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산에 가다 – 강화 고려산

4월 11일 토요일, 진달래산에 갔다.
다른 것은 없고 진달래만 있는 산.
아니 다른 꽃들도 있고, 신록으로 푸르러진 나무도 있지만
진달래를 보러가고, 가서도 진달래만 보게 되는 산.
우리는 그렇게 때로 아무 것도 원치 않고 진달래만 원한다.
진달래산에 갈 때, 우리가 그렇다.
한 때 어떤 여자도 원치 않고, 오직 한 여자만 원했듯이.
우리는 그렇게 진달래산에 가서 진달래만 보았다.
마치 우리들이 그녀를 옆에 두고 한 때 그랬듯이.

Photo by Kim Dong Won

산의 어귀에서 만나는 진달래는
우르르 몰려나오지 않는다.
띄엄띄엄 얼굴을 내밀고 우리를 흘깃거린다.

Photo by Kim Dong Won

우리의 인연도 그렇다.
한꺼번에 우르르 몰려나오는 것이 아니라
띄엄띄엄 스치면서 우리의 인연은 엮여가기 시작한다.

Photo by Kim Dong Won

인연은 쌓이면 처음엔 쌓일수록 아름답다.
진달래도 그렇다.
가지끝을 모두 채워
이제는 쏟아질 듯 한가득 꽃을 피웠을 때
진달래는 더욱 아름답다.

Photo by Kim Dong Won

그 아름다움은 그렇게 쌓이면서 절정으로 치닫다가
드디어 봇물처럼 터진다.
진달래도 그렇다.
가장 아름다울 때
진달래는 꽃을 피우는 것이 아니라
봇물처럼 꽃을 쏟아낸다.

Photo by Kim Dong Won

그때쯤 되면 세상은 이제
진달래의 아름다움으로 뒤덮인다.
우리도 한때 그 아름다운 세상의 한 가운데 서 있었다.
그녀와 함께 서 있으면
그곳이 어떤 곳이든 그곳은 아름다운 세상의 한가운데였다.

Photo by Kim Dong Won

세상에서 진달래가 있는 곳은
바로 그곳 진달래산뿐.
그러나 세상은 이제 진달래가 있어
모두 아름다운 곳이 된다.
진달래는 진달래산의 한귀퉁이에 있을 뿐이지만
그곳에 진달래가 있어 세상은 진달래의 아름다움으로 물든다.

Photo by Kim Dong Won

진달래가 아름다운 바로 그 시절,
분홍은 진달래가 갖고 있어
비로소 아름다운 색이 된다.
진달래산에선 더더욱 그렇다.

Photo by Kim Dong Won

저녁 햇살은 또 어떤가.
저녁 햇살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진달래의 분홍빛을 투명으로 물들이고
진달래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하루를 마감할 때이다.

Photo by Kim Dong Won

하늘도 마찬가지이다.
진달래가 발돋움을 하고
하늘을 호흡할 때
하늘의 푸른 빛은 가장 아름답다.

Photo by Kim Dong Won

우리는 잠시 착각을 한다.
진달래산에서 진달래가
세상을 분홍빛 아름다움으로 물들일 수 있는 것은
진달래가 꽃을 무수히 많이 피웠기 때문이라고.

Photo by Kim Dong Won

하지만 그 생각은 곧바로 흔들린다.
세상을 분홍빛 아름다움으로 물들이는데
꽃이 많아야할 필요는 없다.
그저 몇송이를 피워올린 진달래가
더 맑고 깊은 아름다움으로 세상을 물들이곤 한다.

Photo by Kim Dong Won

우리는 그러다 결국 한송이의 진달래 앞에 선다.
그리고는 생각한다.
세상을 진달래로 물들이고 있는
진달래산의 그 무수한 진달래는
혹 단 하나의 진달래일지도 모른다고.

Photo by Kim Dong Won

생각해보면
한 여자가 세상을 온통 아름답게 물들이던 때가 있었다.
무수히 많은 아름다운 여자가 곁에 있어
세상이 아름다웠던 것이 아니고
단 한 여자가 곁에 있었는데
그 한 여자로 인하여 세상이 온통 아름다웠던 시절이 있었다.
살다보면 우리는 그 시절을 잃어버린다.

Photo by Kim Dong Won

그렇게 살다 우리는 진달래산에 간다.
무수히 많은 진달래를 보러가는 것 같지만
우리는 사실 세상을 분홍빛 아름다움으로 물들이는
단 한송이의 진달래에 대한 기억을 더듬으러 진달래산에 간다.
지금은 펑퍼짐하게 퍼진 한 여자가
바로 그 한송이의 진달래였다는 기억을 더듬으러 진달래산에 간다.

12 thoughts on “진달래산에 가다 – 강화 고려산

  1. 저희집앞에 이쁜 꽃이 피는 나무가 있는데,
    수천만개의 팝콘이 달린것 같네요.
    사진은 찍어뒀는데, 오블이랑 호환 문제로 올리지도못하고..

    그나저나, 제 컴퓨터가 문제가 많네요.
    coconut battery로 검사해보니, 밧데리가 제 기능의 40%밖에
    기능을 못하고 (350번정도 충천한걸로 나오는데), 어제는
    제 허리 높이에서 시멘트 바닥으로 컴퓨터를 떨어뜨려서 한쪽이 우지끈하고
    찌그려져 버렸다는….. 돈도 없는데… 새로 곧 사야할 듯. 에효..

