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바다가 보고 싶을 때,
그리고 그 바다가 동해 바다일 경우,
내가 바다로 가는 길은 두 가지 중 하나이다.
하나는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나가 호법에서 영동으로 갈아타고
그 길로 강릉까지 간 뒤에 속초로 올라가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팔당대교를 건너 양평으로 간 뒤
홍천과 인제를 거치고 한계령이나 미시령을 넘어
양양이나 속초로 가는 것이다.
그러나 가끔 나는 그 두 갈래의 큰 길을 버릴 때가 있다.
6월 6일 12시에 집을 나선 그녀의 차에 빌붙은 나는
홍천을 지나 화양강 휴게소에서 잠시 쉬고 난 뒤에
그녀에게 큰 길을 버리고 작은 길로 들어서자고 꼬셨다.
그녀는 나의 꼬드김에 넘어가 차의 길을 상남 방향으로 틀었다.
그 뒤로 우리는 내내 작은 길을 갔다.
큰길은 속도감이 있어 우리를 빠른 시간 안에 동해까지 데려다주지만
그 길은 오고가는 차량이 많아 번잡스럽다.
아울러 큰길에선 길이 풍경을 거느리고 있는 듯한 인상이 강하다.
그에 반하여 작은 길에선 속도를 낼 수가 없지만
차량이 뜸한 관계로 한적한 여유가 우리의 것이 된다.
아울러 작은 길에선 풍경이 곳곳에 숨어있다 우리를 반기는 느낌이 강하다.
우리는 그 작은 길로 한적함을 즐기면서 가다쉬다를 반복한 끝에
7시 30분쯤에 양양의 낙산해수욕장에 들어섰다.
국도로 동해에 갈 때면
항상 화양강 휴게소에서 쉬곤 한다.
휴게소 아래쪽의 냇물에서 사람들이 골뱅이를 건지고 있었다.
골뱅이 살을 잔뜩 넣고 끓이는 올갱이국이 생각났다.
그때의 그 맛이 저 맑은 물에 씻기고 씻기면서
골뱅이 살에 배어든 맛이었구나.
화양강 휴게소를 떠난 뒤
곧바로 오른쪽으로 난 지방도를 따라 내촌 방향으로 접어들었고.
접어들자 마자 곧 고개를 하나 넘어야 했다.
그 고개를 넘자 오른쪽으로 냇물이 하나 나타났다.
냇물가에 차를 세우고 물로 내려갔다.
그냥 물가에서 졸졸 거리는 물소리에 귀를 맡기고만 있어도
그 시간이 마냥 좋았다.
한 아저씨가 물살의 한가운데서 견지낚시를 하고 있다.
보통의 낚시는 물가에 앉아 물 한가운데로 찌를 드리우고
기다림을 배우는 법이지만
견지낚시는 물살이 급한 곳에서 끊임없이
낚시줄을 풀어주고 당겨주고를 반복한다.
견지낚시는 물결의 흐름을 손끝에 느끼면서
물과 노는 낚시이다.
자연으로 나가면 많은 문양들이 있다.
바람이 쓸고 가는 강약에 따라
물위에서도 끊임없이 문양이 그려지고 지워진다.
초여름으로 접어든 진초록이 그 물결에 깊숙히 색을 입힌다.
고갯길을 올라가다 차를 세웠다.
길가의 여기저기에 아카시아 꽃들이 있었다.
아카시아 꽃은 마치 하얀 포도송이같다.
가까이 가니 향기가 진했다.
작은 길로 들어서면 내내 이런 길을 가게 된다.
작은 길에선 그냥 아무 곳에서나 차를 세울 수 있다.
한쪽 차로를 모두 차지하고 서게 되지만
지나는 차량이 빵빵거리는 법이 없다.
그냥 옆차선으로 건너가 피해간다.
한적한 길의 매력이다.
또 길은 휘어져 있지만 가운데를 가로질러
길을 곧게 펴면서 가기도 한다.
가다보면 길의 바로 옆으로 계곡이 함께 간다.
가끔 계곡 옆에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그곳에 차를 세우고 물가로 내려가면
범람하고 있는 물소리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물소리에 몸을 묻고 있다 보면
마치 물의 한가운데 들어와 있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발을 잘 디디면서 건너가면
물 한방울 묻히지 않고 물의 한가운데까지도 갈 수 있다.
물의 한가운데 자리한 바위 위에서
몸살을 앓고 있는 듯한 아래쪽의 바위를 내려다보는 것도 자잘한 재미이다.
바위는 한치의 빈틈도 없이 단단해 보이는데
그래도 여린 구석이 있는가보다.
그러고 보면 물은 참 용한 측면이 있다.
