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있는 풍경 – 이상열의 그림 세계 – 지상 전람회 둘째날

지상 전람회 둘째날

꽃이 핀 복숭아 나무
Oil on Canvas
45.5*33.3cm(8P)
2007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나무는
봄의 표정과 가을의 표정이 다르다.
봄의 표정은 꽃으로 그리고,
가을의 표정은 열매로 그린다.
과일 나무는 같은 몸에서 다른 표정을 내보인다.
꽃이 핀 복숭아 나무 앞에서 나는 봄의 표정과 마주했다.

만개 – 복숭아 나무
Oil on Canvas
62.5*53.0cm(15F)
2007

복숭아 나무에 꽃이 활짝 피었다.
같은 웃음이라도 웃음은 또 웃음마다 얼마나 다른 것인가.
같은 꽃이라도 그 꽃의 느낌은 하루하루 또 얼마나 다른 것인가.
처음에 복숭아 나무의 꽃에서 봄의 표정을 읽었던 나는
이번에는 활짝핀 꽃에서 또다른 표정을 마주한다.
만개하면 같은 꽃도 표정의 느낌이 다르다.

꽃구름 – 복숭아 나무
Oil on Canvas
162.0*130.3cm(100F)
2008

오규원은 그의 시 「그림과 나 3」에서 나무를 가리켜
‘몸’이 “둥글게 부풀어” 올라
‘몸이 온전히 나무로 꽉 찬” 것이 나무라고 했다.
나무가 자라 가지가 둥글고 굵은 나무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눈엔 나무가 부풀어 올라
나무를 나무로 꽉 채우면서 나무가 된다.
이상열의 그림에서
스스로의 몸을 나무로 채운 나무는
이제 꽃으로 부풀어 오른다.
꽃은 피는 것이 아니라
구름처럼 부풀어 올라
꽃으로 나무를 그득 채운다.

사월 – 복숭아 나무
Oil on Canvas
91.0*65.2cm(30P)
2007

꽃을 부풀려 나무를 그득채운 복숭아 나무는
급기야는 4월을 복숭아 나무로 그득채우기에 이른다.
그렇게 무엇 하나로 달 하나가 그득 찰 때가 있다..
가령 예를 들자면 7월은 익어가는 청포도로 그득차곤 한다.
이상열의 그림 속에선 4월이 복숭아 나무로 그득찬다.

사과나무
Oil on Canvas
53.0*41.0cm(10P)
2007

꽃과 과일은 다른 것일까.
이상열의 그림 속에서 만난 사과나무의 사과는
과일이라기 보다 꽃이다.
그가 그려놓은 사과나무의 가을엔 사과가 붉은 꽃처럼 주렁주렁 열려있다.
생각해보면 사과는 사과나무에 피었던 사과꽃의 꿈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사과엔 사과꽃의 꿈이 담겨있다.
이상열의 사과나무에선 그래서 사과와 동시에 사과꽃의 꿈을 볼 수 있다.
그의 사과가 꽃을 닮은 것은 그 때문이다.
가을은 봄에 꾼 꽃의 꿈이 영그는 계절이다.
그러므로 가을의 열매 속엔 봄의 꿈이 있다.

秋(추) – 감나무
Oil on Canvas
53.0*41.0cm(10P)
2007

어느 해 겨울 인사동 거리를 지나다
한 가게의 유리창 안에서
빨갛게 줄을 맞춰 늘어서 있는 감을 보았다.
그러나 내 눈엔 그곳에서
빨간 감에 담겨 걸음을 멈추고 있는 가을이 보였다.
나도 그 자리에서 걸음을 멈추고
한참 동안 그 가을에 시선을 뺐겼다.
이상열의 화폭 속에서 감나무를 마주했을 때,
마찬가지로 내가 본 것은 감나무가 아니라
그 감나무 앞에서 멈춰선 어느 해의 가을이었다.
나는 내가 마치 그해의 가을이라도 되는 양,
그의 감나무 앞에 멈춰서 한참 동안 시선을 뺐기고 있었다.

