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연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하여 —이민하의 시 「개랑 프라이」

Photo by Kim Dong Won

혹시 실연당하셨는가? 그렇다면 개랑 프라이 한번 해드셔 보시라. 잘못 쓴 게 아니다. 계란 프라이 아니라 개랑 프라이 맞다. 우리가 매일 해먹는 게 계란 프라이고, 실연당했을 때 해먹으면 딱 좋은 것이 개랑 프라이다.
살다보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다 보면 사랑을 얻기도 하지만, 이상하게 사랑을 하다 보면 사랑을 잃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거의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런 실연의 순간은. 나도 몇 번 겪었다. 문제는 그 실연의 순간이 엄청난 고통과 상처를 수반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순간을 넘기기가 아주 힘겹다. 후유증도 아주 오래도록 깊게 남는다.
그럼 우리는 그 실연의 순간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것일까. 시인들의 시에서 답을 구해보자면 실연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중 가장 오래도록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것은 영변 약산의 진달래가 갖고 있다는 신비의 효험에 기대보는 것이다.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바로 그곳, 영변 약산의 진달래꽃을 따다 나 싫다고 가는 님의 발밑에 좌악 깔아놓는 것이다. 듣기로는 그렇게 하면 진달래가 님의 발목을 덥썩 잡아준다고 한다. 하지만 그게 효험이 있다고 해도 영 개운치가 않다. 내 사랑을 얻자고 그 여린 꽃을 등이 터질지도 모를 위험 속으로 내몰게 되니 말이다. 진달래는 꽃의 색깔부터가 여린 꽃이다. 그런 꽃을 누군가의 발밑에 깔아 밟고 가려면 가보라고 한다는 것은 그 꽃을 한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쉽지가 않은 일이다. 또 시대가 많이 변해서 이러한 방법은 구닥다리 느낌이 많이 난다는 것도 흠이다. 달리 말하자면 좀 구질구질해 보일 수 있다. 실연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에 있어서도 시대가 많이 변했다는 것은 자우림의 「카니발 아무르(Carnival Amour)」를 들어보면 금방 알 수 있다(동영상을 볼 수 있는 YouTube 사이트 주소는 https://www.youtube.com/watch?v=aL4APgTweak이다). 이 노래에서 김윤아는 이렇게 노래부른다.

미안해요 고마워요 즐거웠어요
산뜻하게 헤어져요 질척이지 말아요
어쩌다 마주치면 모르는 사이인양 눈치껏 모른척 해주세요

라고. 노래는 경쾌하고 발랄하다. 리듬만으로 보면 정말 실연 당한 것인지도 의심스럽다. 그렇지만 실연의 현실 앞에서 이렇게 경쾌하고 발랄하게 노래부른다는 것도 그리 탐탁치가 않다. 탐탁치가 않을 뿐더러 괜히 이렇게 노래부르다 울음이 터지면 그거 다시 틀어막기가 쉽지 않을 듯싶다. 실연 앞에서 사람들이 취하는 경쾌함과 발랄함은 표면적 표정과 달리 사실은 실연의 아픔을 틀어막아 보려는 극단적 안간힘의 다른 이름이기 일쑤이다.
그렇다면 좀더 색다른 좋은 방법이 없을까. 나라면 실연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로 이민하의 방법을 권하고 싶다. 그것은 바로 개랑 프라이를 해먹는 것이다.
방법도 간단하다. 영변 약산의 진달래를 수소문하여 구할 필요도 없고, 굳이 노래를 가수 뺨치게 잘 부를 필요도 없다. 그냥 계란 사다가 프라이를 하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개랑 프라이는 계란 프라이와 똑같긴 하지만 조리법은 좀 다르다.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실연으로 깨진 사랑을 계란에 담는 것이다. 사랑이 어느 한 순간에 깨지는 것 같지만 실제로 그런 경우는 드물다. 깨지기 전에 이미 곪을대로 곪은 상태에 이르고, 그러다 한계점을 넘으면 작은 충격 하나로 여지 없이 깨져버린다. 그래서 깨진 사랑은 알고 보면 이미 깨질대로 깨진 사랑이다. 개랑 프라이를 요리하려면 일단 그런 곪은 사랑의 상처를 계란에 고스란히 담아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계란은 이미 그 깨질만큼 깨진 사랑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당신이 툭, 깨뜨리기 전에
난 이미 깨질 만큼 깨졌다.

