음을 계속 떼어 놓았다. 문산역으로 들어가고 나가는 열차가 멀리 보이는 산책길이었다. 농부들이 가꾸어 놓은 논의 풍경이 초록의 바다처럼 펼쳐진 곳이기도 했다.
그렇게 걸어간 걸음은 신문산교에선 다시 동문천교 방향으로 방향을 돌려야 했다. 원래는 다리를 건너 반대쪽 산책로로 걸어볼 생각이었으나 다리로 올라가는 일이 난감했기 때문이다. 내가 간 산책로 길에선 다리를 쉽게 탈 수가 없었다. 초행의 방문객은 그런 실수를 한다.
돌아올 때 해가 지고 있었다. 해는 몸집이 큰 초록의 나무들이 듬성듬성 서 있는 벌판의 서쪽으로 서서히 높이를 낮추었다. 지는 해를 보며 다시 역으로 걸었다. 역앞의 편의점에서 음료를 하나 사 마시는 것으로 갈증난 목을 달랬다. 역에 도착하니 시간은 저녁 8시였다.
돌아올 때는 원래 왕십리역에서 내려 열차를 바꿔탈 계획이었으나 열차의 에어컨 바람이 너무 추워 이렇게 가다간 왕십리역에 내릴 때쯤 동사해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홍대입구역에서 내렸다. 갈아탄 2호선 열차의 에어컨 바람도 냉기가 만만치 않아 다시 충정로역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5호선 열차를 탔다. 이번에는 약냉방칸을 골랐다. 집에 오니 10시반이었다. 대략 집에서 두 시간 정도의 거리인 듯 했으나 올 때는 좀 더 시간이 걸렸다. 아마도 이 열차 저 열차 바꿔 타면서 늘어난 시간 때문인 듯했다.
그녀가 갈치를 튀겨 저녁 준비를 해주었고 오징어 한 마리도 데쳐 주었다. 전자렌지에 돌린 나물밥의 반찬으로 아주 훌륭했다. 저녁 먹고 샤워한 뒤 달게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