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집에 들어왔을 때

iChat 캡쳐 화면
왼쪽은 들어왔을 때, 오른쪽은 나갔을 때

집은 종종 기다림의 자리이다.
때로 그녀가 날 기다리거나
또 때로는 내가 그녀를 기다린다.
우리는 밖에서도 기다림의 자리를 펴고
누군가를 기다릴 때가 있으나
그때의 기다림은 집에서의 기다림과는 좀 다르다.
집에서의 기다림은 대개는 약속되어 있지 않은 기다림이다.
때문에 집은 딱히 기다리지 않아도 되지만
그러나 우리는 집에선 대개 밖에 나간 사람을 기다린다.
그 기다림은 처음에는 기다림이지만
일정 시간을 넘기면 걱정으로 전환되는 기다림이다.
걱정은 또 일정 시간을 넘기면
이번에는 울화로 전환이 된다.
그 기다림과 걱정의 대상이 항상 때맞춰 우리의 곁으로 돌아와
기다림과 걱정을 지워주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우리는 하염없이 기다리고 걱정해야할 때가 있곤 하다.
그것은 마치 정확히 시간을 맞추어 놓은 자명종처럼
이상하게 일정 시간을 넘기면 고개를 들고
어김없이 우리를 걱정 모드로 몰아넣는다.
곁에 두고 기다리고 걱정할 수 있으면 그래도 다행이다.
그 기다림의 대상이 멀리 떠나면 그 때부터는 기다릴 수가 없다.
기다릴 수 없는 대상은 걱정과 함께 불안이 된다.
잘 지내고 있을까의 우려 속엔 불안이 함께 뒹굴고 있다.
그 걱정과 불안은 대상이 눈앞에 나타나면
즉 집으로 들어오면 해소가 된다.
그러나 바다 건너 멀리 있는 딸은 집으로 들어올 수가 없다.
이 기계 문명의 시대는
그 딸이 집을 들고 나는 것을
마치 우리의 곁에서 들고 나는 것처럼 느낄 수 있도록
가상의 집을 만들어준다.
그러니까 아이가 묵고 있는 곳에 들어와 컴퓨터를 켜면
내가 사용하는 메신저 iChat이 아이가 들어왔음을 알려준다.
나가면 아이는 회색의 아이콘으로 처리된다.
처음에 iChat은 아이와의 소통 수단 중 하나였지만
이제는 멀리 있으나 들고남을 알려주는 매개체가 되었다.
들어와 있는데 Away로 되어 있으면
컴퓨터를 켜놓고 잠이 들었나 보다는 짐작도 할 수 있게 되었다.
iChat은 심지어 상대방이 현재 몇 시간째 컴퓨터를 켜놓기만 하고
사용은 하고 있지 않다는 것도 알려준다.
Idle time이라고 하는 기능이다.
그냥 아이가 들어오면 이상하게 그때부터 안심이 된다.
거의 하루 종일 바깥에서 생활하니 바깥이 위험할 것도 없지만
우리는 모두가 집에 돌아와야 안심을 한다.
집은 모두가 돌아와 한자리에 모이면 안심이 되는 공간이다.
물론 하루 종일 집에서 뒹굴어서 기다림이 완전히 뿌리가 뽑혀도 걱정일 듯 싶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기다려도 걱정이고, 기다림의 뿌리가 뽑혀도 걱정이다.
기다림과 적절한 걱정이 어울리고,
그 걱정이 화로 전환되기 직전에 해소되는
적절한 타이밍의 삶이 우리에겐 가장 이상적인 셈이다.
인생, 참 쉽지가 않다.
그 딸이 지금은 집에 와서 잠시 곁에 있다.
놀러가도 같은 나라 안에 있다.
나라 안이라면 어디나 내 집인 듯 싶다.
잠시 아이를 곁에 두었을 때의 행복을 실감하고 있다.

Photo by Kim Dong Won

2 thoughts on “딸이 집에 들어왔을 때

  1. 어느 외국 사이트에 고양이가 마실을 자주 다니니까 카메라를 목에 걸어놓고 2분마다 자동으로 찍게 만들어 놨다고 하데요. 그래서 고양이가 본 세상이라는 블로그에 사진을 올린 것을 봤는데 우리와는 전혀 다르게 고양이의 눈높이에 맞춰진 사진을 보고 이런 세상도 있구나 했습니다. 기계 문명이 고양이 눈으로 본 세상을 알려주고 있더군요. 이제 기계가 생활과 철학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