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북문에서 북쪽으로 계속 걸음을 옮기면
벌봉이 나오고, 그 벌봉의 산자락은 매봉과 객산, 쥐봉으로 이어져
결국 하남시에 이르게 됩니다.
나는 하루는 그 길을 거꾸로 되짚어 남한산성에 올랐습니다.
또 하루는 남한산성에 간다고 길을 나섰지만
버스를 잘못타는 바람에 엉뚱한 동네로 가고 말았습니다.
그 날은 남한산성 줄기를 멀리 지켜보면서 일자산을 잠깐 올랐다 내려왔습니다.
남한산성에 오르는 가장 짧은 길은
하남의 고골에서 남한산성의 북문으로 가는 길 같습니다.
그 짧은 길로 남한산성을 올라간 날은
그녀와 남한산성에서 만나 연애를 했습니다.
하루는 남한산성은 못오르고 그 언저리만 맴돌다 온 날도 있습니다.
어느 길을 갈 때나 나는 항상 꽃들과 눈을 맞추었습니다.
그 때의 꽃들을 함께 나눕니다.
앞의 것들이 대략 낮은 곳에 있는 꽃들입니다.
2008년 4월 19일 강동구 일자산에서
별꽃.
왜 별이지 하는 분들이 있을 듯 싶습니다.
사진의 모양만으로 보면 곧장 별이 연상되지는 않으니까요.
아주 작은 꽃입니다.
무리지어 있을 때 보면 정말 하늘의 별처럼
푸른 풀밭에 총총하게 떠 있는 느낌입니다.
나는 꽃의 얼굴, 그 피부결을 보고야 말겠다는 듯이
들이대는 것을 좋아합니다.
2008년 4월 15일 하남시 고골의 선법사에서
명자나무꽃.
꽃을 보고 있으면 어디선가 명자란 이름의 누나가 나타날 듯한 꽃.
2008년 4월 19일 강동구 일자산에서
제비꽃.
나는 처음엔 제비꽃에 제비는 없고 꽃만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그건 붕어빵엔 붕어는 없고 빵만 있다는 얘기의 변형이었지만
붕어빵이 “껍데기일 뿐인 육체를 빌려”
붕어의 혼으로 끊임없이 “부활”한다던
시인 연왕모의 입장을 강력하게 지지했던 나로선 다소 뜻밖의 생각이었습니다.
나는 가끔 말을 갖고 노는 재미에
나의 원래 생각을 나도 모르게 빗나갈 때가 있습니다.
물론 이제는 생각을 고쳐 먹었습니다.
제비꽃은 제비를 기다리는 마음을 담아서 피는 꽃입니다.
아니면 돌아온 제비를 맞는 반가운 마음을 담은 꽃이기도 합니다.
붕어빵이 붕어의 혼으로 부활한다면
제비꽃은 제비에 대한 기다림이나 제비를 맞는 마음으로 봄마다 부활합니다.
2008년 4월 19일 강동구 일자산에서
제비꽃.
요렇게 보니 또 제비 같기도 합니다.
제비 두 마리가 열심히 지저귀고 있는 듯 합니다.
2008년 4월 19일 강동구 일자산에서
양지꽃.
양지꽃의 노란 꽃잎 가운데서 연두빛 별을 발견한 날,
벌레 한마리가 그 별로 날아들었습니다.
벌레야, 벌레야, 그래, 오늘 너의 별은 어떠니?
–별은 아주 꿀처럼 달콤한 걸.
아하, 그렇구나, 너에게 별은 달콤하구나.
2008년 4월 19일 강동구 일자산에서
양지꽃.
햇볕 잘드는 양지바른 곳에 피는 꽃.
볕이 지면 오그라든다고 하니,
추위나 어둠을 제일 싫어하는 꽃일지도 모릅니다.
2008년 4월 16일 하남의 고골에서 남한산성 북문으로 오르는 길에
냉이꽃.
냉이꽃을 보니 올봄 산새마을님이 가져다 주었던 냉이가 생각납니다.
냉이국을 끓여 먹었죠.
이상하게 냉이국을 한그릇 먹고 나면
뱃속 가득 봄이 차오르는 느낌이 납니다.
