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김장 50포기를 하다

Photo by Kim Dong Won
2008년 12월 9일 서울 가락동 농수산 시장에서
그녀가 할머니에게 배추의 셈을 치루고 있다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을 찾은 것은 12월 9일 화요일이었다.
월요일, 화요일을 연속으로 바깥에 나가서 일을 한 그녀가
화요일 오후에 돌아오더니 지금밖에 시간이 없다며
배추사러 가락동 농수산 시장에 가자고 했다.
농수산 시장에 들어서니 이미 파장 시간이었다.
배추파는 사람들은 모두가 할머니들이다.
다들 해남배추라고 하는데
배추 망태기 속의 쪽지에는 어쩐 일인지
출하자가 경기도 안성 사람으로 되어 있다.
조금 둘러보고 한 곳에서 중간 크기의 것으로 사기로 했다.
그녀가 50통을 달라고 했다.
배추파는 할머니보다 내가 더 놀라서
“뭘 그렇게 많이 사?”라고 되물었다.
나는 30포기 정도가 적당하지 않겠느냐고 했지만
내 말은 그냥 그녀의 귓가를 스쳐 지나가고 말았다.
할머니가 나를 보고 차를 가져오라고 했지만
나는 운전을 못한다는 대답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고,
할머니는 그럼 “아저씨는 도대체 뭐하러 따라왔냐고” 핀잔을 준다.
50포기의 배추값는 8만원.
싸다, 싸.
쑥갓이랑 파, 무우도 같은 집에서 샀다.
많이 사기는 많이 산 것 같다.
옆에서 파는 할머니들이 노골적으로 시샘할 정도였다.
차안에 우리 두 사람의 자리 빼놓고는
그렇게 빈틈없이 짐이 들어찬 경우는 없었던 듯 싶다.
일주일에 서너 번은 “김장해야 하는데”라는 말을
적당한 걱정을 섞어 내놓으며 며느리를 압박했던 어머니는
마당의 배추들을 보자 신이난 표정이 역력했다.
김장한다는 것은 힘들기도 하지만 신나는 일이기도 하구나.
결국 칼질은 내가 맡았다.
소금쳐서 배추 죽이는 일은 그녀가 했다.
김장, 이거 오가는 말들이 살벌하기 이를데 없다.
자르고, 죽이고.
다행스러운 것은 날씨가 협조를 해주었다는 것.
날씨는 이상해서 날씨가 주저앉으면
피로는 그와 반비례해서 더욱 높이 쌓여간다.
그런데 며칠 쌀쌀하던 날씨가 갑자기 풀어져 버렸다.
사온 그 날로 배추를 절인 그녀는
그 날 야밤에 일어나 배추를 뒤집고 자야 했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났을 때
그녀는 손을 허리에 집고 걸음을 걷고 있었다.
걸을 때마다 그녀의 입에서 아구구 소리가
걸음걸이에 무슨 박자맞추듯 흘러나왔다.
배추 씻는 일은 내 몫이 되었다.
앉아서 씻어보니 허리가 아파서 도저히 일을 할 수가 없었다.
결국 서서 씻을 수 있는 커다란 통에 물받고
곁에 의자 놓고 앉은 뒤 편안하게 앉아서 배추 씻었다.
갑자기 일하는 모드에서 놀고 먹는 모드로 완전히 상황이 바뀌고 말았다.
소금에 절여서 그런지 배추들이 위로 둥둥 떠준다.
그 다음에 내가 해준 일은 무우 채썰어준 일.
그리고 이어 마당에서 물뺀 배추 2층으로 올려다주는 것으로 내일은 끝났다.
그런데 일이 밀리니까 중간에 또 부른다.
속도 넣으란다.
그녀의 감독을 받아가며 일해야 했다.
왠일인지 그녀가 후하게 검사필증을 내주었다.
아무래도 많이하긴 많이 한 것 같다.
예전에는 절반 정도 채웠던 마당의 김치독 속을 올해는 가득 메웠고,
그 다음엔 김치 냉장고를 빈틈없이 채웠다.
그러고도 남아 옥상에서 독을 하나 또 내려와야 했다.
그 독은 2층 베란다에 두었다.
사실 그다지 힘들지는 않았다.
허리는 안아픈데 마치 산에 갔다 온 것처럼 다리가 아팠다.
2층을 많이 오르내렸나 보다.
적고 보니 일은 그녀와 어머니가 다 했는데 마치 내가 다한 느낌이다.
내가 한 일만 적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아직도 궁금하긴 하다.
도대체 그녀는 무슨 생각으로 김장을 50포기씩이나 하려고 했던 것일까.
사람들 불러다 김치찌개맛을 자랑하려는 심사는 아니었을까.
아무래도 앞으로 사람들 자주 불러야 할 듯도 하다.

