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맛난 음식을 앞에 둘수록 슬퍼지는 사람이 있다. 행복하고 즐거운 순간에, 그 행복이 깊고 즐거움이 클수록, 오히려 슬픔이 더욱 커지는 사람이 있다. 자식을 잃은 어머니가 그럴 것이다. 남편을 보낸 아내가 또한 그럴 것이다. 그 슬픈 상처의 어머니는, 혹은 아내는 맛난 음식이 앞에 놓이면 그것에 냉큼 손이 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눈물이 먼저 앞을 서고, 그 눈물 속엔 잃은, 혹은 떠나보낸 자식이나 남편이 어른거린다. 그 자식이나 남편을 전장에서 잃었을 때는 더더욱 그럴 것이다.
허수경 시집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에서 우리는 처음에는 평화로운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시를 읽다보면 그 평화와 함께 그의 시들에선 슬픔이 동시에 만져진다.
허수경이나 나나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이다. 그러니 전쟁으로 무엇을 잃었을 리가 없다. 그러나 그는 이번 시집을 시작하는 자서의 자리에서 “이 시집에 묶인 시들을 반(反)전쟁시”라 부르고 싶다는 자신의 뜻을 밝혀놓고 있다. 그는 그 이유로 이들 시들이 “크고 작은, 가깝거나 먼 전쟁의 시기에 씌어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전쟁을 직접 겪지 않은 한 인간이 쓰는 반(反)전쟁에 대한 노래”가 바로 그가 “우리 시대의 한 표정으로 고정시키고 싶”은, 이번 시집의 모습이다.
나는 시인이 자서에 새긴 이러한 소망을 그의 시읽기에 대한 중요한 실마리로 삼아 그의 시가 보여주는 평화로운 풍경을 살펴보고, 그것이 어떻게 슬픔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또 그 슬픔이 어떻게 전쟁 반대의 작은 씨앗이 되는 것인지를 알아 보려 한다.
2
우리는 허수경의 이번 시집에서 가장 먼저 그가 과거의 지층 저 깊은 곳에서 꺼내보이는 오래된 옛 기억을 접한다. 가령 그 기억 중의 하나를 들여다보면 그가 ‘자란 마을’이 보이고 그 마을의 강엔 천지로 불이 일듯, 붉은 잎이 떨어지고 있다. 기억에서 꺼낸 그 마을은 지금 “가을 물 가을 불”의 계절이고 그 강가에선 “거친 손”의 ‘뱃사공”(「가을 물 가을 불」)이 보인다. 낙엽이 강으로 떨어져 그 강이 물인지 불인지 분간할 수가 없고, 그 강가에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뱃사공’이 있는 풍경이다. 그 풍경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아울러 평화롭다. 또 그의 기억은 “우리 만나 잎 따서 삶아 밥해주던 할머니집”을 떠올린다. 아마도 잎은 호박잎이었으리라. 기억 속의 그는 할머니집에 “앉아 여린 잎에 하얀 밥 싸 먹으며 벙그러지는 입술 오무리며 깔깔거”리고 있다. 또 “할머니가 떠 오는 설거지물에 마치 오랜 시간 씻듯 양은 밥주발 씻”고 있는 모습도 보이고, 그 할머니는 호박잎 옆에 달린 꽃, 그러니까 호박꽃을 “머리에 꽂으며 벙그렇게 웃” (「그래, 그래, 그 잎」)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 풍경 역시 평화롭기는 마찬가지이다. 그의 기억은 계속된다.
벼멸구를 잡아 불태우던 연기를 향해 침을 퉤퉤 뱉던 동사무소에 댕기던 안경잡이
집문서를 팔아 여당 지방사무소 소장을 하던 위인
농업실험실 과수원에서 자두에 접붙인 수박을 만든다던 폐병쟁이
막된장에 무친 날내 나는 나물
잘게 썬 풋고추를 넣고 조린 피라미
호박잎에 싼 은어 회
날게 생긴 오이에 약 든 쇠고기를 잘게 썰어 익힌 오이찜 짠 멸치젖을 넣어 만든 쓴물 나던 고들빼기 너덜너덜한 처녑을 끓여 참기름장에 곁들이던 겨울날 할아버지 술상
—「달 내음」 부분
우리는 이 풍경이 지난 시절 바로 이 땅의 삶이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때 이 땅엔 풍요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으며, 또 정의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때 이 땅의 풍경은 가난했고, 그 가난에 적당히 부조리가 얹혀져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이 다시 불러낸 그 시절의 풍경은 그 느낌이 매우 평화롭다.