그렇지만 냉이국의 맛은 참 미묘해서
완전히 봄 느낌만 나는 것은 아니고
이상하게 찬바람 불던 겨울 느낌이 엷게 남아있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냉이국을 먹을 때면 한편으로 시원한 느낌이 몸에 퍼져나가곤 합니다.
뿌리채 뽑아들고 몸전체로 내게 왔던 냉이가
오늘은 하얀 얼굴을 내밀고 내게 인사합니다.
올봄에 자기를 국끓여 먹었다고 탓하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보다는 ‘너에게서 우리의 냄새가 나’하고 말하는 것 같았죠.
2008년 4월 16일 하남의 고골에서 남한산성 북문으로 오르는 길에
괭이눈.
고양이 눈이란 뜻입니다.
어떻게, 야옹하고 울 것 같은가요?
2008년 4월 15일 하남의 객산에서
양지꽃.
이름바꿀까요? 바람개비 꽃이라고.
바람불면 빙그르르 돌아갈 것 같습니다.
2008년 4월 15일 하남의 객산에서
양지꽃.
크기로 보면 볼품없이 작지만
눈을 맞대고 들여다보다 보면
그저 두 송이만으로도
마음을 가득채우고도 남습니다.
2008년 4월 14일 하남의 객산에서
양지꽃.
화관으로 선물해 드릴까요?
어떻게 쓰냐구요?
우리가 대지가 되었다고 상상하고
꽃의 뿌리가 자리한 곳으로 머리를 잘 들이밀어 보세요.
2008년 4월 16일 하남의 고골에서 남한산성 북문으로 오르는 길에
잔털제비꽃.
항상 제비꽃하면 짙은 보라색을 연상했었는데
눈여겨 보니 제비꽃의 색도 다양합니다.
어떤 색이 가장 먼저 였을까요.
알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흰색을 가장 앞자리에 놓아주고 싶습니다.
점차 색을 물들여보다 짙은 보라까지 가지 않았을까요.
하긴 반대일지도 모릅니다.
색을 조금씩 빼면서 가장 나중에 흰색을 얻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예요.
2008년 4월 14일 남한산성 벌봉에서
개별꽃.
별꽃이 진짜 별꽃이라면
이건 별꽃과 비슷하긴 해도 사실은 가짜인가 봅니다.
개살구, 개나리, 개망초처럼 ‘개’자가 앞에 붙어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가짜라고 해도 보는 이의 눈엔 별꽃보다 더 예쁩니다.
음, 다들 예쁜 미모에 조심들 하세요.
예쁜 건 가짜일지 모른다고 꽃들이 말합니다.
2008년 4월 16일 하남의 고골에서 남한산성 북문으로 오르는 길에
현호색.
물구나무 서서 입맞추기 하려는 듯 보입니다.
가끔 색다른 입맞춤을 즐겨보는 것도 괜찮습니다.
좀 힘들기야 하겠지만…
2008년 4월 16일 하남의 고골에서 남한산성 북문으로 오르는 길에
고깔제비꽃.
분홍빛 제비꽃입니다.
색깔로 보았을 때 진달래와 친구 사이인지도 모릅니다.
고깔이 어디에 있나 찾지는 마세요.
고깔은 잎이 가지고 있답니다.
그것도 잎이 필 때.
사실 꽃못지 않게 잎에도 눈이 갔지만
그래도 역시 분홍빛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16 thoughts on “남한산성 산자락에서 만난 꽃들 2”
중간의 제비꽃 하나 오류입니다.
그 제비꽃은 흰젖제비꽃으로 검색을 해 보세요.
금강제비꽃은 제비꽃 중에서 가장 잎이 큰 꽃입니다.
설악산 등지의 깊은 산 수림 속에 피고요.
도움말 고맙습니다.
확인해보고 수정하겠습니다.
아는 것이 그것밖에 없어서…
제가 찾아봤더니 잎의 모양이 흰젖제비꽃은 타원으로 길다고 나옵니다.
잎모양이 금강제비꽃이 아닌 것은 확실하군요.
현재로선 잔털제비꽃에 가장 가까워 보입니다.
잔털제비꽃으로 고치겠습니다.
그간 정신 없어서 오늘에야 들렸습니다.
동원님 블로그에 오면, 저도 한국가서 꽃을 유심히 보고 싶어지게 되네요.
한국가서 미래마누라한테 꽃 사달라고 조를려구요. =)
점심은 맛있게 드셨나요?