13 thoughts on “그녀, 김장 50포기를 하다

  1. 함께 해야 하는데 옛날 사람이다 보니 자꾸만 여자에게 맡기게 되네요.
    고쳐야 하는데…
    이제 도루피님이랑 얄라님이랑 시간 맞춰서 한번 집에 놀러와요.

  2. 50포기를 사등분해서,
    200쪽을 절이고 치대고… 많이도 하셨네요.
    김치만 있어도 먹거리가 해결되니, 풍족해지죠~
    저희집 냉장고에도 김치가 가득해서 푸짐합니다^^

    1. 처음에 forest님은 그걸 150쪽으로 계산하더군요.
      역시 수학이 약해.

      김장이란 완전 장기 프로젝트인듯 싶어요.
      소금도 쓴맛 뺀다고 한달 전에 사놓더군요.

  3. 일주일에 서너번은 ‘김장해야 하는데~’ 소리를 들으셨을 forest님 생각을 하니
    맘이 짠해요. 남일 같지가 않구요..^^:;
    forest님 블로그에 뭔가 올라왔으면 고생하셨노라고 해드릴려고 했는데
    블로그동면에 들어가셨는지 도통 글이 안올라옵니다요.
    eastman님도 고생 많으셨어요.^^
    요렇게 인사드렸으니까 담에 김치찌개 꼭 얻어먹을거에요.ㅎㅎ

    1. forest님이 계속 일이 이어지네요.
      딸 공부시키라고 그러는 건지…

      저희 어머님이 쌀 떨어지는 거랑, 김장 못하고 있는 걸 가장 불안해 하시는 듯해요. 우리는 쌀 떨어지면 라면먹으면 되고… 로 나가는데 그게 잘 안되시는 듯.

      언제 저희 집에서 김치찌게 놓고 술한잔 하지요, 뭐. 아이들도 모두 데리고 오시구요.

  4. 아, 첫 번째 파일은 압축 때 손상되었는지 실행파일이 안보이구요.
    두 번째 파일은 CD키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하네요. -_ㅠ
    NX2 … 2는 써보지 못해서 순간 두근두근 했었는데,
    아쉽습니다. ㅠ_ㅠ

    다른 방법이 있을까요? 혹시나 있으시면 좋은데,
    없으시면 그냥 알려주세요. ^^;

  5. 너무 오랜만에 들린 동원님 블로그에는,

    김장하는 그 알싸~ 하고 맵싹~ 한 향기 뿐만이 아니라
    사람 냄새도 향긋~ 하게 퍼지고 있네요.
    아, 정말 그리운 장면입니다.

    집안이 복작복작해야 재밌을텐데.
    아이들을 좀 많이 낳아야 되지 않을까 싶어요. ^^;

    1. 저희도 아이는 하나인 걸요.
      아이 엄마가 항상 외로울까봐 걱정을 많이 하는데 그래도 아직까지는 씩씩하게 잘크고 있어요.

      김장은 보통 일은 아닌 듯 해요. 덕분에 한겨울 잘 먹긴 하지만요.

  6. 김장은 무언가를 자르고 죽이면서 이룬 ‘잔치’가 아닐까 싶어요.
    겨울의 성대한 잔치가 동원님 덕분에 무사히 치루셨군요.
    수고하셨어요. 박수 드립니다.
    먹음직스럽게 담궈진 김장김치도 사진을 올려주셨으면 좋았을텐데요.
    아, 먹고싶네요. 고향맛 나는 김장김치…

    1. 주고받는 대화가 아주 살벌했습니다.
      팍 죽이라는 등…
      다들 고무장갑을 끼고 일하는데다가 물에 손을 넣거나 김장속을 묻힌 상태라 사진을 찍을 수가 없더군요. 역시 제가 기록하면서 놀고먹는 족속으로 남아있어야 사진이 남는 거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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