사랑에 상처받으면 마음이 멍들기 시작한다. 멍들면 감각이 둔해질 것 같지만 그 반대이다. 마음이 멍들면 작은 충격에도 아주 민감하게 반응한다. 멍든 마음엔 내뱉듯 던진 작은 말 한마디도 때로 큰 아픔이 된다. 그 정도로 멍든 마음은 감각이 빠르며 그 마음이 받는 상처의 고통은 깊고 오래간다. 하지만 감각이 예민하다는 것은 고통과 함께 다른 무엇인가를 섬세하게 감지해 낼 수 있다는 뜻이다. 실연당했을 때 우리는 둔감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감각이 빨라질 수 있다.

껍데기 안에 멍든 살이 고여 있지만
난 감각이 빠르다.

다음 순서는 이제 달걀을 깨서 후라이팬에 두르는 일이다. 달걀을 깨다보면 손에 좀 묻는다. 끈적끈적하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깨졌다고 깨끗하게 정리가 되질 않는다. 끈적끈적 그 흔적을 남기며 들러붙는다. 아마도 실연 뒤의 느낌을 그대로 옮기면 손가락을 타고 흘러내린 달걀의 느낌과 비슷할 것이다. 후라이팬은 대부분의 경우 색은 검은 색이며, 매번 기름칠을 하는 관계로 번들거린다. 때에 찌들어 있지야 않겠지만 그렇게 보인다. 달걀은 미끄럼틀을 타듯 후라이팬으로 퍼져나간다. 사랑이 깨지고 나면 우리들은 무기력해져 버린다. 거의 아무 일도 손에 잡질 못한다. 사랑이란 것이 그렇다. 아주 두터운 보호벽으로 서로를 지켜줄 듯 느껴지는 것이 사랑이지만 깨지고 나면 사랑만큼 껍질이 얇은 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달걀처럼 아주 얇기 이를데 없는 껍데기 속에, 그것도 둘이 웅크리고 있는 것이 사랑이다. 실연이란 그래서 얇은 껍데기가 깨진 다음에 속을 다 바닥으로 쏟아낸 계란과 무서우리만치 똑같이 닮아있다. 실연이 무서운 것은 깨진다는데 있지 않고 사실은 내 속을 내 쏟아낸 듯한 공허함으로 우리를 엄습하여 우리들을 무기력하게 만든다는데 있다. 하지만 껍데기를 빼앗기고 바닥에 엎어지는 상처로 아파도 실연의 상처는 역시 용서로 정리하지 않을 수 없다. 용서가 어렵긴 해도 그것밖에 달리 길이 없다.

당신이 나를 지목하기 전에
내가 이미 당신의 손가락을 타고 흘러내렸다.
번들번들 때에 찌든 미끄럼틀.

당신이 이리저리 퍼뜨리기 전에
난 이미 퍼질 만큼 퍼졌다.

껍데기를 빼앗기고 바닥에 감염되었지만
난 용서가 빠르다.

하지만 실연의 상처가 그렇게 빠르게 정리될 수는 없다. 둘이 함께 들렀던 기념품 가게도 생각나고, 드라마 촬영장도 떠오를 것이다. 이상하게 그런 기억들은 쉽게 지워지질 않으며, 계절이 바뀔 때마다 용케도 그 시기를 알아채고 그때마다 때맞추어 고개를 든다. 실연한 사람에게 계절이 바뀌는 시기는 실연의 상처를 다시 덧내는 일종의 반복 주기같은 것이기도 하다. 때문에 철이 바뀔 때는 누구나 한번쯤 고개든 그 기억들과 함께 눈물을 쏟지 않을 수 없다. 그때 눈물을 받아주는 것이 새로산 접시라면 눈물의 슬픔은 그 농도가 더 진해진다. 생각해보라. 음식이 담길, 그것도 반짝반짝 빛나는 새 접시에 눈물이 담기는 그 풍경을. 훨씬 더 슬픔의 농도가 진하게 느껴지지 않겠는가. 아마 그때면 계란을 붙이던 손도 재빨리 계란을 뒤집지 못하고 그냥 동작을 멈춘 채 잠깐 동안 굳어 있으리라. 포크라면 단호하겠지만 손가락은 아직 그 정도까지 진화하질 못해 사랑이 끝났어도 그렇게 단번에 정리의 수순을 밟진 못한다. 사실 우리의 손은 결코 포크로 진화하질 못한다. 잠깐씩 실연의 상처에 눈물이 어른거리고 계란 프라이를 부치던 손을 어쩌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게 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우리들이다.

