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나 모네는 내 그림을 보지 못했다 – 화가 이상열과 술을 마시다

Photo by Kim Dong Won
2008년 3월 14일
화가 이상열 선생님의 작업실에서

고흐전을 보면서 이상열 선생님의 그림이 보고 싶었다.
다른 이유는 없었고,
그가 내가 아는 유일한 화가였기 때문이었다.
연배는 한참 위이지만
내가 전화하면 반갑게 받아주고,
또 기꺼이 시간을 내주고,
술 한잔 하면서 그림을 얘기하고 삶과 사랑을 말할 수 있고,
그가 화가인 유일한 사람…
저녁 다섯 시에 만나 그의 그림을 보았고,
그 뒤 작업실을 나선 우리는 술집을 순례하며 밤 열두시를 넘겼고,
많은 얘기들 가운데서 두 가지가 기억에 남았다.

“고흐나 모네는 내 그림을 보지 못했다.”
당연한 얘기 아닌가.
그들이 앞선 시대의 사람이고, 또 이미 세상 뜬지 오래된 사람들이니.
“난 고흐나 모네, 그리고 박수근을 좋아한다.
난 그들의 그림을 즐겨보았고 많이 알고 있다.
내가 그들의 그림을 보았다는 것은 위험이 되기도 하고, 또 가능성이 되기도 한다.
위험은 내가 그들을 봄으로써 그들의 추종자가 되는 경우이다.
그 위험에 말려들면 난 그들의 아류로 전락하고 만다.
아류는 그들의 그림 안에서 안주하기 때문에 자신의 그림 속에서 자신을 찾을 수 없게 된다.
가능성은 내가 그들을 봄으로써 그들을 넘어서는 경우이다.
그들은 내 그림을 보지 못했지만 나는 그들의 그림을 보았으니
최소한 내게는 그들을 넘어설 가능성이 있다.
그림에 무슨 앞서고 뒷서고가 있겠냐마는
적어도 그들이 내 그림을 보지 못했고,
나는 그들의 그림을 보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나는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지 모른다.
물론 그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화가라면 일단 그런 꿈이라도 품어야 한다.”
오랜 만에 본 그는 그림에 대한 열정이 한층 더 뜨거워져 있었으며,
자기 그림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더욱 깊어져 있었다.
예술가가 그런 자기 믿음없이 어떻게 그 길을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 그림으로 남겠다.”
그가 그림을 그리는 화가이니 이것 또한 당연한 얘기 아닌가.
“그림을 그리긴 하지만 나도 세속의 인간인지라
끊임없이 유명세의 유혹에 시달린다.
그림 세상도 인간들이 엮어내는 세상이라
이곳에도 일정하게 조류가 있고,
그 조류는 내가 가는 길과 어긋나기도 하고 겹쳐지기도 한다.
그러나 조류란 조류가 바뀌면 그 조류를 따라갔던 그림들도 사라져 버린다.
또 그림의 세상에도 권력이 있고, 그 권력 앞에 줄을 서는 사람이 있다.
줄을 섰을 때는 자신의 그림도 맨앞자리에서 세상 사람들의 시선을 받지만
그 권력자가 물러나면 그와 동시에 줄을 섰던 사람의 그림도 사라져 버린다.
나는 오직 그림으로 남고 싶다.
고흐가 그랬고, 모네가 그랬으며,
또 박수근도 알고 보면
그림으로 남았다.”
난 그의 얘기를 들으며 정치를 생각했다.
사람들은 정치를 권력과 오인한다.
정치가 예술에 값한다면 권력은 유명세에 대한 유혹이다.
정치는 권력을 잡는 것이란 말은
결국 화가에게 그림은 곧 유명세를 잡는 것이란 말로 치환이 된다.
당연히 그건 아니지 않은가.
고흐가 그것을 증명하고, 모네가 그것을 또 다시 말해준다.
정치가 권력을 잡는 것이라고 말하는 뻔뻔스런 세상에서,
그 권력을 잡고는 온갖 뻔뻔스런 일을 마다않는 요즘의 세상에서,
그가 그림으로 남겠다고 한 말은 나에겐 기억에 남기에 충분한 말이었다.
그는 39세에 요절한 화가 손상기를 두 번 직접 본 적이 있다고 했다.
그가 본 손상기의 그림은 순수했다고 했다.
화가 이상열이 말한 순수는
손상기의 그림이 참여적이 아니란 얘기가 아니라
손상기의 그림 속에 그림 이외의 꿈이 들어있지 않았다는 얘기였다.
유명세나 권력욕과 부단히 싸우며
오직 그림만을 화폭에 담으려는 꿈이 손상기의 그림 속에 있었던 셈이다.
그것은 화가 이상열의 꿈이기도 했다.

