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슨 트랙터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2월 11일 경기도 퇴촌의 관음리에서


바깥에 버려둔 트랙터 한대.
여기저기 발갛게 녹이 슬었다.
그 밑의 버려둔 땅엔
온갖 잡초가 자욱하다.
아마 그대로 내버려두면
결국은 트랙터를 집어 삼키고 말 것이다.
기계는 버려두면 녹슬고
땅은 버려두면 질긴 생명으로 가득찬다.
우리는 그 사이에 서 있다.
끊임없이 일해야 살아남는 것을 보면 기계에 가깝다.
일하다 버림받으면 기계처럼 녹슬고 그러다 부서진다.
하지만 또 때로 버림 받아도
질긴 생명력으로 삶을 가꾸어내며 살아난다.
우린 기계이기도 하고, 또 자연이기도 하다.
그래서 기계를 좋아하기도 하고, 또 자연을 좋아하기도 한다.
우리는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또 이것이자 저것이기도 하다.
우린 알 수 없는 존재이다.

4 thoughts on “녹슨 트랙터

  1. 기계랑 사람은 참 많이 닮은 것 같습니다.
    안 쓰면 녹이 쓰는 것은 똑 같습니다.
    소는 워낭소리라도 들릴텐데
    트랙터 바퀴소리를 듣기는 힘들겠습니다.ㅜㅜ

    1. 워낭소리의 감독 인터뷰를 보니까 소도 일을 안하면 더 일찍 죽는다고 하더군요. 일하면서 오래 사는게 좋은 건지, 놀다가 일찍 죽는게 좋은 건지 잠시 헷갈리더군요.

  2. 기계처럼 일만하다 버려지는 존재일지라도 그 일 속에서 ‘보람’을 느낄 수 있다면 웃음과 행복을 누릴 수 있겠지요. 한 세상 살다가는 목숨, 전도자의 말씀처럼 ‘헛되고 헛되다. 모든 것이 헛되다’ 할지라도 기쁘게 사는 것, 살면서 좋은 일을 하는 것, 그렇게 살 수 있다면 그래도 살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요.

    1. 둘의 대비가 눈에 들어왔어요. 기계도 버려둔 것 같았고, 땅도 버려둔 것 같았는데 하나는 녹슬고 하나는 생명으로 가득차 있었죠. 언젠가 춘천의 청평사에서도 똑같은 장면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트랙터가 아니라 배였죠. 가끔 긍정의 힘마저 허무하게 느껴질 때가 있곤 해요. 내일은 그때의 배 얘기나 해봐야 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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