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의 고려산에서 보낸 봄날의 하루

강화의 고려산이 이제 많이 알려졌나 보다.
아니면 거의 항상 평일날 그 산을 찾았던 관계로
주말에 그 산이 누리고 있었던 명성을
북적대는 인파로 확인할 기회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4월 11일 토요일, 고려산으로 향할 때만 해도
조금 시간이야 걸리겠지만 네 시간여를 길바닥에 버릴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생각해보니 네 시간은 좀 뻥이 섞여든 것 같다.
중간에 차를 세우고 점심을 먹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두 시간 여가 걸리던 그곳까지의 시간이 많이 늘어졌다.
하지만 다섯 명이 일행이다보니
가고 오는 동안 늘어지는 시간은 주고받는 얘기로 메꾸며 다닐 수 있었다.
일행을 꾸려 산을 나서면 다른 무엇보다 그 점이 좋은 듯하다.
다들 씨름하듯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아니어서 그 점도 좋았다.

Photo by Kim Dong Won

고려산은 백련사에서 올라가는 것이 가장 짧고 수월하다.
하지만 진달래 축제 행사 때문에
백련사까지의 찻길을 막고 있었다.
청련사로 갈까 말까 잠시 갈팡질팡하다가
결국 고인돌 행사장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백련사로 걸어올라가기로 했다.
언젠가 버스타고 와서 터덜터덜 걸어올라가며 기웃거렸던
백련사 아래쪽 마을의 기억이 좋게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니
가장 먼저 반겨주는 것은 진달래가 아니라
고인돌 행사장 주변의 매화이다.
막 피려는 매화는 작은 별을 품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사람들이 몰려가는 번잡한 길을 버리고 마을길로 들어섰다.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니
마을옆으로 흘러가는 개울 너머로 꽃들의 미소가 환하다.
모두 일제히 그곳으로 카메라의 초점을 맞춘다.
완전히 사진 동호회에서 출사나온 분위기가 되었다.
DSLR 세 대에, 똑딱이가 세 대였으니
사진 동호회라 불러도 무방했다.
그러고보니 같은 카메라가 한 대도 없었던 것 같다.

Photo by Kim Dong Won

자연에 일제히란 것은 없는 것 같다.
물론 일제고사도 없고.
봄이 왔다고 꽃이 일제히 피지도 않고,
산을 일제히 푸른 빛으로 물들이지도 않는다.
마을을 가다 보니
유독 일찍 푸른 잎을 먼저 내밀어
겨우내 푸른 빛에 목이 탔던 숲의 갈증을 풀어주는 나무가 있다.
우리도 신록의 그 빛깔이 취해 다들 한참 동안 그 나무에 시선을 빼앗겼다.
나무의 이름을 궁금해 했지만 아는 이는 없었다.
우리에게 그 나무는 푸른 봄나무였다.

Photo by Kim Dong Won

집의 울타리가 개나리이다.
노란색이었다가 초록으로 바뀌는 변색 울타리이다.
물론 봄의 색이 가장 예쁠 것이다.

Photo by Kim Dong Won

평탄하게 흐르는 마을길을 다 지나쳐
이제 백련사로 오르는 길로 들어설 즈음
개울 건너 밭에서 농부가 밭의 골을 고르고 있다.
그러고 보니 논이나 밭은 매번 농사를 짓기 전에
땅을 한번 깊게 뒤집어 준다.
굳어진 땅이 부드럽게 몸을 푸는 순간이기도 하다.
봄철에 농사짓는 것을 보면
세상도 주기적으로 뒤집어 주어야 할 것 같다.

Photo by Kim Dong Won

나무 한그루가 봄볕에 갓익혀 내놓은 연두빛 신록으로
가지 사이를 가득 채워놓고 있었다.
눈이 시원했다.

Photo by Kim Dong Won

길 아래쪽 계곡으로 물이 흘러가고 있다.
어지럽게 얽힌 나뭇가지 사이로
연신 졸졸거리며 갈길을 재촉한다.
물은 아래로 흘러가는데
물소리는 가지들 사이를 헤집고
자꾸만 우리들이 있는 곳으로 올라온다.
물소리는 올라오며
여전히 겨울잠에 취해있는 앙상한 나뭇가지들을 흔든다.
계곡은 봄을 맞으러 아래쪽으로 흘러가면서
물소리를 계곡에 채워 봄이 왔다고 나무들을 깨우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나무 한그루가 가지를 운치있게 뻗어
그림 한 점을 그리고 있다.
가지에 매단 꽃으로 보면 매화 같았지만
매화가 이렇게 큰 나무도 있나 싶어지면서
그만 나무 이름에 자신이 없어진다.
꽃이름 매화를 몇번 내밀었다 도로 거두어들였다 했다.
가을쯤 와서 매실이 달렸는지 보면 확실하게 알 수 있을텐데…
왠지 여기 고려산은 봄에만 오게 되는 듯 싶다.