우리는 들어간 술집마다
고흐와 모네, 박수근, 그리고 이상열의 그림을 나란히 허공에 걸어놓고
즉석 전시회를 열고는 취한 듯 그림을 감상했다.
그리고 노래를 좋아하고 즐기는 이상열 선생님은
가끔 <아침이슬>을 때로는 속삭이듯 나직히,
또 때로는 폐부 깊숙이 넣어주겠다는 듯이 목청껏 뽑아올렸다.
그럼 나는 브라~보를 외치며 장단을 맞추었다.
사람들 눈총좀 받았다.

Photo by Kim Dong Won
2004년 10월 2일
이상열 선생님의 노래 실력은 보통이 아니어서
노래 부를 때 프로가 그 앞에 있다가는 얼떨결에 뺨맞기 십상이다.
종종 그의 그림보다 노래가 듣고 싶을 때가 있을 정도이다.
남진보다 더 멋진 그의 넘진 노래는 듣고 있으면 우리는 절로 숨넘어 간다.
하지만 같은 노래를 열네 가지 창법으로 줄기차게 이어 부르는 경우도 있어
듣는 사람의 끈기를 요하기도 한다.

12 thoughts on “고흐나 모네는 내 그림을 보지 못했다 – 화가 이상열과 술을 마시다

  1. 선생님에겐 도대체 세월의흔적이 보이질않아요.
    비켜가나요?
    항상 건강하시고 즐거우신것같아서 좋습니다.^^

    1. 완전 동감.
      그래도 이제 주량은 많이 약해지셔서
      어느 정도 대작을 할 수 있다는게 저에겐 다행이었습니다.
      예전에는 3 대 1로 먹어도 제가 나가 떨어져
      술자리는 은근히 겁이 났었거든요.
      모두의 건강을 빌어봅니다.

  2. 또 신을 원망합니다.
    예전 학교 다닐 때 보면 국어 잘하는 놈이 영어나 수학도 잘하더라고요.
    그런데 농구나 축구까지 잘하면 정말 속상했습니다.
    미스 코리아가 공부까지 잘하고 똑똑하면 부럽다가도 은근히 샘이 납니다.

    이상열 선생님도 그림에다 노래까지 잘하시니 신을 원망할 수 밖에 없네요.
    신이시여!
    한 사람에게 한 가지 재능만 주옵소서.

    1. 저는 특히 그 노래 실력이 부럽기 짝이 없습니다.
      저의 경우엔 남들이 다 아는 노래를
      전혀 모르게끔 부르는 지경이거든요.
      심지어 어떤 사람은 제가 노래를 부르면
      배를 잡고 웃다 견디질 못해 탁자 밑으로 기어 들어가기도 합니다.

  3. 예전에 흐드러진 개나리 그림 이분께서 선물해주신거죠?
    그런 멋진 그림도 선물 받으시고 무지 부러워서 기억해요.^^
    노래도 잘 부르시나봐요.^^

    1. 예, 바로 그 분이죠.
      노래에 유머 감각하며,
      같이 술먹으면 배잡고 웃으며 시간 보내다
      도끼 자루 다 썩히고서야 일어서게 되죠.^^

  4. 그날 너무 기분이 좋아서 오바했습니다.
    또한 앵콜도 없이 여러곡을 불렀으니 부끄럽습니다.^^
    그래도 삶과 그림에대한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이야기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는 조금전에 전남광양의 매화꽃을 스캐치하고 집에 도착했습니다. 군락을이룬
    매화농원은 호흡이 가쁠정도로 너무나 감동적 이었습니다.

    1. 무슨 말씀을요.
      그날 제가 오히려 오버한 느낌입니다.
      선생님의 열정은 오히려 제가 쫓아가고픈 뜨거움인 걸요.
      그날 저녁과 밤의 모든 기억이 저에겐 환상처럼 남아있습니다.
      전남 광양의 매화가 어떻게 선생님의 화폭에서 가지를 뻗고 또 꽃을 피울 것인지도 궁금하기만 합니다.
      고맙습니다.
      그날 저녁, 제게 내준 시간….

    2. 어머! 안녕하세요?
      전보다 약간 좋아지셨나요?
      프로가 아니고는 노래할 때 저런 입모양과 표정이 안나오거든요.
      그 노래소리가 막 들리는 듯해요. 같은 노래의 14가지 창법 들어보고 싶어요.

      이 긴 길도 단숨에 읽어내려 갔네요.

    3. 저 때는 헤인님도 같이 계셨잖아요.
      그때 찍은 헤인님 사진 아직도 제게 있는데…

      술이 참 많이 약해지셨어요.
      보통 저의 세 배를 드시고, 저는 그때쯤 나가 떨어지곤 했었죠.
      그림과 노래, 술이 있는 자리는 밤이 어떻게 가는 줄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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