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과 확장 – 제5회 서울 국제 미디어 아트 비엔날레

요 며칠 사이, 서울사는 호사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첫번째 호사는 과거로 떠난 여행이었다.
10월 11일 성북동의 간송미술관에서 열린 가을전시회를 보았다.
신윤복의 「미인도」를 생전 처음 직접 접할 수 있었다.
미술관 주변에서 만난 가을꽃과 가을빛도 아주 좋았다.
전시회는 10월 26일까지 한다고 한다.
무료이지만 사람들이 워낙 많이 찾아
한두 시간 기다리는 것은 기본이라고 들었다.
10월 14일엔 버스를 타고 광화문을 지나다
갑자기 서울 시립미술관에서 하고 있는 전시회가 생각나서
용산으로 가려던 걸음을 접고 그곳에서 내려버렸다.
그리하여 덕수궁 옆에 있는 서울 시립미술관에서 만난 전시회는
미래로 떠난 여행이었다.
며칠 사이의 두 전시회를 통해 과거와 미래를 오고간 셈이다.
간송미술관의 전시회는 사진을 찍을 수 없어
여기선 14일에 보았던 전시회만 구경시켜 드린다.
「전환과 확장」이란 주제를 내걸고 열리고 있으며,
백남준의 예술을 생각하시면
전시된 작품의 성격을 짐작하는데 무리가 없을 것이다.
11월 5일까지 이어지며, 이 또한 무료이지만
그래도 매표 창구에서 표는 받아가지고 들어가야 한다.

Photo by Kim Dong Won

빛이 좋은 날이었다.
빛이 하도 좋아서
홍대서 버스타고 시내로 들어오다가
하마터먼 신촌서 내려 버스타고 강화로 나를 뻔 했다.
그래도 강화 충동을 지긋이 눌러 참았다.
버스는 광화문을 지나 미술관이 있는 서소문으로 향한다고 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광화문에서 내렸다.
광화문에서 미술관까지 걸어가는 길이 아주 좋기 때문이다.
창 안쪽으로 Turn and Widen의 불빛을 노랗게 켜고
미술관이 사람들을 맞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수잔 빅터
부끄럽게 버려진 곳에서 정신을 소비한다

그림이 화폭에 세상을 담으려 한다면
현대 예술은 그 화폭을 뛰어나가려 한다.
화폭을 뛰어나온 알전구들이
끊임없이 몸을 뒤채며 움직이고 있었고
마치 설치류가 무엇인가를 긁고 있는 듯한 소리를 반복하고 있었다.
매일밤 잠못드는 불면의 밤을 하나둘 모아놓은 듯 했다.

Photo by Kim Dong Won

C.E.B. 리즈
T1

언젠가 우주의 음악이란 것을 들어본 적이 있다.
우주에서 잡은 미세한 소리를 증폭한 것이었다.
우리는 상당 시간을 컴퓨터 앞에 앉아 시간을 보내면서도
컴퓨터 자체는 예술과 무관할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소리를 증폭시키듯이 컴퓨터의 기계어가 처리되는 과정을
일정한 과정을 거쳐 이미지로 환치시키면 아름다운 그림이 된다.
이 작가는 그것을 비디오 영상으로 담아냈다고 한다.
처음에는 돌연변이된 연꽃인가 했다.

Photo by Kim Dong Won

리 후이
환생

붉은 침대.
우리는 매일 잠자면서 이렇듯 아름답게 환생하고 있는지도…

Photo by Kim Dong Won
Photo by Kim Dong Won

카를로스 아모랄레스
헛된 의문

어느 쪽이 앞인지 뒤인지 알 수 없었다.
앞뒤를 궁금해 하는 내 의문이 헛된 의문일지도 모른다.
한쪽에선 남자가 작품을 보고 있었고,
다른 쪽에선 여자 둘이 작품에 시선을 맞추고 있었다.
보는 이와 보는 이의 사이에 작품이 있었다.
헛된 의문 품지 말고 작품이나 봤어야 하는데
나는 자꾸 헛된 의문에만 붙잡혀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Photo by Kim Dong Won
Photo by Kim Dong Won

