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마을의 어귀에 들어서면
한눈에 벌써 오랜 세월을 그 자리에 있었음이 분명한
나무 한그루가
가장 먼저 사람들을 맞아주었죠.
멀찌감치서 바라보고 있을 때면
산자락 아랫 부분에 자리한 그 나무는
한눈에 들어오는 아담한 체구로
마을의 품에 포근하게 안겨있었어요.
그때면 나무는 항상 서 있는데도 불구하고
조는 듯 마는 듯 했죠.
햇볕이 따뜻한 노근한 날엔 더더욱 그런 느낌이 선명했어요.
나무는 항상 그 자리에
그 높이와 그 자세로 서 있었죠.
그리고 그렇게 마을의 품에 안겨있을 때면
나무는 정말 자그맣게 보였죠.
항상 무심히 그 곁을 지나치던 나는
어느날
붙박힌 운명을 사는 그 나무도
산의 너머가 궁금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그게 어디 가능하겠어요?
나무가 뿌리를 뽑아들고
그걸 다리로 삼아
내가 가는 오솔길을 뒤따라 산을 오른다면
나무는 산너머를 보는 대신
아마 그걸 끝으로 제 삶을 통채로 마감해야 할 거예요.
세상의 무슨 일이든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 되면
그건 너무 어려운 일이 되고 말죠.
그래도 난 나무에게 산의 너머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러다 어느날 문득 깨달은 건데
나무의 키는 고정되어 있는 게 아니었어요.
나무의 키는 고무줄 키!
늘어났다 줄었다 제 맘대로죠.
내가 멀찌감치 있을 때면 새끼손가락만큼 작지만
내가 나무 가까이 다가가면 내 키를 다섯 배는 넘어서며
쑥쑥 자라죠.
내가 왜 지금까지 그걸 몰랐던 거죠?
붙박힌 운명에게도 항상 숨통은 있는 거예요.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나무는 제 높이를 산마루까지 높였고,
결국은 산마루를 제 코끝쯤에 걸고 내려다 보기에 이르렀어요.
그러니까 나무는 내가 멀찌감치 있을 때면
마을의 품에 묻혀있지만
내가 나무의 품에 몸을 묻었을 땐
제 키를 쑥쑥 키워
사실은 세상의 중심이 되어 있었던 거죠.
그러니 혹시 사랑하는 사람이 작고 왜소하고 위축되어 보인다면
가장 먼저 그녀와의 거리를 의심해 보아야 할 것 같아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너무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얘기죠.
그렇게 멀찌감치 떨어지면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의 품에 갇혀버릴 수 있어요.
사랑하는 날엔 그녀를 데리고 산에 오르기 보다,
그녀가 있는 그 자리에서,
세상이 모두 내려다보이는 아득한 높이를 선물하고 싶어요.
이제 생각해보면 그건 아주 간단한 일 같아요.
그건 세상의 품속에 그녀를 가두고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그녀의 품속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오늘
그녀의 가슴을 열고 그녀의 품속으로 들어가 보려구요.
아마도 그녀의 품에 나를 묻는 순간
나는 세상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아득한 공중 정원의 호수에 몸을 둥둥 띄운 기분이 될 것 같아요.
생각만 해도 신나네요.
7 thoughts on “산과 나무”
사랑이란 어떤 대상이 변화해 갈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해 주려는
적극적 의지의 표현이다~~
그러고 보니 내 얘기가 그렇게 되어 버렸네요.
저런 나무 있는 마을 참 부러워요.^^
여름이면 초록으로 가을이면 물든 낙엽으로
그 밑에 앉아있기만해도 벗이랑 얘기하는듯 기분좋을것같은..
마당에 한그루 있으면 더 좋을 듯.
근데 낙엽쓸기 귀찮다고 싫어하는 사람도 봤어요.
실제는 더 큰 나무같은데 좀 작아보이네…
사랑의 거리라…
넘 가까우면 전체가 보이질 않고
넘 멀어지면 모습이 잘 보이질 않으니…
정답을 모르겠네…(사랑의 정답이란 말 자체가 좀 아이러니하기도 하구…)
가까이 하고 싶은 날 가까이하고
거리를 두고 싶은 날 홀연히 거리를 둘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아무런 예측이나 희망도 통하지 않는게 사랑인 거 같아.
그래서 사랑하게 되는 거 같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