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재가 촛불에 관한 시 두 편을 내놓았다.
이문재는 말한다.
촛불은 꽃이다
─이문재, 「촛불」 부분
라고.
그 꽃은 불꽃을 말함이다.
이문재의 관찰에 의하면
“촛불”은 자신의 “맨 꼭대기”에 심지를 두고
그 심지에 불을 밝혀 꽃으로 삼는다.
그 때문에 처음 불을 밝혔을 때 “초의 불꽃”은
초로 보자면 “제 몸의 가장 높은 곳”에 있다.
이문재는 또 말한다.
촛불은 제 몸에 뿌리 내린 꽃이다
─이문재, 「촛불」 부분
라고.
시인의 관찰에 의하면
촛불은 “언제나 가장 높은 곳에서 태어나”지만
점차로 낮아져 결국에는 “가장 낮은 곳에서 제 몸과 함께 사라진다.”
그런데 시인은 또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온 사람들을 보았다.
시인의 눈엔 그 사람들이 촛불로 보였다.
그러고 보니, 사람에게는 자기 머리가 심지였다
사람들은 제 머리에 불을 붙이는 대신
초의 심지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촛불을 종이컵에 담았다
─이문재, 「촛불의 노래를 들어라」 부분
그러니까 시인의 눈에 사람들은 자기의 몸을 살라 거리로 나선 촛불이었다.
그들이 손에 든 촛불은 곧 그들 자신이었다.
민주공화국인 이 땅 대한민국에서
모든 권력의 원천인 국민이란 가장 높은 자리에 서 있던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매일밤 촛불이 되어 가장 낮은 자리로 몸을 낮추었다.
그리고 촛불이 되어 노래를 부른다.
그렇지만 대통령이란 작자는 그들의 노래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
시인은 이제 그 촛불에게서 김수영의 풀을 본다.
그래서 시인은 노래한다.
불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불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목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불이 눕는다
─이문재, 「촛불의 노래를 들어라」 부분
라고.
김수영이 바람보다 먼저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는 풀을 노래했을 때,
그 풀은 바람이 불 때 눕고
바람이 자면 일어나는 기회주의적인 풀이 아니라
사실은 바람을 일으키는 풀이다.
생각해보라.
바람보다 먼저 누우니 눕는 풀을 바람이 따라가는 거다.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니
바람은 다시 또 그 순간 호흡을 고르며
다음 걸음을 준비했을 것이다.
그러니 김수영의 풀은 사실은 바람을 일으키는 풀이다.
사람들은 그 김수영의 풀에서
밟아도 밟아도 다시 일어나는 민초의 끈질긴 생명력과
그 민초들이 일으켜 세우는 꿈의 세상을 보았다.
그 꿈의 세상엔 풀이 일으키는 시원한 바람이 불 것이다.
그런데 이문재는 이제 촛불의 현장에서 바로 그 풀의 생명력을 본다.
그 옛날 김수영의 시대엔
풀들에게서 민주주의를 일으키는 민초들의 질긴 생명력을 보았지만
오늘 우리들의 시대엔
촛불에게서 민주주의를 일으키는 민초들의 질긴 생명력을 볼 수 있다.
풀들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도시의 아스팔트 거리에서
사람들이 모두 촛불을 들고 민주주의의 목마름으로 일어서고 있다.
다시 또 민주주의의 바람이 분다.
이번에는 아무래도 뜨거운 바람이다.
가서 그 바람의 맨앞에 서야 하리라, 촛불을 들고.
9 thoughts on “풀과 촛불 – 이문재의 촛불에 관한 시 두 편”
옛날은 가는 게 아니고/이렇게 자꾸 오는 것이었다
「마흔살」이라는 시를 쓰신 분이신가요?
맞는 것 같기는 한데… 그 시는 제목이 “소금창고”가 아닌가 싶어요.
문학동네에서 나온 “제국호텔”이란 시집 속에 들어있는 시인가 본데… 시집이 없어서 확인을 못하겠네요.
인터넷에선 유명 시인의 시를 자기 마음대로 첨삭하는 경우가 있어서 원래 시집에서 확인을 해야 할 듯…
말씀하신 대로 ‘소금창고’가 맞네요.
딱 마흔 살이 되는 날에 찾았던 시인데 제가 큰 실수를 했습니다.
시집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미처 확인을 못 했습니다. (핑계)
수정하겠습니다.
혹 다른 시나 글에서도 틀린 부분이 있으면 꼭 집어 지적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촛불 정말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는거 같습니다~
내일은 또 수많은 촛불이 일어서겠지요.^^
제가 좋아하는 김수영씨의 사진은 속옷바람으로 웬지 쾡한 눈…
그 눈으로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는 풀을 노래 했는데
이 문재 시인은 어떤 눈으로 촛불들을 보고 있을지요…
그러고 보니 이문재 시인도 모습은 흡사한 것 같습니다.
어떤 글에서 보니까 이문재 시인은 촛불을 하나의 시로 보더군요. 그것도 경제 우선의 세상을 넘어설 희망을 보여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