나는 허수경이 보여주는 이런 분위기의 풍경에 토착성 평화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다. 이때 토착성이란 말은 그 평화의 분위기가 특정한 어느 한 지역의 고유한 정서적 분위기와 매우 깊이 맞물려 있다는 뜻이다. 허수경의 시에서 그 지역이란 시인이 태어나고 자란 경남 진주가 된다. 시인이 경상대 국문과를 나왔고, 그 대학이 또 진주에 있으니, 그는 대학을 마칠 때까지 그 지역의 토착성 정서에 완전히 몸을 묻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니 그 정서의 뿌리가 얼마나 깊이 그에게 뿌리를 내렸을 것인가는 어느 정도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시인은 그 정서를 그대로 보여주겠다는 듯이 시집의 앞쪽 부분에서 옛 기억을 꺼내놓으면서 “진주말로 혹은 내 말로”라는 부제를 달아 같은 시를 반복적으로 변주한다.
그 진주말은 서울말과 대비가 된다. 진주말은 진주라는 공간의 토착성이 키워낸 자연의 언어이지만, 서울말은 서울이란 공간의 토착성이 키워낸 자연의 언어라기 보다 소통을 위하여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약속의 언어에 더 가깝다. 서울말에서 인공성의 냄새가 짙게 나는 것은 바로 진주말과 같은 지방의 말이 갖는 자연적 토착성이 없기 때문이다. 지방의 말이 그곳의 자연에서 길러진 언어인데 반하여 서울은 지방에서와 같이 언어를 길러낼 자연적 토양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언어는 식물과 같아서 자연적 토양이 없으면 언어도 자라지 못한다. 따라서 서울은 말이 자랄 수 없는 공간이다. 그렇듯 토양이 없으면 언어도 자라지 못하지만 그러나 각 지역의 토속성을 바탕으로 자라난 각각의 언어들은 그 지역을 벗어나면 소통에 장애를 일으킨다. 바로 이 때문에 이 소통의 장애를 해소하기 위하여 우리나라 내에서의 원활한 의사 소통을 위하여 보편적인 언어의 약속 체계가 필요해진다. 서울은 그 약속 체계의 중심지였다. 때문에 서울은 비록 말의 토양을 갖고 있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말을 가지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시인은 소통을 위하여 그 서울말, 즉 표준말에 어느 정도 의존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러나 그 서울말이 진주의 기억이 갖게 될 토착성을 보여주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시인은 서울말로 씌어진 시의 옆으로 진주말, 즉 시인의 원래 말로 씌어진 또다른 변주를 함께 보여준다.
시인이 갖고 있는 진주 시절의 기억은 진주말로 나타내지 않았을 때도 충분히 토속적이다. 그것이 진주말로 나타나는 순간 그 풍경의 토속성은 더더욱 강화된다. 진주말을 알아듣지 못해도 우리는 그때의 강화된 토속적 느낌을 충분히 전달받는다. 그 풍경의 느낌은 가난하지만 그러나 평화롭다.
우리들이 이로부터 깨닫게 되는 것은 토속성 평화와 그 평화 속의 행복은 경제적인 풍요와는 별로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그냥 평범하고 일상적인 가난한 삶들이 그 평화를 엮어내는 가장 중요한 핵심을 이룬다. 즉 그 얘기는 경제적 풍요에 관계없이, 세계의 어느 곳에서나, 다시 말하여 이라크에선 이라크대로, 네팔에선 네팔대로 그 곳만의 토속성 평화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뜻이 된다.