은행나무집
Oil on Canvas
72.7*60.6cm(20F)
2007

은행나무를 빼놓고 가을을 말할 순 없다.
이상열에게서 은행나무는 가을을 노랗게 불러세우고
그 노란 가을로 그 옆에 자리한 집의 지붕을 노랗게 칠해 가을을 수놓는다.
그 집은 분명 이 아무개나 박 아무개, 혹은 김 아무개의 집일 것이나
가을엔 그 집이 누구네 집이건 밖에 은행나무를 세워둔 집은
모두 은행나무집이 된다.
가을엔 은행나무가 물들고,
은행나무는 그 곁의 집을 물들인다.

감나무집
Oil on Canvas
65.2*53.0cm(15F)
2007

은행나무의 가을은 온통 노랗다가
그 노란 가을을 남김없이 털어내지만
감나무의 가을은 잎을 털어낸 뒤에도
허공에 붉은 점을 찍어놓은 듯한 열매로 남는다.
그 열매의 놀라운 점은
군데군데 작은 점으로 찍혀있어도
허공을 가을 정취로 물들인다는 점이다.
은행나무가 보통 집밖에 서 있는데 반하여
감나무는 대개 집안에서 가을을 붉게 물들이고 있으며,
그래서 감나무집에선 가을이 집바깥으로 은은하게 넘쳐난다.
또 바깥에 서 있는 감나무라면 담을 넘어 집안으로 스며든다.

가을 배나무
Oil on Canvas
53.0*45.5cm(10F)
2007

배나무는 가을에 이르면
배꽃이 자리하던 봄의 자리를
봄과는 다른 채색의 잎과 과일로 채운다.
이상열의 그림에서 배나무의 가을은 그 색채가 특이하다.
보통 배는 갈색 비슷한 색을 띄지만
그의 가을 배나무는 노란색을 띈다.
그것도 아주 강렬한 노란색이다.
왜 그의 가을 배나무는 강렬한 노란 색을 띄게된 것일까.
나는 그의 「가을 배나무」 앞에서 그 연유를 곰곰히 더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산이 보이는 가을 배밭
Oil on Canvas
53.0*45.5cm(10F)
2007

이상열의 가을 배나무는 개나리나 은행나무에 방불한다.
노란색으로 넘쳐난다.
색채만으로 보면 그의 가을 배나무는 봄으로 돌아간 느낌이다.
왜 그는 가을 배나무를 노란 색으로 채색하여
그 느낌을 봄으로 가져가려 한 것일까.
나는 그 의문을 갖고 노오란 배나무를 바라보고 있었다.

노오란 배나무
Oil on Canvas
53.0*45.5cm(10F)
2008

이상열은 “노란” 배나무가 아니라 “노오란” 배나무라고 했다.
“노오란”이라고 하면 “노란”의 호흡이 더 길어진다.
그의 「노오란 배나무」는 단순히 호흡이 길어진 정도가 아니라
노오란 색의 파장을 끌고 넘실댄다.
그는 왜 이렇게 가을 배나무의 파장을
강렬한 색채의 노란빛으로 가져간 것일까.
생각해보면 봄의 배꽃은 하얗다.
배꽃의 꿈은 가을에 영그는 배이다.
그 배는 노란색은 아니다.
노란색에 약간 갈색이 섞여 든다.
그 속은 하얗다.
꿈이란 그런 것이다.
꿈은 현실에 부대끼며 약간 원래 꿈꾸던 색을 잃기도 하면서 영근다.
하지만 이상열은 봄에 꿈꾼 배꽃의 가을을
그의 화폭속 배나무에선 원래의 채색 그대로 돌려주고 싶다.
바로 그때 노란색의 가을 배나무가 탄생한다.
이상열의 그림 속에서 우리가 노란 가을 배나무를 만나게 되는 연유이다.
노오란 배나무는 꿈의 원형질 비슷한 것이다.
이상열은 가을 배나무에서 그 꿈의 원형질을 보았던 것이리라.
(2008 구상대전 이상열 도록의 해설)

**블로그에 그림 전시를 허용해주신 이상열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이 전람회의 첫째날 전시 보기
나무가 있는 풍경 – 이상열의 그림 세계 – 지상 전람회 첫째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