허기진 새벽 프라이팬을 꺼내놓고 부산을 떨더니
기념품 가게를 지나 드라마 촬영장을 기웃, 새로 산 접시에 눈물을 촛농처럼 쏟고
계절의 네거리에 겨우 당도하지만
아래로 굳은 손가락,
너는 포크로 진화하지 못한 시간의 갈팡질팡.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이다. 지금까지가 실연을 당했을 때의 우리들 모습이라면 이제부터는 그런 일상적 모습의 우리들을 넘어가기 위해 우리의 초점을, 쏟아낸 계란의 속에서 껍데기로 옮겨가야 한다. 시인은 그것을 가리켜 ‘변신’이라고 말한다. 시인은 그 변신을 “상반신과 하반신을 용접”하여 이룩한다. 시집 뒤쪽에 실린 신형철의 뛰어난 해설에 따르면 이는 휴지통에 버린 깨진 계란 껍데기가 포개져 있는 것을 가리킨다. 대개의 경우 우리는 계란 껍데기를 그렇게 포개서 휴지통에 버린다. 시인에겐 그게 변신이다. 상반신과 하반신, 그러니까 잊어버리거나 용서해야 한다는 머리의 움직임과 그것과 달리 괜스리 눈물이 나고 마음을 잡지 못하는 몸의 움직임을 용접하여 하나로 붙이는 실연 후의 정리 과정이다. 개랑 프라이를 해 먹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중간에 계란 프라이가 아니라 우리가 휴지통에 버리는 그 껍데기로 시선의 초점을 옮기는 것이다.

휴지통에 버려진 상반신과 하반신을 용접하고
난 변신이 빠르다.

진짜 내 몸은 껍. 데. 기. 털갈이를 하듯
비워낸 내장을 새로 끼우기 위해

당신이 잘근잘근 씹기 전에
난 이미 씹을 만큼 씹었다.
땡볕에 익은 반숙의 살덩이를
개랑 사이좋게 나누어 먹는 두 개의 혀.

당신이 지글지글 지지기 전에
내가 먼저 지질 만큼 지졌다. 짖을 만큼 짖었다.
—이민하, 「개랑 프라이」 이상 전문

실연의 상처가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실연의 순간 우리들이 몸을 잊기 때문이다. 아니 몸을 박대한다. 사랑을 잃고 나면 우리의 몸을 마치 알맹이 없는 빈껍데기 같다고 느낀다. 계란 프라이의 경우에도 똑같다. 우리는 계란이 깨지고 그 속이 후라이팬으로 쏟아진 순간 껍데기를 잊는다. 아예 껍데기를 버린다. 우리도 그렇다. 사랑이 깨진 순간 오직 바닥에 쏟아진 사랑에만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그 사랑을 담고 있던 껍데기, 우리의 몸은 여전히 우리들에게 그대로이다. 시인은 바로 그 껍데기, 즉 우리의 몸이 “진짜”라고 말한다. 계란 껍데기는 버려지지만 우리에겐 비워진 사랑을 언제든지 다시 채워넣을 수 있는 그 껍데기, 바로 우리의 몸이 그대로이다. 껍데기가 있는 한 사랑은 언제든지 다시 시작될 수 있다. 몸은 그만큼 중요하다. 껍데기가 깨지면 다시 사랑을 채우는 것은 어려워진다. 어쨌거나 그건 우리에겐 세상 하직한 경우가 되니까.
생각해보면 사랑이라는 게 어디 달콤하기만 하던가. 서로 씹기도 하고, 지지고 볶는 것은 거의 필수이며, 나아가 으르렁대며 서로 짖기도 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이 사랑이 아니던가. 사랑이란 때로 “땡볕에 익은 반숙의 살덩이” 같은 것이다. 뜨거운 태양볕에 계란 익혀보겠다는 얼토당토한 충동질로 시작을 하지만 언제든지 설익은 상태로 끝날 수 있는게 사랑이다. 인간에게 어울릴 것이 아니라 개에게 나누어주면 딱좋을 것이 사랑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어떤 깨진 사랑도 또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순간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건 기억 속에 내장해 두었다가 가끔 눈물에 버무려 새로산 접시에 뚝뚝 떨어뜨려 고이 담곤 하시라. 그리고 씹히고 짖었던 기억의 사랑은 계란 프라이에 집어넣어 반은 개에게 나누어주고 반은 자신이 지지고 볶아 씹어 먹으시라.
우리들은 그동안 너무 우리의 몸, 즉 껍데기를 등한시하고 그 속의 사랑, 즉 계란 프라이에만 집착해왔다. 그건 실연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로 문제가 많다. 개랑 프라이란 말하자면 그런 태도를 버리고 언제든지 사랑을 다시 채울 수 있는 우리의 몸, 바로 껍데기로 눈을 돌리고 쏟아진 사랑은 프라이에 담아 개랑 나누어 먹으며 잘근잘근 씹고 짖어서 실연의 아픔을 이겨나가 보자는 뜻을 담은 새로운 요리인 셈이다.
실연당하셨는가? 그렇다면 이제는 진달래꽃 찾지 마시고 어디 한번 개랑 프라이 한번 해드셔 보시라. 물론 항상 그렇듯이 그 효과는 장담 못하겠다. 사랑 앞에서 장담할 수 있는게 무엇이 있겠는가.