그러나 우리는 이 평화로운 풍경의 한편으로 세계의 곳곳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비록 그 전쟁을 직접 겪고 있지는 않지만 하루도 전쟁 소식을 거르고 지나가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이 지구촌에선 매일매일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 전쟁이 가져오는 비극은 하나 둘이 아니다. 우선 전쟁은 사람에게서 사람을 앗아간다. 살육이 전쟁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하얀 모자를 쓴 검은 남자가 하얀 침대에 누어 검은 학살에 대해 꿈을 꾼다
—「회빛 병원」 부분
…(전략)낯선 이들이 이곳으로 들어와서 퍼런 큰 새를 타고 다니는 동안, 아이들은 폭탄을 주머니 속에 넣고 다녔다… (중략) …아이들의 주머니 속에 든 폭탄이 터져 아이들이 공중으로 흩어졌다…
—「그렇게 웃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부분
전쟁은 ‘너’와 함께 “가는 소풍길에”서, “코끼리도 보고 돌고래도 보고 그러려고 가는 소풍길에”서, 그 길을 함께 가던 소녀를 앗아가 버린다. “누군가가 벗어놓은 처참한 속옷”은 그 옷이 떨어져 있는 길이 소풍 길이고, 그 속옷의 주인이 ‘소녀’일 때는 소풍과 소녀가 갖는 평화로운 이미지와 대비되어 더욱 처참함을 더한다. 바로 그 자리에서 시인은 묻는다.
정말 넌 내 옆에 있니?
—「흔들리는 의자」 부분
나는 시인이 거리감을 혼동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즉 시인은 평화로운 곳에 안전하게 살고 있지만, 어느 날 전쟁이 벌어진 어느 나라에서 소풍길의 한 소녀가 폭격이나 또는 어떤 살육의 만행 속에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것이다. 바로 그 순간 시인은 거리감을 상실한다. 그 소녀가 바로 옆에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라진 소녀에 대한 시인의 물음, 즉 “정말 넌 내 옆에 있니?“라는 물음은 시인이 실제 그 현장에 있었기 때문에 나온 물음이 아니라 사실은 그런 참혹한 일이 벌어진 곳에 대한 거리감의 상실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리고 그 거리감의 상실은 이곳의 평화, 즉 그것이 기억의 지층 속에서 캐낸 과거의 풍경 속에서 느끼는 것이건, 아니면 지금 실제적으로 누리고 있는 현재형의 평화이든, 그 평화로부터 행복과 즐거움을 느끼기 보다 오히려 슬픔을 느끼게 만든다.
가령 저녁은 얼마나 평온한 시간인가. 그 저녁에 벗들과 함께 “술자리에 앉아 고기를 굽고” 있다면 저녁의 느낌은 더더욱 평온할 것이다.
지금 우리는 술자리에 앉아 고개를 굽네 양념장 밑에 잦아든 살은 순하고 씹히는 풋고추는 섬덕섬덕하고 저녁 스며드네,
—「저녁 스며드네」 부분
그러나 글을 시작하며 언급했듯이 그 저녁 만찬의 평온함과 행복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에겐 얼마든지 슬픔으로 뒤바뀔 수 있다.
어느 벗은 아들을 잃고 어느 벗은 집을 잃고 어느 벗은 다 잃고도 살아남아 고기를 굽네
불 옆에 앉아 젓가락으로 살점을 집어 불 위로 땀을 흘리며 올리네,
—「저녁 스며드네」 부분
아들을 잃은 벗의 저녁 만찬은 그 저녁의 평화가 깊을수록 더더욱 슬퍼질 수 있으며, 그 아들을 전쟁에서 잃었다면 더더욱 말할 것이 없다. 허수경의 시에선 시인이 전쟁을 겪은 세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겪고 있는 곳의 비극과 거리감이 삭제되어 있으며, 바로 그 때문에 이곳에서의 평화가 저곳의 전쟁이 엮어내는 비극의 바로 옆으로 놓이게 된다. 그리고 그 둘이 나란히 배치되는 순간 평화가 깊을수록 우리는 오히려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전쟁이 가져온 비극의 당사자들에 대한 슬픔에 젖게 된다.
허수경의 시에서 그 전쟁의 시간은 상징적으로는 해의 시간, 즉 낮시간이다. 그래서 해가 뜬다는 것은 어둠이 가신다는 것을 뜻하는 빛의 징조가 아니라 사실은 살육이 시작된다는 아주 두려운 징조이다.
