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구멍

Photo by Kim Dong Won
2006년 2월 7일 미사리 한강변에서


숨구멍이란 말이 있다.
내게 있어 그 말은
어렸을 적 얼음 위에 난 구멍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상하게 얼음이 온통 냇물을 덮고나면
여기저기 구멍이 나있곤 했으며,
우리는 그 구멍을 가리켜 숨구멍이라고 불렀다.
강도 마찬가지였다.
숨구멍 가까운 곳은 얼음이 얇은 편이어서
그 곁에서 발을 구르면
물이 출렁거리며 위로 솟기도 했었다.
그게 재미있어 여럿이 발을 구르다 얼음이 꺼져
물에 빠진 적도 있었다.
물론 깊이가 낮은 냇물에서나 그럴 수 있었다.
강에 갔을 때는 숨구멍으로 들여다보이는
시커먼 강의 깊이가 무서워
숨구멍 주변으론 얼씬 거리질 않았다.
물에 빠지고 나면 추운 것보다
집에 들어가서 엄마에게 혼날 걱정이 추위를 앞섰던게
우리들의 어린 시절이기도 했다.
그 걱정에 냇가에 불을 피워놓고 젖은 옷을 말리다
양말이며 옷을 태워먹어
결국은 더 크게 혼나야 했던 것이 또 그 시절의 우리들이기도 했다.
서울 살면서 몇번 롯데월드의 아이스링크에 놀러갔었다.
그곳엔 절대로 숨구멍 같은 것은 없다.
여름에도 변함없이 얼음이 어는 곳이니
그곳은 사실 일년내내 숨 한번 쉬지 않는 곳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하나도 답답해하지 않고 그곳에서 잘 논다.
그것은 우리들이 그곳의 화려함에 마취되어
그곳의 답답함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화려하지 않으면 삶을 견뎌내기 어려운 곳, 그곳이 서울이기도 하다.
그걸 생각하면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강원도의 산골 마을은
얼음도 숨을 쉬며 겨울을 건너가는 곳이었다.
우리는 여기저기 숨구멍이 나 있는 얼음판 위에서 놀았으며,
그러다 얼음이 꺼져 물에 빠지곤 했었다.
또 냇가에서 불을 피워놓고 젖은 양말을 말리다 홀라당 태워먹어
엄마에게 혼나곤 했었다.
생각해보니 얼음판의 그 숨구멍은
바로 그렇게 놀았던 우리들의 겨울을 숨쉰 것이었다.
우리가 그 숨구멍의 숨이었다.
이젠 고향에 아이들도 별로 없고
시골 아이들도 컴퓨터를 끌어안고 바깥에 나가는 법이 없다던데
우리들의 겨울을 잃어버린 고향의 그 숨구멍은
지금도 여전히 숨은 쉬며 이 겨울을 넘기고 있을까.
가끔 얼음도 숨을 쉬던 그 곳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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