Photo by Kim Dong Won

올라가는 사람보다 내려가는 사람들이 더 많다.
우리가 많이 늦긴 늦었나 보다.
이제 백련사 턱밑까지 왔다.
주차장에서 이곳까지 1시간넘게 걸렸으니
우리의 걸음걸이가 그다지 산행을 재촉하는 속도는 아니다.
하긴 올라오면서 꽃들이란 꽃들에게 죄다 눈길을 한번씩 주면서 왔으니까.

Photo by Kim Dong Won

이상한 점은 하나는
꽃이란게 마을 어귀에서 쉽게 만난 꽃보다
그래도 한참 발품을 판 뒤에 만나는 꽃이
더 예뻐보인다는 점이다.
한참 올라온 뒤에 진달래를 마주했더니
갑자기 그 미모가 돋보이기 시작했다.

Photo by Kim Dong Won

날은 좀 흐렸다.
4월의 날씨가 청명한 경우는 드문 것 같다.
고려산을 찾았을 때 날씨가 아주 좋았던 경우는 그다지 기억에 없다.
시간이 오후 늦은 시간으로 기울어지면서 하늘이 점점 벗겨지기는 했다.
거의 정상에 다와서 내려다 본 고려산 모습이다.
3분의 1 가량 꽃이 핀 것 같다.
진달래는 고려산의 북쪽 사면으로 피어 있다.

Photo by Kim Dong Won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남쪽의 모습이다.
맞은 편 산의 허리를 타고 마을로 내려가는 길엔
벚나무가 계속 이어진다.
벚꽃이 피면 이 길도 매우 아름답다.
흐린 날씨가 적당히 뭉개준 윤곽 때문에
산들이 겹치면서 만들어내는 풍경의 느낌이 아스라하다.
아스라한 풍경은 그리움과 잘 어울린다.
무엇인가 그리운 듯 마을과 산을 내려다보며 잠시 쉬었다.

Photo by Kim Dong Won

정상에서 진달래의 최대 군락지로 내려가서
진달래 터널까지 가보았다.
마치 자궁 속으로 들어가듯
터널 속으로 들어가 본다.
내가 들어가서 잠시 앉았다 나오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궁,
바로 진달래 자궁이다.

Photo by Kim Dong Won

진달래 자궁 속에 앉아
진달래와 함께 푸르게 벗겨지고 있는 하늘을 호흡해본다.
흡흡.
하늘은 푸르고, 진달래는 분홍빛이다.
숨쉴 때마다 두 색이 내 속에서 뒤섞였다.

Photo by Kim Dong Won

올해는 진달래 축제 행사 때문에
곳곳에 친절하게 안내판들이 서 있었다.
사람들도 모두 안내판이 가리키는 곳으로 몰려간다.
안내판이 길이 없다고 하면
멀쩡하게 길이 있어도 사람들은 그리로 가질 않는다.
우리는 내려오다 안내판이 가리키는 길을 버렸다.
“어, 그쪽으로는 길이 없다는데…”
“길 없으면 다시 돌아오면 되지요, 뭐.”
사람들은 아무도 따라오지 않는다.
하지만 이전에 왔을 때 챙겨둔 길이다.
그 길로 내려오다
넘어가는 저녁 햇살과 얼굴을 부비며
헤어지는 하루를 아쉬워하고 있는 진달래를 만났다.
그 날 본 진달래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진달래이기도 했다.
해는 멀리 산 위로 기울기 시작하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올라갈 때 들르지 못한 백련사에 들렀다.
절의 한켠에서 진달래가 미모를 뽐낸다.
분홍빛이 아주 고왔다.

Photo by Kim Dong Won

이제 내려가는 길이다.
출입통제가 풀렸는지 간간히 승용차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사람들이 워낙 많이 붐벼
주말엔 차량을 통제하는 것이 잘한 일로 보인다.
예상에 없이 백련사에서 먼 곳에 차를 대고
길고 오래 걸은 탓인지
이때쯤 다리와 발에 뻐근하게 신호가 온다.
그래도 이상하게 내려가는 길은 걸음이 가볍다.