그 여린 구석을 용케도 찾아내선
그곳으로 길을 열고 있으니 말이다.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가끔 눈에 띄었지만
그들은 낚시를 하고 있다기보다
그냥 물을 거닐며
그때마다 그들을 감싸는 물결과 노는 것을 더 즐기는 듯했다.
실제로 사람들이 물 속으로 걸음을 떼어놓을 때마다
물결이 둥그렇게 그들을 감싸며 따라붙었다.
미산계곡의 풍경.
모두가 내린천 줄기이다.
내린천 중간쯤에서 시작하여 점점 위로 올라가고 있는 셈이다.
물은 언제나 산을 돌아가며
산을 질러가는 법은 없다.
그리고 그렇게 물이 산을 돌아갈 때
풍경이 만들어진다.
계곡 아래로 깊숙이 시선을 내려보냈더니
흐릿하던 눈이 그 맑은 물에 깨끗이 씻겨서 올라왔다.
미산계곡을 가다가 어리소 쉼터란 곳에서
감자전을 하나 먹었다.
그 옆의 자그마한 계곡에선
맑은 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물도 맑지만 소리도 청아했다.
내촌과 상남을 지나 미산계곡을 거친 그녀의 차는
구룡령을 눈앞에 두고 그 아랫자락에서
오대산 방향으로 난 숲길을 찾아 청도리로 들어섰다.
가는 길목에 길 한가운데 서 있는 소나무 두 그루를 만났다.
차가 뜸하고 인적도 드물어 심심하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두 그루이니
서로 지난해 가을녘의 풍경이나 여름철의 빗줄기를 떠올리며
얘기를 나누다 보면
하루해를 쉽게 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앞쪽으로 넓게 감자밭을 펼쳐든 구룡령 아랫 자락의 어느 집 풍경.
저 집에선 밤마다
땅속에서 감자가 동글동글 영그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원래는 구룡령 아랫자락에서
오대산의 월정사로 이어지는 산길을 타고 진부로 간 뒤,
그곳에서 영동고속도로로 달려가 강릉 바다를 보려고 했으나
오대산길은 7월 1일부터 개통한다고 했다.
그것도 오후 3시 이전에 와야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항상 가보고 싶었던 길이었지만
이번에도 그 꿈을 이루질 못했다.
예전에는 6월이면 다닐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 기간이 한달 늦추어져 있었다.
우리는 길을 돌아나와 구룡령을 넘었다.
구룡령을 넘자마자 그녀가 너무 피곤하다며
길가에 차를 세우고 잠을 청했다.
그녀가 잠깐 새우잠을 즐기는 동안
나는 바깥에서 꽃과 나비를 쫓아다녔다.
드디어 양양 바다에 도착했다.
남대천과 동해바다가 맞다은 곳이다.
바다는 밀려들고 남대천은 밀려나가면서
서로 뒤섞이고 있었다.
민물과 바닷물이 뒤섞이는 자리에서
그곳의 물결은 내게 한폭의 그림을 펼쳐들었다.
나는 그렇게 남대천과 동해바다가 뒤섞이는 자리에 한동안 서 있었다.
바다 바람이 쌀쌀했다.
하지만 바다가 몰려들고 민물이 몰려나가는 자리에서
나는 바람의 쌀쌀함을 잊은채
뒤섞이는 그 자리의 물결에 시선을 빼앗기고 있었다.
그렇게 뒤섞이며,
가끔 몸살을 앓으며 살아가는게
우리의 삶이지 않을까 싶었다.
오색온천에서 묵고
6월 7일 새벽 4시 30분에 한계령을 넘어 서울로 향했다.
오는 길에 한계령 중턱에서 은비령 방향으로 차를 돌렸다.
필례약수터로 이어지는 그 길은 그림같은 길이었다.
올라가는 길이 바빠 사진을 찍을 여유가 없었다.
내려가는 길에 쉬었던 화양강 휴게실에서 아침을 먹었다.
멀리 해가 떠 있었고
끝자락에 보이는 산은 안개가 흰색으로 분칠을 해놓고 있었다.
13 thoughts on “작은 길엔 한적한 즐거움이 있다 – 동해를 다녀오며”
정말이지 너무 감사드립니다!!!>ㅂ<)b 무한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절대 동원님 때문이 아니에요~^^: 동원님 덕분에 블로그에 대해서도 조금은 배웠습니다~ 아! 따로 비밀 댓글을 남겨주신곳에 가서 감동 한아름 안고 수정을 했다지요~ㅠ.ㅠ 결과로는 대 성공!! 다 동원님 덕분입니다~ 컴맹인 제가 제 힘으로 업그레이드를 언젠가는 해야지..했는데 이번 기회로 무섭게만 느껴진 업글을 해보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0.96 버전은 닫아두기로 한거에요..^^: 무튼 제가 괜히 민폐를 끼쳐드린것 같아서 더 죄송해요~ 이 은혜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ㅂ^ 오늘은 날이 참 좋네요!! 즐거운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잘되었다니 다행. 새로운 블로그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생일이셨더라구요.
