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일본으로 돌아가기 하루 전,
외할머니댁을 찾았다.
할머니는 댁에 없었다.
그녀가 엄마 엄마 소리치며
아파트 여기 저기를 돌아다닌다.
우리 딸이 웃으며 말한다.
“엄마 엄마 소리치면 나오시는 거예요?”
놀랍게도 그렇게 잠시 뭉개다가 정말 할머니를 만났다.
항상 일본에 홀로 떨어뜨려 놓은 아이를 안타까워 하면서
자식을 일본에 떨어뜨린 우리를 독하다고 하셨던 할머니는
우리가 집안으로 들고 나자
건넌 방으로 건너가 무엇인가 주섬주섬 챙기신다.
그리고는 문지에게 건넌 방에서 챙겨온 것을 건넨다.
“네가 일본으로 떠날 때 내가 아무 것도 손에 쥐어주질 못해 마음이 아펐어.
그래서 제사 지낼 때마다 준비하라고 준 돈을 모았단다.”
할머니의 쌈지돈이었다.
그렇지만 쌈지돈이라고 하기엔 액수가 너무 크다.
외할머니가 문지에게 건넨 돈은 액수로 자그마치 70만원에 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할머니는 “백만원을 채워주질 못하는 구나”라고
오히려 아쉬움이 크시다.
한참 동안 옛 이야기 하신다.
문지가 할머니 손에 이 아파트에서 6개월을 컸고,
그때 동네 사람들에게 아빠가 안고 오는 아이로 통했다는 얘기며
아이 하나로 끝냈다고 동네 사람들이 모두 아쉬워했다는 얘기였다.
내가 말했다.
그게 둘째를 임신하긴 했는데 몇년째 계속 임신 5개월째예요.
도대체 애가 언제 나올지 모르겠어요.
그녀가 날 째려보며 한마디 한다.
아니, 여기가 누구의 홈그라운드인지 모르고 그런 얘기야?
난 눈치를 살피면서 실실 웃는 허허실실 전법으로 그 위기를 넘어간다.
할머니의 얘기는 계속된다.
너네 엄마가 학교 다닐 때 책밖에 몰랐단다.
우리 이웃의 선생이 이 동네에 학생 같은 애는 네 엄마밖에 없다고 했었다.
실상을 아는 우리는 우헤헤 웃는다.
할머니에게 딸의 엄마는 그저 공부만 하던 어린 날의 그 모습에서
한치도 변함이 없다.
사실은 그 변함없이 간직하는 딸의 모습이 어머니의 전형적인 사랑이다.
딸이 어떻게 변해도 어머니 가슴 속의 어린 시절 딸은 변함이 없다.
할머니는 그 딸의 딸에게서 아이 엄마를 보는 듯 싶다.
사랑은 딸을 너머 그 딸의 딸에게까지 흘러 내려오고 있었다.
사랑은 딸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딸의 딸에게까지 이어진다.
12 thoughts on “외할머니의 쌈지돈”
난 갈 때마다 엄마가 늙어가시는게 넘 슬퍼 ㅜ.ㅜ
하긴 나두 그 돈은 좀 놀라웠어.
엄마에게 그 돈은 정말 큰 돈인데 말이야…
너가 병원에 데려간거 문지한테 이르실 때가 제일 귀여우시더라.
문지가 받은 돈은 네가 열심히 갚아.
손녀 팔을 꽉 붙잡고 안 놓아주시려는 듯한 할머님의
가득한 사랑을 문지도 늘 기억하며 살겠지요.
온통 사랑으로 크는 아이 같아요.
많은 사람들에게 받은 사랑, 나중에 여기저기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며 살아가도록 빌어야겠어요.
누구보다 문지엄마 완전 감동이었겠네요..
외할머니의 극진한 막내딸 사랑이 손녀에게로 스르르 흘러간거 아닐까요?
겉으론 “아니구 시끄러워” 하시지만요.
정겨운 3세대 풍경입니다~
할머니가 손녀보고는 신이 나셔셔 “글쎄 너네 엄마가 내가 치매라고 병원을 다 데려가지 않았냐”고 이르기까지 하셨어요. “나보고 치매걸릴 때까지 살라고 그래라” 하시면서 정정함을 과시했죠. 사실 문지 어릴 때 기억을 또렷이 끄집어 내서 놀라긴 했어요. 아이 엄마가 임신했을 때 수박 좋아했던 것도 기억하고 그때 잘 먹질 못해서 아이가 작게 나왔고 울지도 못하더란 얘기하며… 물론 제가 내가 안고 있을 때는 하루 종일 울어서 아주 골치가 아팠었는데 너, 도대체 아빠한테 있을 때만 왜 그렇게 울었냐고 딸아이를 힐난했지만요.
외할머니의 쌈지돈…
저도 어려서 외할머니 손에 자라서 그런지 외할머니와 정이 남달랐어요.
제가 시집갈때 외할머니가 건네주신 두툼한 봉투에
사십만원이라는 거금이 들어있었어요.
백만원은 채워주려고 했는데 그렇게 못하셨다고 어찌나 서운해 하시는지요…
버스정류장 근처 아무데나 엉덩이 붙일데만 있으면 눌러앉아
집에서 해간 호박이며 고구마순 같은걸 팔아 모은 피같은 돈이었을텐데 말이지요.
아침부터 맘이 짠합니다.
저는 외가는 외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대부분이예요. 항상 굵은 밤을 모아 두었다가 제게 주셨죠. 외가집 아이들이 질투할 정도로요.
그녀가 “엄마, 손녀한테는 이렇게 큰 돈 주면서 왜 내가 자동차 기름 한번 넣어달라고 하면 그건 안해줬어?” 하면서 투정좀 부렸어요. 장모님이 돌려준 대답은 “아이구 시끄러워” 였지요.
오.. 가슴 뭉클.
장모님의 손녀 사랑이 찡하게 느껴지네요.
이제 따님이 또 한국을 떠나시면 적적하시겠어요.
그럴 때 막걸리라도 한잔 대접해야하는데..
딸도 크게 감동한 듯 보였어요.
내가 돈이 어디 있간디… 그래서 제사 준비하라고 받은 돈을 모았단다… 하시는데 문지도 감동한 듯.
문지가 일본에서 사온 떡이 마침 장모님 입에 딱 맞아서 장모님도 날 위해 이걸 사왔냐고 감동한 눈치였어요.
물론 이걸 어떻게 그렇게 멀리 떼어놓고 사냐고 또 한 말씀 하셨지만요.
아나, 요즘 파업 중이라 댓글 달면 안되는데…
너무 뭉클하잖아요. 눈가에 습기…
어머님, forest님, 문지 너무 아름다워요.
장모님과 어머니는 스타일이 완전히 다르지만 손녀 사랑은 똑같은 거 같아요. 어머니가 마지막날인데도 깨우지 말고 재우라며 일찍 일나가셨거든요. 그녀가 엄마 엄마 부르며 아파트 돌아다닐 때, 저는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엄마찾아 음메, 울상을 짓다가… 하고 노래를 불렀어요. 장모님 애기를 듣다보니 그 동네에도 딸의 추억이 참 많이 서려 있더군요. 딸은 거의 기억 못하고 있는 기억이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