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꽃집

Photo by Kim Dong Won
2008년 1월 31일 서울 종로에서

지난 1월말, 그 꽃집 앞을 지날 때,
꽃바구니 세 개가 꽃집 앞에 나와 있었습니다.
유리창으로 앞가림을 한 꽃집은 제 속을 모두 말갛게 드러내고 있었고,
그 말간 속은 온통 빈바구니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집은 비좁아 보였고
안에선 거처를 구하기 어려워 보였습니다.
집밖으로 나앉은 꽃바구니 세 개는
꽃을 팔려는 것이 분명해 보였지만
1월말의 거리에 깔린 쌀쌀한 겨울 날씨 때문인지
꽃들은 꽃 사세요보다는
지나는 사람들에게 성냥 사세요를 애처롭게 외치고 있는
성냥팔이 소녀들로 보였습니다.
날씨가 쌀쌀하면 그렇게 꽃집 밖의 꽃들은
바구니에 꽃을 가득 담아 들고 있어도
꽃이 아니라 성냥팔이 소녀가 되어 버립니다.

9월말 다시 그 꽃집 앞을 지날 때,
이번에는 들고나는 출입구만 한귀퉁이로 조금 남겨놓은채
꽃들이 꽃집 앞을 모두 차지한채 나란히 늘어서 있었습니다.
여전히 꽃집은 유리창으로 앞가림을 하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 속도 꽃으로 채워놓고 있었습니다.
꽃집의 한귀퉁이로는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꽃집 주인도 보였습니다.
가을이라곤 하지만 여전히 미적대고 있는 여름의 미련 때문인지
거리는 조금 걷다 보면 덥다고 느껴지는 날씨였습니다.
조금 걸음을 옮기며 돌아다니다 보면 만나게 되는
그 여름의 끝자락 때문인지
꽃집 앞의 꽃은 이번에는 모두 그냥 그대로 꽃이었습니다.

꽃은 꽃집 안에 있으면 언제나 꽃이지만
종로의 뒤쪽 골목길에 자리잡은 그 꽃집에선
꽃들이 집밖으로 나앉으면 날씨에 따라
성냥팔이 소녀가 되기도 하고 그냥 꽃이 되기도 합니다.

Photo by Kim Dong Won
2008년 9월 30일 서울 종로에서

12 thoughts on “그 꽃집

  1. 오옷 꽃집이 너무 예뻐요 >_< 바구니들이 꽉 차있는 모습이랑 아주머니가 한켠에; 계신 모습이 인상적이에요

  2.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여 둔촌동 골목길을 통과하는데,
    기웃거리며 해찰하는 재미가 아주 쏠쏠합니다.
    맘 먹고 가야하던 화원도 달리다 그냥 서면 되고…
    퇴근길 보랏빛 국화를 한다발 싸달라고 부탁하고 가방 속을 보니 아뿔사 지갑이 없어
    잠시 망설임…어 지갑이 없네요…그랬더니 한번도 사본적이 없는 주인여자가
    그냥 가져가고 내일 돈 주세요. 못가져왓어요. 처음 거래라…
    그래서 그 담날 지갑 들고 가서 꽃 핸들에 대롱 대롱 매달고 왔지요.

    요 페이지 열면 1월 종로, 사진의 윗부분과 아래는 꽃바구니의 손잡이와 꽃이 조금만 보여요. 꽃바구니들의 무덤 쯤 되는줄 알았어요. 그 아래는 그들의 영혼을 위한 <조화>…

    1. 사진을 찍다 보니 자전거도 속도가 너무 나서 그냥 거의 걸어다니게 되요. 천천히 걸어야 찍을 걸 살필 수가 있거든요. 그래도 자전거는 참 좋아요. 바람결을 적당히 맛볼 수 있는 것도 그렇구요.

      빈바구니의 집에 꽃들이 놀러온 듯도 합니다.

  3. ‘성냥팔이 소녀’…. ㅎㅎㅎ
    동원님의 상상력에 박수 드립니다.
    햇살 따스한 것이 으스스 바람은 불지 않는듯 하여 다행입니다.
    머리수건으로 머리를 곱게 여미고 예쁜 앞치마를 두른 성냥팔이 소녀들 같습니다.

  4. 꽃, 이라 그러면 눈이 획 돌아가는 입장에서는 참 생각이 많아지게만드는 사진이군요.
    작은 공간에 빽빽하게 쌓아놓은 바구니와 고급스럽지 않은 꽃들…

    성냥팔이 소녀가 어울리는 듯 합니다.

    1. 종로 뒷골목인데 요기 말고 곁에 꽃집이 또 하나 있어요.
      그래도 저는 이곳이 더 정겹더라구요.
      1월에는 한바구니에 만원씩 팔더군요.
      술먹으러 자주 가는 골목… ㅋ

  5. 왠지 측은해 보이기도 하네요.
    근데 저 꽃집앞? 바닥에 하얀 줄기는 뭘까요?
    햇빛 같기도 하고.. 차선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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