오늘 점심은 라면으로 하자고 하네요.
꽃, 좋지요. 꽃을 하도 좋아해서 어느날 마눌 생일인 줄도 모르고 꽃을 사들고 엉뚱한 곳에 가서 그 꽃이 엉뚱한 여자한테 넘어가는 바람에 그때 일로 지금도 가끔 핀잔을 듣습니다.
한국 오면 삽겹살 집에서 모여야죠.
괭이눈.. 웃겨요 생긴 모습이.
양지꽃은 아주 작네요. 저두 어제 봄맞이꽃을 찍었는데 같은 크기애들이네요.
현호색은 꽃이름이 넘 고상하지 않아요?
괭이눈은 이름도 재미난 것 같아요.
현호색은 꽃이름이라기보다 약재 이름이라고 하는거 같아요. 이 꽃의 뿌리를 한약방에서 현호색이라 하는가 본데 그게 그냥 꽃이름이라고 하더라구요. 활명수에 이 성분이 들어간다고 하더군요.
저희 엄마가 충청도 고향이신데 전라도와 인접한 곳이라서 두 지방의 사투리를 섞어서 쓰시거든요.
고양이를 ‘괭이’이라고 하세요.^^
쟤네들 옛날부터 정말 좋아했었고 언젠가는 식물도감 찾아서 이름을 한 번씩 불러주리라 싶었는데 동원님 덕분에 요즘 제대로 이름 배우고 있어요.
여기 와서 댓글 달면 두 번에 한 번은 꼭 ‘감사’가 들어가요.
어찌됐든 이번에도 감사!^^
꽃이름을 찾아서 달긴 다는데 달면서도 이게 맞는가 싶어요.
구분이 쉽지가 않아서요…
이번에도 하나는 틀렸네요.
개별꽃 참 예쁘네요.^^
사진찍으시는 남자분들은 꽃도 참 많이 아시는거같아요.
사진찍으면서 더욱 감성적이 되시는것인지..^^
그렇더라도 김동원님만큼은 흔치 않을것같아요.
밑에 벚꽃잎 목걸이나 저 양지꽃 화관을 보면요.^^
저는 아는 수준은 못되고… 그저 찍어와서 나중에 찾아보는 정도예요. 봄꽃을 150종 정도 알아볼 수 있어야 좀 아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저는 다 꼽아봐야 열개 정도 아는 것 같아요. 그것도 꽃이 없으면 모르고… 잘아는 사람은 잎만봐도 알더라구요.
제비꽃은 제비를 기다리는 마음과 돌아온 제비를 반갑게 맞이하는 마음으로 피어난다는 표현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꽃 하나하나에 마음을 담은 정성이 아릅답습니다.
냉이꽃이 저렇게 예쁜 줄 오늘 알았구요.
양지꽃이 말려들어가는 모습처럼
들꽃들 마음속에 곱게 접어 넣으렵니다.
꽃편지 감사합니다.
우리가 먹는 나물이 꽃이 예쁜 경우가 많았어요.
씀바귀도 그렇고…
매일 나물만 봐서 처음엔 무슨 꽃인가 하다가 나중에 알고 신기했죠.
땅에 붙어있다가 키를 쑤욱 키운 것도 그렇구요.
먼길 와주시구… 고마워요.^^
양지꽃은 꽃잎이 조금씩 떨어져있는 것이
볕 쬐기에 알맞게 서로 자리를 잘 잡았네요^^
다시금 꽃이란 꽃은 다 이뻐, 생각해보아요.
오늘 올린 꽃들은 다들 흔한 꽃들이라서 누구나 한번 본 경험이 있을 것 같아요. 저는 흔한 꽃이 좋더라구요. 개나리나 진달래도 그래서 좋구.
남한산성의 꽃들을 아름답게 설명해 주시는 동원님 감사 드립니다
하루를 살아도 기쁜 미소로 답하는 애기 꽃들과 눈 마주치니
생명의 봄빛이 마냥 아름다워서 봄밤에 잠이 들기 어려울 듯 하네요
허리를 굽혀야 본다는 제비꽃~~~!
단 하루를 살아도 봄을 노래하는 꽃들이 사랑스러워요 *^.^*~
꽃들이 다들 작고 땅에 납짝하게 엎드려 있는 통에 사진 찍으려면 아예 무릎을 꿇고 예를 올려야 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