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에서 수건이 말라간다.
빨아서 갓 넌 수건은 아직은 기분이 우울하다.
수건의 기분은 만져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좀 축축하다 싶으면
그건 지금 기분이 우울한 상태.
만져서 뽀송뽀송하다면
그건 지금 기분이 아주 업되어 있다는 뜻.
수건의 축쳐진 기분을 달래주는 데는
햇볕만큼 재주가 뛰어난 녀석도 없다.
오늘 바깥엔 햇볕이 지천이다.
하지만 마당을 뒤덮은 넝쿨장미 때문에
녀석은 여느 때처럼 제 맘대로 수건을 넘보지 못하고 있다.
2층의 탁트인 베란다 시절,
햇볕은 수건이 내걸리기만 하면
모든 수건이 제 차지라도 되는 듯
이 수건 저 수건 가리지 않고 지분거리곤 했었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다르다.
넝쿨장미 사이의 빈틈을 어렵게 비집고
마당으로 내려온 햇볕은
오늘은 어쩐 일로 이 수건 저 수건을 힐끗거리지 않고
오직 가운데의 노란 수건에게만 눈을 맞춘다.
그 순간 노란 수건의 표정이 환하다.
기분이 마구마구 업되고 있는 것이 눈에 보인다.
햇볕이 이 수건 저 수건 지분거릴 때는
수건들의 얼굴을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좋은 건지 떨떠름한 건지 표정을 읽을 수 없었는데
오늘 오직 노란 수건하고만 눈을 맞추자
노란 수건의 표정만 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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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thoughts on “햇볕과 수건 2”
이 사진과 글을 보지 않았다면 저는 널어놓은 수건에도 표정이 있다는 걸 절대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영원히~ㅋㅋ
아, 진짜 가운데 노란 애는 표정 진짜 밝고 생기 발랄이고,
맨 앞에 있는 애 표정 진짜 심란합니다.
지난 번 장미가 피었을 때도, 이번 수건 이야기에서도 2층의 베란다가 왜 이리 아쉬운 걸까요. ^^
그녀도 이층의 베란다를 무척 아쉬워하는 얘기를 오늘 문득 꺼내더군요. 그곳에서 맞던 햇볕을요. 햇볕은 나가면 골목에 지천인데… 2층 베란다의 햇볕이 그렇게 특별했었다니… 언젠가 대학로 뒤쪽의 낙산을 어슬거리며 사진을 찍을 때 유독 옥상이나 뜰안. 혹은 골목의 담벼락에 걸어놓은 빨래들이 자꾸만 눈길을 끌어 사진을 찍었는데, 그 사진들을 다시 들여다 봐야 겠어요. 햇볕이 어떻게 옥상을 기어오르고, 또 뜰안으로 잠입하고, 또 골목으로 비집고 들어와 빨래들과 만나고 있었는지요. 또 어떻게 바람의 입을 빌어 서로 속삭이고 있었는지요.
근데 댁들, 이렇게 내 영감을 자극해도 되는 거예요.
이제 14시간정도면 집사람이 오네요.
방금 비행기에 탄 것 같은데..
저는 깨끗한 집 보여주려고 오늘 종일 청소하고, 빨래하고..
저도 수건 두장 오늘 빨았죠.
아, Safari 4.0 설치했는데, 빠르고 좋네요.
우리도 아내 없을 때 집안일좀 해놓고 그러는 걸 배웠어야 하는데… 사랑이 그런 작은 것을 자양분으로 먹고 자라는 거란 생각이 들어요.
뜨거운 사랑의 재회가 되시길.
집안일 가운데 비교적 남자들이 하기 쉬운 게
수건 널고 개는 게 아닌가 합니다.
건당 만족도도 거의 으뜸이고,
게다가 부피가 있어 폼도 조금 나니까요.^^
손에 들면 햇볕 냄새가 인다는 표현, 참 좋군요.
개면 반듯반듯한 것도 매력인거 같아요.
다른 빨래는 개는 것도 어렵더라구요.
오늘은 수건이 말간 표정을 지을 수 있는 날이네.
수건이 우울하다는 표현, 참 좋다.^^
생활 속에서 이런 글이 나오는 거 보면 당신이 주부같어~^^
글쎄… 이건 체험이 아니라 관찰의 결과라서…
체험이었다면 아마도
내 그대에게 해주려는 것은
꽂꽂이도 아니고
벽에 그림 달기도 아니고
사랑 얘기 같은 건 더더욱 아니고
그대 없는 사이에 해치우는
그냥 수건 빨래일 뿐.
손에 들면 햇볕 냄새가 일 정도로
잘 마른 수건들
하나하나 정갈하게 개어
그대가 꺼내기 좋게 정리해 놓는 것.
장마비 잠시 그친 틈을 타 창을 조금 열고
우리 모르는 새 부쩍 자란 마당의 비비추
꽃대를 세워 올해는 꽃을 피울 준비를 하고 있는 작은 화단에서
땅의 가슴에 꽃의 눈짓을 보내기 시작했음을 알아내는 것.
그대를 일터로 보내고 난 뒤
아직 돌아올 시간이 많이 남은 마당의 햇볕 속에서 겁도 없이.
뭐 요렇게 되지 않겄나.
황동규를 요렇게 이용하는 방법도 있구나…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