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니는 우리 집 강아지 이름이다.
녀석은 틈만나면 바깥으로 뛰어나가 동네를 헤집고 다니다가
그래도 집만한 곳이 없다고 생각하는지 항상 집으로 기어들어온다.
물론 일부러는 내보내 주는 법이 없다.
때문에 녀석은 항상 우리의 빈틈을 노리며
그러다 우리가 어쩌다 잠시 주의를 놓는 짧은 빈틈을 놓치는 법이 없다.
하지만 꼭 돌아온다.
어떨 때는 문이 잠겨 있으면
문밖에서 계속 집안을 기웃거리며 문이 열릴 때를 기다린다.
간혹 집밖을 돌아다니다가 목이 말랐는지
집으로 들어오자 마자 물그릇에 코를 박고 정신없이 물을 들이킬 때도 있다.
바깥은 사실 물 한그릇 얻어먹기도 만만찮은 세상이다.
그런데도 천방지축이라 아무리 밖에 나가지 말라고 해도
전혀 말을 듣지 않는다.
그렇게 대니는 항상 들어오면서도 끊임없이 바깥을 꿈꾼다.
바깥에 대한 그 끝없는 욕구와 함께
대니의 또다른 버릇 하나는
집안 사람과 집밖의 사람을 귀신같이 구별한다는 것이다.
대니는 그 구별을 짖는 소리로 그어준다.
집안 사람들은 낑낑대는 소리로 맞는다.
그 낑낑 소리에는 반가움이 묻어 있다.
집밖의 사람들에겐 멍멍 짖는다.
그 멍멍 소리에는 경계심과 공격성이 묻어 있다.
그 때문에 집안 사람이 들어올 때의 소리와
집밖의 사람들이 골목을 지날 때 대니가 짖는 소리는
완연히 구별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니가 짖으면
“저 놈의 개새끼, 왜 짖고 야단이야”라는 반응을 보이며
대문을 한번 걷어차고 간다.
대니의 짖는 소리가 호의적이 아니란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리는 것이다.
그것이 그동안 바깥 사람들이 보여준 일반적 반응이었으며, 전혀 예외가 없었다.
그런데 아주 특이한 반응을 보여주는 사람이 나타났다.
새로 이사온 앞집 여자이다.
그 여자도 개를 키운다.
아주 애지중지한다.
남의 집 개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대니는 골목에 누가 지나가면 그게 누구냐에 관계없이
전혀 차별을 두지 않고 짖어댄다.
물론 그 여자도 차별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여자의 반응은 다른 사람들과는 남다르다.
그 여자는 말한다.
“어머, 어쩜 날 알아보고 짖니.”
마당에서 담벼락을 넘어온 그 얘기를 들은 나는 다소 어처구니가 없었으며,
실소를 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쟨 항상 저렇게 짖는데…
하지만 사실 그건 이미 어느 정도 예견이 된 일이긴 했다.
이사 오던 날, 마당을 기웃거리다가 개를 좀 보면 안되겠냐며 들어온 그 여자는
개가 낯선 사람은 무니까 조심하라고 했지만
그래도 자신에겐 호의를 베풀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대니에게 손을 내밀었다.
대니는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렸다.
내가 대니에게 그러지 말라며 앉으라고 하자 대니는 얌전히 앉았고,
나는 대니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때 그 여자는 이렇게 반응했다.
“어머, 아저씨를 무서워하는 구나.”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어릴 때부터 길러온 집안 사람들과의 인연과
그 인연을 매개로 하여 이루어진 대니의 복종을
나에 대한 두려움으로 해석을 하다니.
대니는 나 뿐만이 아니라 우리 집 식구들 앞에선
누구 앞에서나 얌전하게 앉아주곤 한다.
그 짧은 순간의 어처구니 없는 반응 때문에
나는 처음 얼굴을 마주친 그 순간부터
이미 그 여자에게서 미묘한 이상징후를 감지하고 있었다.
그 뒤로 우리는 말을 섞지 않았으며, 얼굴을 봐도 그냥 지나쳤다.
그 여자에 대한 내 느낌은
그 여자가 개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개를 안간힘으로 부여잡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 여자에겐 인간은 별로 믿을 존재가 못될 것이다.
비록 개를 보러 들어오는 것이긴 했지만
자꾸만 대문을 열고 불쑥 마당으로 들어오는 것이 부담이 되어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딱 잘라버린 우리가 어떻게 믿음이 가겠는가.
의심많고 온정없는 인간들에 불과할 것이다.
그 여자에겐 세상에 개만큼 믿을 만한 것이 없다.
그러나 내게 그 여자의 개에 대한 그 한없는 애정은
애정이라기보다 안간힘으로 개를 붙들고 있다는 인상이 강했다.
그 여자는 개가 보여주는 자신에 대한 반응은 모두 호의적으로 해석하고
개가 보여주는 다른 사람에 대한 반응은 모두 부정적으로 해석하여
세상의 모든 개들을 자신을 중심으로 편재한다.
나의 입장에선 참으로 놀라운 재능이 아닐 수 없다.
대개의 사람들은 그렇질 않다.
개가 짖는 소리에서 그것이 호의적이 아님을 귀신같이 알아챈다.
오늘도 또 어떤 녀석이 대니가 짖는다고 대문을 걷어차고 갔다.
그러나 대니는 똑같이 짖는데
그 여자에겐 그것이 자신을 알아보고 짖는 반가움이다.
참 속은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로 안간함으로 개를 부여잡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 뭐, 저렇게 위안이 되니… 대니야, 지나갈 때마다 잊지말고 짖어주렴.
그 여자에겐 내가 개만도 못할 것이란 씁쓸함이야 있지만
그 여자를 대책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까칠한 내가
뭘 해줄 수 있는 것도 없지 않겠니.
가끔 세상은 네가 나보다 더 큰 위안이 되는 구나.
하긴 대니가 조금 낯이 익으면
그때부터 크게 사람가리지 않는 것은 나보다 낫다.
가끔 나는 개만도 못하다.
뭐, 그래서 사람인 것이긴 하지만.
2 thoughts on “대니와 앞집 여자”
인간과 비교 당하는 개 입장에서 보면 참 억울할거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뻑하면 나와 비교한다고요.
개만도 못한 인간과 그렇지 않은 인간으로 구분되는 걸로 봐서는
개라는 존재는 인간의 영원한 평균점입니다.
녀석이 귀찮은지 이제는 지나가도 짖지도 않더군요.
개는 그저 충성과 본능 사이에 있을 뿐인거 같아요.
충성은 주인몫이고, 그 이외에는 거의 본능인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