파블로 발부에나
증강된 조각 시리즈

사실 우리도 빛 속에서 살고 있는데…
저렇게 아름다운…
조각은 굳어있었으나 빛이 들고나면서
굳어있는 조각에 피처럼 흐르거나 아침으로 밀려들고 있었다.
세상의 굳어있는 것들도 모두 빛이 들고날 때마다
저처럼 살아 움직이고 있을 거다.

Photo by Kim Dong Won

김신일
활 역 마비 – 반향(活 易 麻痺 – 反響)

한 남자가 빛의 포충망, 그 한가운데로 섰다.
점성이 없어 남자는 너무도 쉽게 포충망을 빠져나왔다.
어둠 속에서 빛의 거미가 헛물켜는 소리가 들렸다.

Photo by Kim Dong Won

헤르빅 투르크
보이지 않는 것을 측정하기

한 남자가 작품 속으로 손을 뻗어 자신의 그림자를 들이밀었다.
화폭으로 들어간 느낌이었을까.

Photo by Kim Dong Won

마이클 모리스•요시코 사토
라이트 샤워 II

작품 속에서 대화해 보시라.
현대 예술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항상 우리는 예술에 대해 말할 때면 작품의 바깥에 서 있었다.
이제는 그럴 필요 없다.
작품 속에 들어가 앉아서 대화할 수도 있다.

Photo by Kim Dong Won
Photo by Kim Dong Won

마츠오 타카히로
환상

빛으로 빚어낸 나비들은
붉은 공에서 나오는 빛을 먹고 산다.
나비에게 먹이주는 기쁨을 어찌 놓칠소냐.
지나가던 관람객 한 분이 붉은 공을 들고 모이 주고 있다.

Photo by Kim Dong Won
Photo by Kim Dong Won

타카하시 고타
사라짐

남자는 포도주는 있었으나 같이 마실 여자가 없었고,
여자도 포도주는 있었으나 같이 마실 남자가 없었다.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시간이 다른 그 둘은 만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남자와 여자를 남자와 여자들이 마주보고 있었다.
인생이란게 그렇다.
와인은 구하기 쉬운데 같이 마실 사람은 구하기가 쉽지 않다.

Photo by Kim Dong Won

아나이사 프랑코
연결된 기억

하나가 아니라 이런 작품이 둘이다.
연결되어 있다.
독립되어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도 코를 꿰듯 생각이 서로 꿰어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Photo by Kim Dong Won

바니 아비디
예정된

바니 아비디의 작품 「예정된」을 보는 사람들.
작품에 9분 30초 동안 시간을 내주어야 한다.
설치 예술은 계속 살아 움직이기 때문에
움직이는 반복된 시간 만큼 시간을 내주어야 한다.

Photo by Kim Dong Won

이준
한 병의 일기(A Bottle of Weather)

현대는 이미지의 시대.
이미지 레시피로 이미지를 요리해 드린다.
물론 원하는 메뉴를 선택하실 수 있다.

Photo by Kim Dong Won

바로 이 접시에 담아드린다.
접시는 흰색이지만 담기는 이미지에 따라 매번 문양이 달라진다.

Photo by Kim Dong Won

여기는 이미지 요리를 해내는 주방.
컴퓨터와 모니터 화면이 열심히 돌아간다.
이미지 요리를 조리하면서.

Photo by Kim Dong Won

꼬마 손님이 오셨다.
요 이미지 주세요 하고 주문하셨다.
병에 담은 뒤에 접시에 담아 내주었다.
이미지가 벽을 한가득 메웠다.
주문은 꼬마 손님이 했는데 즐기기는 다 함께 즐겼다.
이미지 요리는 누가 주문하든 다 함께 즐길 수 있다.

