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간만에 김세랑을 만났다.
미술하는 젊은 친구이다.
다시 그림을 그리겠다고 했다.
같이 점심먹고 사진을 찍으며
그의 작업실이 있는 삼청동, 그리고 가회동과 북촌의 한옥 마을을 돌아다녔다.
돌아와서, 찍어온 그의 사진을 보니 한발로 서 있다.
가끔 예술하는 사람들은 말보다 몸으로 얘기를 대신한다.
사진 한 장 속으로 상상력이 슬쩍 끼어들고,
그와의 대화 하나가 흘러갔다.
내가 묻는다:
“당신에게 그림이란 무엇인가?”
그가 답한다:
“나에게 그림이란
가끔 세상에서 한 발을 빼고
한 발로만 서보려고 하는 시도가 아닐까 싶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발로 굳건하게 세상을 딛고 서려 한다.
두 발로 딛고 서면 자세가 안정되고 균형이 잡힌다.
적당히 살만한 좋은 집,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안정된 직장 등등이 두 발로 섰을 때의 그 안정감과 행복이 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것을 꿈꾼다.
하지만 나같은 사람은 숙명적으로 두 발을 모두 세상에 내줄 수가 없다.
가끔 세상에서 한 발을 빼고 한 발만으로 서서
그 불안한 몸짓으로 세상을 살아가려는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세상에서 두 발을 다 뺄 수는 없다.
현실을 완전히 무시하고는 일단 목숨의 연명이 어렵기 때문이다.
나에게 있어 그림은 두 발 중 하나를 슬쩍 세상에서 빼내고
그 하나의 발에 자유를 주는 것이다.
한발이 허공으로 들리면 그때부터 내 자세는 안정을 잃고 불안해 지지만
그 발은 허공에서 느낌이 가는 대로 길을 트고
나를 어디론가 끌고 간다.
나의 경우
그 발이 끌고 가는 곳에 그림이 있다.”
그가 길가의 난간에 몸을 기대고
멀리 경복궁쪽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그곳에 온통 세상이 꽉차 있었다.
그가 세상의 한 귀퉁이를 지우고
그 자리에 그림을 그리려 하고 있었다.
15 thoughts on “예술이란 한발로 서 보는 것 – 김세랑과의 대화”
와일드해보이시는게 참 멋진 분이시네요.^^
그림은 어떤 그림일지 궁금해져요.
김동원님 글을 읽으면 글이 먼저였고 세랑님의 포즈가 그 후였던것같은 착각이.^^
겉보기와는 많이 달라요.
눈이 슬플 정도로 맑아요.
글이란게 항상 몸의 뒤를 쫓아가는게 대부분인데
막상 적어놓고 보면 꼭 앞서고 있는 느낌이 들 때가 있더라구요.
십자군 시대의 기사가 입는 바지 같은데요…ㅋ
동원님의 맛나는 글이
세랑님의 눈빛에 비추어져 더 멋진 그림으로 빛나기를~!
작은 힘이라도 되어 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지요.^^
제목과 사진의 매치가 잘 되네요..
세랑님 화이팅!
저도 세랑님께 화이팅을!!
가슴에 와닿는 평론 쉬운듯 하면서도 깊은 평론
그야말로 최고지요….^^
시나 그림이 안좋으면 그런 평론도 아예 불가능하지요.
좋은 시, 좋은 그림 옆에 평생 빌붙어 살고 싶어요.^^
위 두 분의 말씀에 100% 공감입니다.
‘작가 스스로도 보지 못하는 세계와 관점을 찾아내 주시는 진짜 평론’
‘무겁지만은 않은 무거움의 글’
이야~ 제가 평소에 생각하던 동원님의 글에 대한 생각을 두 분이 정리해 주셨어요.
유럽이나 어디 멀리 한번 갔다와도 될 거 같습니다.
비행기 탔으니 말예요.^^
바지가 특이하신데요?
동원님의 서고에는 무겁지만은 않은 무거움이 있는 듯 싶네요.
괜히 무거우려고 애쓰는 그런 글이 아니라, 많은 생각을 하게 하지만,
동감할 수 있는 그런…
여전히 나에겐 젊은 친구들이 희망이예요.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현실에 대해 쓴소리를 하며 살아가는…
미디어의 시대라 정님의 할 일이 점점 커지는 거 같아요.
제가 이래서 동원님이 최고의 평론가라고 말하는 거라니깐요!
‘등잔밑이 어둡다’고, 세상을 관통하는 직관을 가진 작가들 조차도 스스로에 대해서는 불완전하기 마련인데, 동원님께서는 작가 스스로도 보지못하는 세계와 관점을 찾아내 주시니 그게 바로 진짜 평론이지요.
불필요한 수사와 외국어를 남발하지 않아도 발뒷꿈치부터 정수리까지를 꼬챙이로 꿰어버리는 듯한 이 통찰력이야말로 제가 동원님의 글과 사진을 좋아하는 이유랍니다.
나는 그저 옆자리에 함께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영광이고 즐거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