폭탄을 가득 실은 비행기가 날아가던
해 뜰 무렵
—「해는 우리를 향하여」 부분
아직 해는 도착하지 않았습니다만
이곳으로 올 것만은 확실합니다
이삼 초 간격으로 달라지는 하늘빛을 보세요
마치 적군의 진격을 목전에 둔 마을
여인들의 공포 같은
빛의 움직임
—「새벽 발굴」 부분
마치 도륙이 시작되던 어느 도시의
새벽녘처럼 그렇게
삼엄하게 해가 떠오르던 날
—「영변, 갈잎」 부분
해의 시간이란 오늘과 내일의 시간이다. 해는 현재를 밝히며, 우리들의 내일을 비춘다. 아침해가 밝을 때 어제를 돌아보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해의 시간은 우리들을 현재와 미래의 시간으로 치닫게 만든다. 그런데 시인은 “빛 속에서 이룰 수 있는 일은 얼마나 많았던가”를 물으며, 심지어 빛 속에선 “시간을 거슬러 가는 일”이나 “시간을 거슬러 가서 평행의 우주까지 가는 일”도 가능했다고 말한다. 순간 나는 혼란에 처한다. 나에게서 시인이 말하는 이 시속의 빛은 해의 시간에 세상을 환하게 밝히고 있는 대낮의 빛이기 때문이다. 그 빛은 나의 생각 속에선 오늘과 내일로 치닫는 빛이어서 결코 과거로 향하지 않는다. 그런데 시인은 그 빛 속에서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가는 일이 가능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시인은 곧바로 빛 속에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을 때 이룰 수 없던 일이 수없이 많았다고 말한다.
빛 속에서 이룰 수 없는 일은 얼마나 많았던가 이를테면 시간을 거슬러 가서 아무것도 만나지 못하던 일, 평행의 우주를 단 한 번도 확인할 수 없던 일
—「빛 속에서 이룰 수 없는 일은 얼마나 많았던가」 부분
시간을 거슬러가면 실제로 우리는 많은 것을 만날 수 있다. 허수경이 보여주는 진주의 기억들은 그에 대한 한 예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허수경의 그 기억은 사실은 해의 시간에 이루어진 것들이 아니다. 해의 시간 속에서도 우리는 과거를 돌아볼 수 있지만 현재와 미래에 초점을 맞추고 앞으로 치닫는 것이 속성인 해의 빛은 그렇게 치닫기만 할 뿐 사실은 아무 것도 만나지 못한다. 그저 치달을 뿐.
때문에 해의 시간에 세상은 환하지만 허수경은 그 밝음 속에서 오히려 어둠을 본다. 그것은 바로 해의 시간 속에 세상의 전쟁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시에서 이와 정반대의 이미지를 등에 엎고 있는 것이 달이다. 해와 달리 달이 뜬 시간은 어둡다. 우리는 그 어두운 달의 시간에 곧잘 달을 올려다보며, 그렇게 달을 올려다 볼 때, 우리들은 “가슴에 달을 안”(「빈 얼굴을 지닌 노인들만」)을 수 있다. 그리고 달을 안으면 세상이 어두운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속이 환해진다는 느낌을 갖는다.
저 달이 걸어오는 밤이 있다
달은 아스피린 같다
꿀꺽 삼키면 속이 다 환해질 것 같다
—「달이 걸어오는 밤」 부분
해의 시간은 빛의 시간이지만, 그 빛의 시간이 사실은 어둠의 시간이고 통증의 시간인 반면 “달은 내 속에 든 통증을 다 삼키”(「달이 걸어오는 밤」)면서 오히려 나의 아픔을 위로하는 평화의 시간이 된다.
그 달의 시간을 계속 따라가면 그것은 물의 시간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햇볕 속에선 목마르며, 햇볕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갈증을 더욱 목타게 한다. 때문에 우리의 갈증은 종종 해의 시간 속에선 답을 구할 수 없을 때가 많다. 우리가 찾고자 하는 길은 달의 시간 속에 있을 수 있으며, 더욱 구체적으로 물의 시간에 그 답이 있을 수 있다.