Photo by Kim Dong Won
Photo by Kim Dong Won

크리스토퍼 토마스 알렌
대화

우린 요즘 정말 문자로만 말한다.
가끔 그 문자는 현재 너의 말이 아니라
어제 네가 남겨놓은 말이기도 하다.
우린 이제 어제의 말을 오늘의 말처럼 나누고 대화하며 살아간다.
바로 옆에 두고도 그렇게 한다.

Photo by Kim Dong Won

모리 유코
성가심

이건 사실 소리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그러니 가서 들어야 한다.

Photo by Kim Dong Won


인산인해

깃털로 이루어진 사람이 있었다.
사람들이 모두 그에게 기어올랐다.
그에게 달라붙고 기대어 살고 싶었던 것일까.
바람이 한번 불 때마다 깃털이 일었고
그때마다 깃털의 그를 타고 오른 사람들이 모두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우리가 오르고 기대려고 하는 것이
바람불면 여지없이 우리를 털어내는 가벼운 깃털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Photo by Kim Dong Won

카를로스 코로나스
어디에도 없는

가끔 나도 내 속이 궁금하다.
아래층에서 올려다볼 땐 네온 불빛만 보였는데
3층으로 올라갔더니 속이 보였다.
우리의 내장처럼 복잡했다.
아름다운 것들의 속도
우리의 내장처럼 어지럽고 복잡할 것이다.

Photo by Kim Dong Won

모니카 브라보
시간의 파편: 현재_여기에_있다

작품은 사진을 찍고 있는 내게
이런 생각이 환상이다라고 말하며
슬쩍 글자를 지워버렸다.
글자를 지우자 작품도 지워진 듯한 느낌이었다.
글자만큼 확실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작품은 글자를 따라가지 말라며
자꾸만 글자를 따라가고 있는 내 앞에서
글자를 슬그머니 지우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마농 드 보외
프레스토: 완벽한 사운드

완벽한 사운드라고 되어 있었지만
사운드는 잘 들리질 않았다.
소리는 거의 모기 소리만 했다.
화면은 널널하게 컸다.
설명을 보니 소리를 귀로 듣지 말고 눈으로 보라고 했다.
하긴 윤도현 밴드 공연 봤더니
음악이란게 보는 것도 무지 중요하긴 하더라.

Photo by Kim Dong Won

정영훈
꽃들

건너편에서 한 여자가 꽃들을 보고 있었다.
꽃을 보는 그녀가 가느다란 선을 타고 내게 건너오고 있는 듯 했다.

Photo by Kim Dong Won

전환과 확장, Turn and Widen이
반전되어 유리창 너머에 걸려있었다.
그림을 화폭에 담는 것은 좋지만
그림을 화폭에 가두는 것은 안된다고 말하며
그림을 화폭에 가두면
아무 것도 비치지 않는
달걀 귀신 같은 유리 거울을 갖게 될 것이라고 속삭이는 듯 했다.

Photo by Kim Dong Won

보다 보면 서서히 헷갈리기 시작한다.
보는 사람들이 작품 보러온 사람들인지
작품의 일부로 출연한 사람들인지.
설치 예술은 사람들을 작품으로 물들이는 신비로운 힘을 가졌다.

Photo by Kim Dong Won

창문에 내린 엷은 블라인드로 인해
빛이 우유빛으로 녹아들고 있었다.
설치 예술의 하나인지 또다시 헷갈렸다.
아마도 그랬다면 작품명은
우유를 섞은 저녁빛 정도가 되지 않았을까.

Photo by Kim Dong Won

시간을 잘 맞추거나
보면서 기회를 잘 엿보면
상세한 설명을 곁들여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다 보고난 뒤에 설명이 시작되고 있어서 따라가진 않았다.