22 thoughts on “실연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하여 —이민하의 시 「개랑 프라이」

  1. 핑백: 나무사이
  2. 앞으로 삶은 계란만 기차 타고 가면서 사이다랑 같이 먹고
    개랑 프라이는 될 수 있으면 삼가야겠습니다.
    그런데 계란말이에 쐬주가 급하게 땡깁니다.

  3. 아이, 괜히 읽었다.
    그잖아도 마음이 심란하데 전설의 고향 시절의 실연의 상처가 간마에 살아났잖아요.
    아주 아주 긴 시간이 지나도 손가락은 포크가 되질 못하니…
    코딱지 만큼이라고 흔적이 남아 있었던 모양이예요.

    점심에 계랑 후라이나 해 먹아야겠당.

  4. 넘 재밌는데…넘 졸려서…내일 프린트 해서 읽어야겠어요.
    간송미술관, 길상사, 삼청동 팥죽집으로 이어지는
    오랜만의 도심 나들이가 무리였나 봐요. 연일 계속되는 올빼미족 생활과 함께요…

    1. 간송미술관 드디어 가셨군요.
      거기다 길상사까지…
      저희는 간송미술관 다음에는 낙산으로 걸음을 옮겼었지요.
      그래도 흡족하셨을 듯 해요.

  5. 깨진 계란 껍데기에도 이제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야 하나요..ㅎ
    어제 달걀 후라이 하면서
    이 시가 생각나서 웃고
    저 개랑 후라이 솜씨는 누구 작품인지 궁금하던데요…

    1. 상당히 오래 가네요.
      술먹는 것보다 떠드는데 주력하다 보니
      요즘은 누울 정도로 먹지는 않는 듯한데…
      술은 그냥 알딸딸 할 정도가 가장 좋더라구요.
      울렁거릴 정도가 되면 다음 날 후유증이 좀 심해요.
      다 나았는지 알아볼겸 한잔 하는 것도… ㅋㅋ

    1. 아, 그때 모였을 때 이 얘기 했었죠.
      쓰고 있어서 결론을 잡지 못하고 있었어요.
      사랑의 시작과 끝이라는 주제로 쓰고 있는게 또 하나 있는데
      그것도 앞쪽은 다 써놓고 뒤쪽을 못쓰고 있어요.

      언제 언두님 음악듣고 싶네요.
      그때 하신 말씀 생각나요.
      음악 얘기 한번 해볼까요 했더니
      음악은 얘기보다 불러야지요 하셨던 말씀.

      모여서 음악과 함께 얘기 나누고 싶어지는 군요.
      요즘은 모일 때마다 언두님이 음악을 갖고오셔서 너무 좋습니다.

    1. 개랑 프라이가 깨진 사랑이니 삶은 계란은 사랑의 열기로 잘 익혀낸 사랑이 될 듯 싶습니다. 잘게 부셔셔 샌드위치 해서 드심이… ㅋㅋ

  6. ‘개랑 프라이’ 한번 진하게 해 먹고 싶네요.
    그런데 문제는 제 나이에 실연의 아픔이 없다는 이 쓸쓸함은 무엇으로 해결 받을 수 있을지요… ㅎㅎ 이럴 때는 어떤 ‘프라이’를 해 먹어야 할까요?? ㅎㅎ

    1. 홋, 이런 한번도 사랑을 잃은 적이 없다고 은근 자랑하시는 군요.
      그 분이랑 사랑을 녹여서 걔랑 프라이 해 드심이… ㅋ (죄송 걔라고 해서. 어쨌거나 개가 아니라 걔입니다).

  7. 자우림의 노래는 느린 템포의 흔한 이별노래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듣기 거북하더군요.

    보통 가슴이 아련- 한 가사를 담고있는 노래를 좋아하는 편인데,
    자우림은, 에효. 노래를 부르는 사람을 참 좋아하긴 하지만 이건 좀 아니다
    싶었드랬어요.

    달걀과 사람 그리고 사랑. 세상 모든 사람이 겪어볼 수 있는 상황이라 그런지
    더욱 더 공감이 갑니다. 다시 겪고싶지 않은 일임에는 틀림없어요. 하하.
    개랑 프라이와는 절대 친해지지 않으렵니다. ㅎㅎ

    1. 잔잔한거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별로지요.
      봄이오면이라고 보컬 김윤아가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부른 노래가 있는데 그건 아주 좋아하실 것 같네요.

      두 분이야 뭐 사랑하고 사랑을 카메라에 담고 그러시면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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