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일 속에 머리를 묻고
눈하나 돌리지 않은채 보내야 하는 하루였으나
가슴의 답답함을 이길 수 없어
카메라를 둘러메고 바깥으로 뛰쳐나가고 말았다.
성남의 모란 시장으로 향한 걸음이 잠시 그곳을 얼쩡거리다
오는 버스의 행선지 가운데서 남한산성의 네 글자에 눈을 맞추었다.
수어장대란 곳까지 올랐다.
거리의 소음도 할머니의 단잠을 방해할 순 없다.
지하철의 출구를 나서자
그곳에 할머니가 계셨다.
고단한 삶이라기 보다 달관의 삶처럼 보였다.
나무는 겨우내내 푸른 하늘을 길게 들이쉬고,
봄부터 가을까지 길게 내쉰다.
이파리는 나무의 날숨이다.
나무의 가슴에 귀를 모으면
나무가 들이킨 푸른 숨소리가 들릴까?
아무도 소리치지 않으면 돌들이 소리치리라.
나는 그 말을 전혀 믿지 않았건만
오늘 돌들은 분명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슬쩍 잡아당겨 보고 싶었다.
‘어허, 이 놈’ 하는 할아버지 소리가 들릴 것 같았다.
수어장대.
적군의 침입을 살피는 망루의 기능을 가진 전각.
한때 생명을 주고 받았던 전장의 현장에서
이제는 사람들의 시선과 걸음이 한가롭다.
일본 아덜은 남한산성도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려나.
반쯤 열린 문은 호기심을 자극한다.
사람들이여, 마음을 다 열지 마시라.
사랑하는 사람이 그냥 눈으로 훑고 지나칠지 모르나니.
구불구불한 성곽을 따라
남한산성을 완전히 한바퀴 도는데는
4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솔방울, 솔잎 위에 눕다
버스를 기다리는 아이들.
아이들을 나처럼 멀리 길을 기웃거리며 버스를 기다리지 않았다.
버스를 못탄 아이는 하나도 없었다.
4 thoughts on “남한산성 수어장대”
지난 17일에 남한산성 일주를 했습니다. 비가 오락가락 했지만 다행히 입구에 도착해서는 그쳤습니다. 남문에서 반시계방향으로 출발해서 다시 남문으로 왔답니다. 설렁설렁 걸으니 다섯시간쯤 걸리더군요. 말발굽 소리까지는 아니더라도 잠시 척화파나 주화파가 돼 봤습니다. 지금 누구의 집사람이 된 최명길(?)이 생각나더군요.
전 남한산성가면 항상 서울이나 성남이 보이는 쪽으로만 있다가 와서, 만약에 그 반대편 쪽으로 가는 기회가 생긴다면 달의 이면을 가는 듯한 느낌이 들 듯. 그곳에서 팔당쪽이 보이나 모르겠네요.
오는 17일에 남한산성 일주를 하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들렸습니다. 돌담길만 있는 줄 알았는데 사진을 잘 찍어서 사람 사는 모습이 있어 좋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저도 한번 마음은 먹은 적이 있는데 아직 실천엔 못옮기고 있어요. 좋은 여행길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