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 처음 만났을 때,
이름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았어.
네가 엉겅퀴라고 스스로를 소개했을 때,
난 엉겨붙다를 떠올리고 있었어.
또 엉거주춤이란 말도 떠오르더군.
하지만 어느 말도 네겐 어울리지 않았어.
넌 절대로 내게 엉겨붙는 법이 없었고,
엉거주춤한 우스꽝스런 자세도 보여주는 법이 없었어.
오히려 내가 좀 가까이 가서 손이라도 잡아보려 하면
그 연한 초록빛 손에 날카롭게 가시를 곤두세우더군.
난 그래서 네겐 오히려
가시나물이란 이름이 더 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지.
실제로 넌 자신을 엉겅퀴가 아니라
가시나물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어.
난 항상 이해할 수가 없었어.
어떻게 그렇게 손의 가시를 곤두세우며
날 곁에 오지도 못하게 하는 네가 그렇게 아름다운 얼굴을 가졌는지.
그러다 어느 날, 알게 되었지.
너의 그 아름다운 얼굴이
그냥 얼굴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사실은 너의 고운 마음에서 나왔다는 것을.
그날 난 네 주변을 맴돌며 입술이라도 맞댈 기회를 엿보다가
결국은 네 앞에서 넘어지고 말았지.
무릎은 까지고 피가 나왔어.
그 날 넌 네 몸을 짖이겨 내 상처에 너를 발라주었지.
놀랍게도 내 무릎의 피는 금방 멈추고 말았어.
그 날 난 알게 되었지.
네 이름이 그렇게 피를 엉겨붙게 하는데서 나왔다는 것을.
그 이름이 네게 가장 잘 어울리는 이름이란 것을.
또 나는 알게 되었지.
너의 그 아름다운 얼굴이
피흐르는 나의 상처가 안타까워 제 몸을 짖이겨 내주는
너의 고운 마음에서 피어난 것이란 것을.
**엉겅퀴는 상처에서 피가 날 때 짖이겨서 바르면
피를 멈추어주는 지혈 효과가 있다고 한다.
**엉겅퀴를 주제로 한 또다른 글
엉겅퀴
엉겅퀴 씨앗과 바람
4 thoughts on “엉겅퀴 2”
엉겅퀴가 그런 효과가 있었군요.
여태까지 피가 나면 아까징끼가 최곤 줄 알고 있었는데…
이름이 엉큼하다고 마음까지 엉큼한 것은 아니라는 걸 모르고 있었습니다.
정선갔을 때 곤드레 나물 키우는 밭을 봤는데 그것도 엉겅퀴의 일종이라더군요. 언듯 봐선 엉겅퀴인줄 잘 모르겠더라구요. 뭐든 한철 같이 지내보아야 알 수 있는 듯 합니다.
이 글을 좀더 숙성시켜보면 한 편의 시가 될 것 같어.
쟤가 예쁜 이유가 그런 것이었구나.
나는 쟤가 입고 있는 보라색 옷이 예뻐서 좋았는데…^^
후후, 여기까지가 저의 한계입니다.
그래도 눈이 밝으시군.
이걸 시로 보질 않으니 말이야.
요건 사실은 시적 변주라는 것이거든.
마치 어떤 얘기의 음악적 변주나 미술적 변주가 있듯이.
엉겅퀴의 이름에 대한 유래를 읽고 있다가
이걸 시적으로 변주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적은 글이라네.
나는 변주는 어느 정도 하는데 창작은 잘 못해.
그래서 비평을 시작한 것이기도 하구.
그러고 보니 이 글이 시적인 것과 시의 구별에 대한
좋은 예가 될 수도 있겠네.
사람들은 엉겅퀴의 이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건조한 글은
시가 아니라는 걸 금방아는데
그걸 시적으로 변주해놓은 것은 시와 잘 구별을 못하지.
사람들이 그 구별을 잘 못해서
명바구 같은 놈을 대통령으로 뽑았을 수도 있는 것 같기도 하구.
대통령이 될만한 놈과 절대로 대통령이 되어선 안되는 놈도
가끔 잘 구별이 안가거든.
시와 시적인 것이 헷갈리는 세상이 항상 문제인 듯.
뭐 그게 어제 오늘의 문제는 아니지만 요즘은 그게 더욱 심각해.
그러고보니 내가 얼떨결에 글을 한편 쓰면서
요즘 사회를 생각해볼 수 있는 글을 한편 쓰긴 쓴 거네.
나는 내 무의식 속에 저항의식을 갖고 있는 가봐, 후후.
근데 생각해보니
맨 마지막에 한마디 덧붙이면 시가 될 것도 같아.
흐흐흐, 근데 이게 시로 보여? 라고 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