Photo by Kim Dong Won

매화인지 아닌지 밀었다 당겼다 했던
그 나무의 아래쪽 계곡에서 새 한마리가
목욕을 하고 있었다.
혹시 전생의 선녀?
선녀처럼 색깔이 곱기는 했다.

Photo by Kim Dong Won

마을로 다 내려오자
개울가 뚝에 개나리가 줄지어 노랗게 걸려있다.
개울물이 노랗게 물들었나 내려다 보았지만 물은 투명했다.
노란 개나리가 물에 뚝뚝 떨어져 있는 풍경도 참 아름다운데…
이런 참, 활짝핀 꽃앞에서 질 때를 생각하다니.
그렇지만 지면서도 아름다운 것을 보면
역시 아름다움은 꽃의 것이 아닌가 싶어졌다.

2차와 3차가 좀 길어져서 12시 넘어서 집에 들어왔다.
올해는 어느 봄날의 하루를 진달래산에서 좋은 사람들과 보냈다.

***고려산에서 만난 진달래는 다음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진달래산에 가다 – 강화 고려산

12 thoughts on “강화의 고려산에서 보낸 봄날의 하루

  1. “자연에 일제히란 것은 없는 것 같다” 표현 너무 조타~
    정말 자연은 그러한데… 뭐라 표현할 길이 없었는데~ 가끔 도용해도되죠? ^^

  2. 사진동호회분들 참 진지하군요.
    누군 배가 안나왔다고 좋아하더군요.
    저녁빛을 받은 연보랏빛 백련사 진달래가 환상적이네요.
    담엔 만개할즈음 저 진달래터널에 들어가봐야지요~

    1. 배가 나온 사람이 있었나요?
      제 견해로는 서서 아래를 내려다 보았을 때 발이 안보여야 배가 나왔다고 말할 수 있는 건데…ㅋ
      활짝피면 능선 중간쯤의 진달래밭도 저 정도가 되는데 우리 간 날은 아래쪽으로 내려가지 않으면 진달래에 몸을 묻었다 오기가 어렵게 되어 있더군요.
      지난 사진들 보니까 예전의 맨흙길일 때만은 못했어요. 사진을 보니 활짝 피었을 때가 가장 예쁘긴 예쁘더군요.

  3. 진달래 자궁이라… 전 사진을 보며 그움직임 따라 흐느적 한번 해봤는데요!
    춤추는 진달래… 진달래 군무입니다!!! 이쁘네요~~~

  4. <오직 한 여자만 원했듯이. 우리는 그렇게 진달래산에 가서 진달래만 보았다.>

    분명 간절했을터인데, 왜 그리 쉽게 잊고 그런적이 없었다고 스스로 최면을 걸며 사는지, 이렇게 어리석으니 인간이겠지요. 기회가 되면 다음주 금요일 쯤 진달래 보러 다시 한번 가려구요. 얼추 많이 졌겠지요. 혹시 동원님이 가시거든 진달래들 보고 <얼음,땡>을 크게 외쳐 주세요.

    1. 고려산에 가면 다른 무엇보다 항상 사랑을 생각하게 되는 거 같아요. 그 분홍빛 물결이 사랑을 일깨우는 듯. 5월 중순쯤 강원도 홍천으로 한번 가볼까 생각 중이예요.

  5. 저는 적석사로 올라가서 백련사 쪽으로 내려오려고 했는데
    정상에서 하산길을 잘못 들어 이름없는 곳으로 내려왔답니다.
    사람 다닌 흔적을 쫓아가면 어느새 속세로 통하더라고요.
    인물 사진들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시면서 부지런히 찍으신 것 같습니다.

    1. 길은 다녀보니까 적석사에서 진달래 능선으로 갔다가 백련사로 내려와선 청련사로 빠져나가는 것이 가장 좋은 것 같습니다.
      그렇게 간 적은 없고 절마다 제각각은 다녀봤어요. 적석사는 해지는 걸 찍으려고 올라가서 낙조봉에서 일몰을 찍다가 온 적이 있었죠.
      모두 뭉쳐 다니질 않고 되는대로 모였다 흩어졌다 하면서 산을 갔어요. 어떤 때는 혼자고, 어떤 때는 둘이가고, 함께 모여 쉬기도 하고… 다들 카메라를 갖고 자기 좋은 것 찍더라구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