해와 불의 시간, 즉 전쟁으로 얼룩지는 시간 앞에서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거의 없다. 우리는 매일 신문과 방송에서 비참한 전쟁의 소식을 전해 듣지만 그냥 먼 남의 나라 일로 듣고 지나칠 수밖에 없다. 시인도 그 점에선 마찬가지이다. 시인은 “내 영혼에 구멍이 뚫리는 것을 멍하니 바라”볼 뿐 그저 ‘속수무책’일 뿐이다. 그러나 “어떤 독재보다 더 지독한 속수무책” 앞에서 “ 내 일생의 어떤 순간도 더 이상 기다림으로 허비하지 않겠다고,/혼자 중얼거리며 기다림을 거부하”겠다던 시인은 실제로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사십이 되어 비 오는 이방의 어둑한 기차역에 서서” 여전히 “오지 않는 기차를 기다리” (「기차역」)고 있는 시인에게서 우리는 숙명이 되어버린 어떤 기다림을 보게 된다. 나는 그 시인의 기다림을 물에 대한 기다림으로 이해했으며, 그 물에 대한 기다림의 가장 명확한 신체적 징후를 슬픔이나 눈물이라고 생각했다.
그 눈물과 슬픔에 대한 기다림을 버릴 수 없을 때, 시인의 눈엔 불이 나무를 태울 때 물의 슬픔이 보인다.
불속에서 마치 새 숲을 차린 듯
제집으로 돌아가는 늙은 양떼의 발목인 듯
하얗게 숨을 죽여가는 저 나무들 나는 어쩔 것인가
몸에 남은 물의 기억을 다 태우는 당신과
당신 물의 기억이 다 지는 것을 들여다보는
나는 어쩔 것인가
—「불을 들여다보다」 부분
그러니까 시인은 불 옆에서 불의 따뜻함에 손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그 자리에서 나무가 불에 탈 때 사라지는 물의 기억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가슴이 아프다. 그리고 시인이 불 앞에서 그렇게 아픈 가슴으로 물의 슬픔을 볼 때 나는 그것이 시인의 숙명이란 느낌이 들었다. 전쟁의 광기로 세상이 불 탈 때 시인은 스러지는 기억들에 가슴이 아프며, 그 앞에서 속수무책일 때 그의 영혼에 구멍이 뚫리는 아픔을 겪으면서도, 그러나 숙명처럼 그 슬픔으로부터 눈을 돌리지 못한다.
혹자는 물을 것이다. 그 슬픔과 눈물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겠냐고. 시인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그것은 어찌보면 “슬픔의 껍데기”에 불과한 슬픔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인은 “슬픔의 껍데기를 쓴” 것일지라도 그것을 ‘기쁨’으로 “맞이하는데” 주저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것은 바로 시인의 숙명, 즉 행복할 때 오히려 더더욱 깊은 슬픔을 보게 되는 자신의 숙명을 받아들이겠다는 뜻에 다름아니다.
결국 시인은 자신이 갖는 슬픔의 한계를 다 알고 있으며, “잘 차린 식사가 끝나고/웃으면서 제사를 지내는 가족 같은/기쁨”이 우리 모두가 누려야할 평화와 행복의 시간이지만 그 시간의 곁에 있으면 오히려 슬퍼지는 것이 온갖 전쟁이 끊이지 않는 이 세계를 살아가는 시인의 숙명이란 것도 알고 있다. 그리하여 그의 고향 진주의 기억이 보여준 토속성 평화에서 시작한 그의 걸음은 먼나라에서 계속 전쟁이 이어지는 시기를 거치면서 결국은 슬픔 속에서 마감이 되고 있다.
3
허수경의 첫 시집은 그 제목이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라는 것이었다. 그 시집의 제목이 된 구절은 「탈상」이란 시 속에서 나왔다. 그 시는 내일의 탈상을 앞두고 오늘 고추모를 옮기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아마도 시인은 고모나 혹 친척 중의 누군가가 같이 산 사람을 떠나보내고 탈상을 할 때 고추모를 옮기며 눈물을 흘리던 장면을 보았던 것이리라. 그때 허수경은 그 슬픈 눈물의 자리에서 “붉은 고추가 익는”것을 본다. 시인이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탈상」)라는 잠언을 얻어낸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나는 그때 허수경이 보았던 슬픔의 힘이 이번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그때의 슬픔이 토착적이고 자연적이었던 반면, 이제 시인은 그것과는 유가 다른 부조리하고 이해할 수 없는 죽음에 접하고 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그는 그 자신의 슬픔으로 그 죽음의 곁을 지키고 있다.
