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미술관 2009 봄 전시회 – 겸재 정선

Photo by Kim Dong Won
서울 성북동의 간송미술관에서

산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풍경은 대체로 정적이다.
굳어있다는 말이다.
그 풍경이 바위로 이루어져 있을 때는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금강산의 기암괴석들이
처음부터 그 상태로 빚어져 있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수천년에 걸친 풍화나 융기를 통하여
그러한 형상으로 빚어졌을 것이다.
즉 그것은 사실은 변화의 산물이다.
그러나 그 변화는 속도가 너무 느려
우리가 그 변화의 동적 움직임을 감지해 내기는 매우 힘들다.
그 때문에 우리의 눈에 대부분의 풍경은 굳어있다.
겸재 정선의 산수화는 그것을 뒤흔든다.
그의 그림 속에선 금강산의 기암괴석들이
마치 지금 화폭에서 일어설 듯이 솟아오른다.
사진은 그러한 동적 느낌을 담아낼 수가 없다.
정선의 그림은 그런 측면에서 그림의 존재 이유를 알려준다.
사진으로 고양이 사진을 찍으면
고양이를 사실적으로 전달할 수는 있지만
고양이의 털이 금방이라도 일어날 듯한 느낌 같은 것은 담아내기 어렵다.
그러나 그림은 고양이를 그리면서
사진처럼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경우에도
그냥 고양이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한계를 넘어
고양이의 털이 금방이라도 일어설 듯한 느낌을 담아낸다.
말하자면 동적 움직임을 정적 그림 속에 담아낸다.
그런 측면에서 그림은 표현의 경계가 사진보다 크게 위이다.
정선의 그림은 그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리고 그게 그림의 존재 이유이다.
성북동에 있는 간송미술관이
5월 17일부터 보름 동안 일반에게 문을 연다.
이번 전시회는 겸재 정선의 작품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사진은 찍지 못했다.
전시된 작품들의 도판을 갖고 있긴 한데
미술관에서 도판과 원본 작품을 비교하면서 보았지만
도판은 원본의 느낌을 전하지 못하고 있었다.
역시 그림은 미술관에 가서 원화를 직접 보아야 한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그림에서 도판은 거의 아무 소용이 없다.
한번들 가서 보시라.
누천년에 걸쳐 축적된 자연의 움직임을,
혹은 자연에서도 접할 수 없는 자연의 동적 느낌을
화폭 속에서 생생하게 접할 수 있다.

Photo by Kim Dong Won
서울 성북동의 간송미술관에서
겸재화파전
겸재 서거 250주년 기념
화파전이란 겸재 작품 뿐만 아니라
영향을 받은 화가들의 작품도 전시한다는 뜻

6 thoughts on “간송미술관 2009 봄 전시회 – 겸재 정선

  1. 앳되게 젊은 시절에는 동양화가 주는 감흥이 별로였습니다.
    색채가 강렬하지도 않고 주위에서 본듯한 풍경이라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점점 세월이 지나고 나니 그림 속에 내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 느낌이 들더군요.
    그림 너머에 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 보게 됩니다.
    그 얘기가 엉뚱해도 다 들어주고 있는 여유가 느껴집니다.

    1. 저도 최근에 와서야 눈을 뜨는 것 같습니다.
      산에 자주 가지만 산에 간다고 산을 넘어서는 것은 아닌데 그림은 산의 그림을 통하여 산의 너머를 보게 해줍니다. 동양화는 특히 그런 점이 강한 듯 합니다. 신윤복과 김홍도 때보다 더 느낌이 강렬하더군요.

  2. 예의 붓글씨로 손수 쓴 포스터(?)가 붙었군요. 오늘부터 전시인줄 알고 대학로에서 연극보고 들러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늦어져서 안갔는데 헛걸음할뻔 했군요. 보름이 되기 전에 간송미술관에 갔다가 권진규 아뜰리에에 들렀다 와야겠어요. 생전에 그렇게 좋아했다는 해바라기를 한송이 사서요. 성북동은 참 좋은 동네예요. 연우 소극장 있는 골목에서 후배랑 이사할 궁리했어요. 골목있는 주택가로…

    1. 좋아하실 거예요. 김홍도와 신윤복은 정조 때 사람이고 정선은 그보다 앞선 영조 때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영조의 그림 선생이었다고 들었어요. 지나다가 슬쩍 줏어들었죠. 100점이 전시되어 있는데 대부분이 정선의 그림이었어요. 지난 번 김홍도와 신윤복 전시 때 초록색으로 대상을 사진처럼 묘사한 비슷한 스타일의 그림이 있었는데 그때는 받지 못했던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그림이 사실의 세계를 어떻게 넘어가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더라구요. 오랜 세월에 걸쳐 축적된 움직임을 한 화폭에 담아낸 풍경을 볼 때는 하루 전에 함께 보았던 일주암 생각이 났어요. 그림은 자연 앞에 서도 보기 어려운 오랜 세월의 움직임도 보여줄 수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죠.
      KBS에서 촬영나왔는데 라이트는 켜지 못하게 하더라구요. 산수화라 익숙한 지명들이 자주나와서 그것도 보는 재미를 남다르게 해줘요.

  3. 저에게 하시는 말씀같아요^^
    이름에서 뭔가 품위가 느껴지는 간송미술관.
    살아있는 그 움직임이 어떠한가 가봐야할거 같아요.
    알려주셔서 감사!

    1. 정선 작품과 함께 정선에서 영향을 받은 화가들 작품도 나왔어요. 그 미묘한 차이들을 비교하면서 보는 것도 재미나더라구요. 사실 자연에 가서도 못보는 것을 그림이 보여주곤 하는 것 같아요. 특히 정선 같은 대가의 작품은 더더욱 그런 느낌이 생생하구요. 한 세 시간 동안 1, 2층 오르내리며 감상하다 왔지요. 오늘 다리좀 아프네요. 이번에는 서화는 없고 완전히 그림으로만 전시를 하더라구요.
      전문적인 설명이 있기는 한데 전 그냥 내 느낌대로 봤어요. 전문적인 설명도 재미나더군요. 그림이라 가서 볼만합니다. 서화는 좀 어려운데 그림은 아무래도 부담이 좀 덜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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