미리 알지 못해서 죄송스러워요~
전에 여쭤보기까지 했었구만… ㅡ.ㅡ;;;
생신 축하드려요
선물로 받으신 렌즈로 앞으로 더 신나는 사진여행이 되시겠네요.
좋으시겠어요. 이쁜 여동생들을 두셔서…
아직 생일 아녜요.
미리 받은 것 뿐이죠.
생일은 이번 주 금요일이네요.
이번 렌즈는 상당히 좋더라구요.
역시 선생님의 글은 여전하네요..여행길의 노하우를 하나씩 훔쳐 봅니다..가끔씩 들어와 보는데 항상 읽을 게 많아 좋아요. 한참 놀다갑니다.~~^^
이번에 떠났을 때 느낀 건데 그냥 여행이라는게 별거 있나, 시간있을 때 아무데나 떠나면 그만이지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그냥 천천히 가다쉬다 하면서 눈에 띄는 것을 눈여겨 보면서 찍고, 재훈씨 같은 경우엔 기록을 하면 되는가 아닌가 싶더라구요. 자꾸만 놀러가고 싶어서 큰일이네요.
아..정말 한장 한장 모두 아름답네요.
특히 저 견지 낚시라는거 너무 매력적이에요.
어떤 종류의 물고기가 잡히는지도 궁금하고.^^
저 어렸을때 아빠랑 청평 강가에서 저런 낚시로 물고기를 잡아주셨죠.
그곳은 철길다리에서 좀 떨어진 부근이라 얕은곳이었거든요.
매운탕을 참 맛있게 끓여 먹었던 기억이 나네요.^^
아름다운 새벽길을 못찍어서 아쉬워요.
어떻게 차속에서 찍어보려고 했는데 빛이 너무 없더군요. 다음 달 제헌절 연휴 때 다시 가보려구요. 그녀가 직장을 다니니까 평일에 갈 수가 없네요.
두분의 작은 길 여행에 동참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으로 보는 풍경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한장 한장 모두가 이야기가 있는 … 아니 풍경이 절로 이야기로.. 글로
연결되어 있는 한편의 기행문 같군요.
좋은 주말 보내시고.. 전 오늘 또 일을 시작합니다.
이 내린천 부근은 강원도의 허파처럼 느껴져요.
정말 강원도 깊숙히 들어간다는 느낌이 들고 한번 들어가면 빠져나가는데 엄청나게 시간이 걸린다는 느낌이 들죠. 사실 저는 큰길을 버리고 이 길을 자주갔어요. 이제는 좀 눈에 익을 정도가 되었죠. 따님 두 분을 데리고 한번 하루 종일 이 길을 가는 것도 괜찮은 추억이 될 듯.
가다가 그냥 풍경이 좋은 곳에 차를 세우고 한두 시간씩 쉬다가 가면 되거든요. 그냥 길따라 걸으면 차길의 바로 옆에 예쁜 꽃들이 많아서 그것도 좋은 구경거리예요.
아, 그리고 두 분 따님, 지영이, 지윤이 너무 예뻐요. (이름은 맞죠?)
그냥 그 따님들만 보고 있어도 행복할 것 같아요.
우리 딸들까지 기억해 주시고.. 고맙습니다.
우리 딸들에게 김동원님을 어떻게 소개해야 할까요?
고집 센(?) 털보 아저씨..쯤..
오늘 아침에는 민주주의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봤는데..왜 갑자기 민주주의에 대해서 떠올랐는지는 모르겠지만..생각났네요. 출근길에 손석희의 시선집중을 듣다가 머리속에 스쳐지나갔지요.. 아래 생각이 떠올랐어요. 주말을 보낸 후의 자화상이라고 할까나?
난 이땅의 민주주의를 사랑한다.
민주주의란 다양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뭐에 미쳐 올인하기를 좋아한다.
민생에 올인한다.서민들이 먹고사는 것에 올인한다.월드컵에 올인한다.다 올인했다. 올인하고 나니 시쳇말로 엥꼬났다고 치자. 그 다음에 뭐하지?
빚내서 또 다른 것에 올인할 것인가? 주말내내 월드컵에 올인했더니 정신이 피폐해졌다. 몸도 망가졌다. 다양함을 잃었다.선택과 집중이 잘못되었다. 영양섭취가 너무 한쪽으로 치우쳤다. 반성해야겠다
그나마 많이 나아진 것 같아요. 나같은 몰골로도 검문안받고 돌아다닐 수 있는 것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