    1. 패러랠즈 하나면 거의 모두 해결되는 거 같던데…

      그 비싼 맥을 떨어뜨리면 어쩌신데요.
      하긴 저는 화가 치밀어 옛날 파워북의 두껑을 콱 닫아버리다 고장이 나서 큰 돈이 들어간 적이 있었어요.
      카메라하고 렌즈는 폼잡다가 떨어뜨려 고장이 나는 바람에 수리들어간 적도 있구요.
      저도 요즘 궁핍해서 모든 물건을 아주 조심해서 쓰고 있습니다.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거예요.
      실력을 쌓아놓았으니 좋은 곳에서 모셔갈 거예요.
      잘되길 빌께요.

  2. 저는 재작년 한여름에 고려산엘 갔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진달래꽃은 보질 못했지만 꽃이 피면 장관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정상에는 레이더 기지가 떡 하니 자리를 잡고 있어서 쪼매 거시기 했지만서도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진달래 꽃놀이를 한 것은 여수 영취산입니다.
    산이 온통 붉게 물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알려지기 전이라 오붓하게 산을 넘었더랬습니다.

    1. 시간되시면 이번 주말에 한번 가보시면 절정의 진달래와 함께 하실 수 있을 듯 합니다. 이제 많이 알려져서 평일이 아니면 한적하게 진달래와 데이트를 즐기기는 불가능할 듯 싶은데 의외로 사람들이 군락지쪽으로 내려가질 않고 전망대에서 보다가 오더군요. 땀좀 흘리면 진달래와의 호젓한 데이트도 가능했습니다.

  3. 며칠전 시아버님이랑 대화중에 고모댁이 고려산자락이라는걸 알았어요.
    여러번 다니면서도 연결시켜본적이 없었는데 횡재한 기분이에요.^^
    요즘 진달래 보려는 사람들 때문에 차도 많이 막히고
    고모댁 마당까지 주차를 해놓는 사람들이 있다고 그러시더라구요.
    다음주면 절정일것 같다고 늦은 시간 출발해서 고모댁에서 묵었다가
    아침에 올라가자고 하시는데 아주 기대가 됩니다.^^

    1. 9시 30분쯤 서울에서 출발했는데 가는데만 한 4시간 걸렸어요.
      몇년 동안 진달래 축제를 안하더니 올해는 하더군요.
      벌써 이번 주말이 절정이라고 소문이나서 아마 이번 주말은 엄청 혼잡할 듯 싶어요. 거기에 친척있으면 정말 횡재한 거예요.
      차라리 청련사에 차를 대고 백련사를 통과해서 올라가는게 낫지 않을까 싶어요. 청련사에서 백련사로 이어지는 산길이 사실은 아주 좋거든요. 좀 길어서 그렇지… 사람들이 짧은 길을 좋아하는 것 같아서 백련사쪽으로 갔다가 오히려 더 길게 걸은 것 같아요.
      지금와 생각하니 올라갔던 길로 내려오지 않고 저수지쪽으로 모험을 했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싶어요. 이번 토요일날 간다는 내 동생한테는 청련사로 가라고 했어요. 거기는 차가 들어갈 수 있도록 하더라구요.
      물론 친척집 주차장이란 횡재를 누린 분은 그리로 가시구요. 사진 기대할께요.
      아무리 진달래가 이뻐도 그집 공주들만 할까 싶어요.

  4. 털보님 부부 덕분에 어제 고려산 잘 다녀왔습니다.
    고맙습니다.
    진달래꽃에 취해 막걸리 한잔 걸치는 것도 잊고 왔지요.
    적석사로 하산하여 백련사까지 차 찾아 가느라,
    어제 안에 못올뻔 했는데 파란만장하게 간신히 탈출했습니다.

    전 내년에는 아주 오래 혼자서 걷곤하던 북한산 화개사 뒤
    진달래 능선으로 일찌감치 계획을 잡았답니다.
    꿈속에서도 다시 떠오를 진달래꽃이었습니다.
    고려산 보고서는 어줍잖은 똑딱이 솜씨지만 블로그에 올려 놓겠습니다.

    1. 차를 갖고 가서 적석사로 가시다니 대단하세요.
      강화에선 전화를 하면 택시가 오더라구요.

      전 올해 강원도 홍천쪽으로 5월 중순쯤 다시 진달래를 찾아가볼까 생각중이예요. 강원도의 진달래는 뭔가 느낌이 또 다르지 않을까 싶거든요.
      블로그에 놀러갈께요.

  5. 진달래의 색이 환상적이군요.
    진달래꽃은 무언가 여성 .어머니. 아내를
    상징하는 그리움과 추억의 꽃 아닌가요^^.

    1. 진달래로 유명한 다른 산들도 좀 가보고 싶은데 군락지로는 가본 곳이 여기가 유일한 것 같아요.
      시간이 좀 나면 강원도쪽의 군락지를 좀 찾아보고 싶어요.

  6. You are No. 1. ㅋㅋ
    I want to be No.2.
    그러셨군요, 그 여자의 기억을 더듬으러 가신거였군요.
    스토리가 있는 진달래산행, 고려산을 더욱 멋지게 만드셨네요.
    빛을 머금은 투명한 진달래, 역시 이쁘네요.

    1. Desperately Looking for No.2. ㅋ
      함께 가면 갔다온 곳을 다시 함께 나누는 즐거움이 남다른 것 같습니다. 이번 주 토요일이 완전 절정인거 같아요. 원고만 잘 마무리되면 다시 한번 가볼까 생각 중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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