혹 아는가. 그 옛날 허수경이 보았던 슬픔이 “붉은 고추”로 익었듯이 오늘 허수경이 보여준 슬픔이 이 지구상에서 불의 전쟁을 잠재워 물의 슬픔을 달래줄 작은 시작이 될지. 하긴 전쟁을 반대하는 적극적 실천의 걸음도, 그 시작의 자리는 바로 허수경이 보여주는 그 슬픔과 눈물이 아니었겠는가. 그러니 세상 사람들이여, 그 슬픔의 힘에 마음을 보태고 싶거든, 뜨거운 태양 아래 눈물이 말라버린 이 세상을 어디 한번 당신이라도 따뜻한 슬픔으로 함께 적셔보라.
(『현대시』, 2006년 2월호, 서평)
4 thoughts on “불에서 물의 슬픔을 보다 —허수경 시집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
서울내기들은 참 “기억의 집”으로 뭘 끌어 냄이 힘들다는 생각이 드네요
요즈음은 시골이 고향인 분들이 참 부러워요
섬진강 시인은 그 아름다운 봄을 표현할 수 있고요
제주도가 고향이라면 그 많은 오름들과 전설의 꽃들…섬을 추억 할 수 있는데
향토성이 짙은 글들을 풀어 나갈 수 있잖아요
허 수경 시인도 진주의 기억을 그려 내었나봐요
그냥 꿈꾸는 섬을 그려야 하나요…
봄엔 남산에 올라가서 물어 봐야겠어요
근데 남대문도 저리 되었으니…ㅠㅠ
대학까지 진주에서 다녔으니 그 기억은 엄청날 것 같아요.
전 중학교 마치고 서울로 올라왔거든요.
고향에 내려가면 기억이 서리지 않은 곳이 하나도 없을 정도죠.
서울은 기억들을 모두 뭉개버려요.
예전의 국도극장, 대한극장, 명보극장, 그런 곳들만 해도 지금은 옛추억을 하나도 기억해 낼 수가 없으니까요.
가봐야 다 변해버렸으니…
제가 사는 동네만 해도 벌써 몇년 사이에 상점이 수도 없이 생겼다 사라졌어요. 어, 여기 있던 자전거포 없어졌네…
제 고향의 상점은 제가 클 때나 지금이나 같은 주인이 여전하죠.
블로그에라도 어릴 적 기억을 끄집어내 잘 살려내시면 아주 좋을 것 같아요.
‘혼자 가는 먼집’이라는 시를 읽었지요
시니컬한 ‘킥킥’이란 단어가 인상적이었어요…
지난 달에 저도 허수경 시인의 이 시에 많이 머물렀는데,
여시인이 주는 향기~내면풍경에 푹 빠져 있었죠.
이렇듯 훌륭한 글로 설명해 주시니…시인님은 참 행복 할 것 같아요
불과 물~강은교 시인의 ‘우리가 물이 되어’란 시도 생각 나네요
허수경님은 독일에서 이 시집을 내신건가요?
어떤 묵묵한 발효의 시간이 제목에서 느껴진답니다
저도 이 시집을 꼭 갖고 싶네요..
예, 독일에 있으면서 낸 것으로 알고 있어요.
아예 독일에서 사는 거 같아요.
독일 사람하고 결혼했다고 들었거든요. 정확한 정보는 아니고 그냥 오다가다 들었어요.
그참 인연이란게 이상한 거 같아요.
처음 허수경 시집이 나왔을 때 그 서펑을 썼었는데 나중에 또 그 시인의 시집과 만나게 되더라구요.
“혼자 가는 먼집” 그 시집에 나오는 악기에 관한 얘기도 인상적이죠.
악기는 몸이고 소리는 악기의 마음이라는…
그 영향 때문인지 아는 사람들이 기타를 잘 치는데 그때면 기타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곤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