전시회보고 아주 만족스러웠다.
이 정도 수준의 전시회가 공짜라는 것도 놀랍다.
공짜인데도 사람이 한산하다는 것은 더 놀랍다.
현대 예술과 기존의 전통적 예술과의 차이점이 무엇일까를
곰곰하게 생각해보는 기회도 되었다.
예술은 전환하고 확장하려고 하는 속성과
한편으로 원시적 양식의 좁은 품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이중의 양상을 보인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느 하나로는 부족하다는 얘기이리라.

8 thoughts on “전환과 확장 – 제5회 서울 국제 미디어 아트 비엔날레

  1. 예술 하시는 분들의 눈이나 생각은 다 사시 같습니다.
    아니면 정상적인 눈깔을 가졌다고 생각하고 있는 무지한 1人의 착각이던지요.
    그분들 덕분에 눈깔만 정상인 제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세상을 구경시켜 줍니다.

    1. 오래 전에 읽었던 송찬호란 시인의 시에 따르면 보통 우리들의 눈엔 습관의 때가 묻어있다고 하더군요.
      “오랜 회유의 시간”에 시달린 탓에 우리들은 세상을 자유롭게 보기 어려운데 아무래도 예술가들은 그 회유에 잘 넘어가질 않는 듯 합니다.

  2. 현대미술 동원님의 친절한 해설을 들으니 가보고 싶습니다.
    과천 현대 미술관에서 상당히 흥미롭게 봤더 기억이 나는데…
    전 길상사에서 가을을 가슴 가득 담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드뎌 미인도 친견하고 왔습니다.
    사람이 너무 많아 투덜거렸는데, 두세시간 기다린 사람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군요.
    어쩌니 간드러지고 새초롬한 표정을 짓고 있는지 저마저 반할지경이었습니다.
    뒷목선과 가채 아래 드러난 솜털같은 머리털…원화의 감동…대단하더군요.
    프린트 된 이미지 한점 사다 집에 걸려다 벽에서 튀어나올까봐 참았습니다.
    오이 짊어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고슴도치를 소재로 그린 그림이 두점이나 되더군요.
    라틴 미술전 가고 싶었는데, 끝났는지도 모르겠고 11월 중순까지는 시간이 나지 않아 눈물을 머금고 참고 있습니다.

    1. 오이 그림은 정선의 그림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그것도 정말 놀라웠습니다. 그 옆에 비교되는 다른 그림이 있어서 더더욱 정선의 그림이 돋보이더군요. 미인도 앞에서 참으로 많은 시간을 보냈지요. 미인도 앞에 서니 미인도가 그냥 미인을 그린 그림이 아니라 사랑하는 여인은 모두에게 미인이란 말을 그림으로 구현한 작품이 아닌가 싶었어요. 여인의 뒷편으로 사랑이 보이더군요.

  3. 바다 건너 멀리서 동원님 덕분에 눈이 오랜만에 호사를 하네요.
    고백하면 현대예술의 난해함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공짜인데도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한 것은 전통적 예술과의 ‘거리’ 때문이 아닐까요… 그래도 저는 두 번 다녀갑니다.

    1. 현대예술이 난해한 건 낯섬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저도 서울 처음 왔을 때는 길을 건너질 못했어요.
      달려오는 차들이 왜 그렇게 속도감이 느껴지던지요.
      마치 제게 눈을 부릅뜨고 달려드는 듯 했었지요.
      아마 현대 예술도 처음 시골서 올라왔을 때의 제 경험과 비슷하게 사람들에게 달려드는 것처럼 느껴질 듯 싶어요.
      서울에 익숙해진 지금은 차들 놀리면서
      길을 건너게 되었지만요.
      현대 예술 놀려먹는 것도 아주 재미나지요. ㅋ

  4. 저도 요즘 서울 디자인올림피아드 불꽃놀이다~
    강남 국제댄스축제 거리 페스티발이다~
    반포대교 분수 야경이다~ 아주 이런 호사가 없네요!!! ^^
    저녁에 놀러갈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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