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만 뜨면 되는 밥상 앞에서

Photo by Kim Dong Won

내가 그녀보다 일찍 집을 나서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 며칠 전 오전에 일이 있어 내가 먼저 집을 나갔다.
수많은 사람들이 겪는 그 아침 출근길에 동행하여
1시간30분 거리를 지하철을 타고 갔다가 볼일보고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니 시간이 점심 때를 갓 넘기고 있다.
그런데 식탁이 차려져 있다.
식탁에 메모까지 한 장 있다.
“밥만 떠서 먹어!”라는 문구가 곧장 눈 속으로 뛰어든다.
그 문구만으로도 감격적인데
작은 사랑까지 그 밑에 곁들여 놓았다.
마구 감격하려고 하면서 반찬 뚜껑을 열다가
발밑에서 시작하여 엉덩이를 거치고 가슴을 찌릿하게 울린 뒤
정수리에 이를 것으로 보였던 감격이
그만 무릎 정도에서 그 상승세를 꺾고 말았다.
이거, 뭐야.
반찬이 죄다 일본으로 떠나는 딸에게 해주고
조금씩 남겨놓은 것들이다.
이게 그녀에게 감격하고 고마워해야할 일인지
아님, 방학 때라고 다녀간 우리 딸에게 감사해야할 일인지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한다.
감사를 둘에게 나누는 수밖에 없었다.
그대, 상 차려줘서 고마워.
딸, 고맙다. 너 때문에 한끼 얻어먹었다.. ㅋㅋ

11 thoughts on “밥만 뜨면 되는 밥상 앞에서

  1. 밥만 떠서 먹으라니.. 반찬은 먹지 말란 말이야?
    전 또 뭐 그런 반응이셨을줄 알았다눈….ㅋㅋㅋ

    오늘의 오자…
    때를 갖 넘기고 있다. >>>> 때를 갓 넘기고 있다…. ㅎㅎ

    1. ohnglim님/ 원래 forest님이 오자 찾기의 달인이라 항상 서비스를 해주곤 했는데 이제는 바깥에서 서비스를 받는 군요.
      고마워요.

      forest님/ 복수를 한 사람만 해서 다행이야. 복수를 두 사람이 하면 복수(revenge)가 복수(plural)가 되거든. 그럼 정말 골치아퍼져. ㅋㅋ

  2. 고도의 전술로 반격을 시작되었따!!ㅋㅋ
    글을 읽고 forest님의 메모 글씨를 다시 보면요 글씨체가 약간 약올리는 듯 해요.
    글씨체 자체에서 뭔가 함정이 느껴진다니까요.
    이제 슬슬 반격이 시작된거라고 사료되옵니다.
    (은근 forest님의 반격과 반격에 대한 반격을 기다리고 기대하고 있는 1人 ㅎㅎㅎ)

    1. 아무래도 lari님께서 부부 간의 사랑 깊은 글대화를
      시샘하는 것 같군요.
      사정을 잘 모르는 제 눈엔 정겨운 부부 간의
      말 없는 사랑차림으로만 보이는데요.^^

    2. iami님 께서 이 두 분 댓글 배틀의 진수를 못보셔서 그래요.
      그걸 보시면 당장 저한테 응원하시고 싶으실걸요.ㅋㅋㅋ
      빨리 제 쪽으로 붙으세요. 같이 힘을 모아보시자구요.ㅋㅋㅋ

    3. 이거 웬지 쌈구경에 신날 준비하는 거 같습니다.
      우리가 한번 싸우면 그 앞에 있던 사람들이 다시는 싸우지 말아야지 하고 결심하는 아주 좋은 효과는 있습니다.

    4. 것도 한 라인으로 그린게 아니라
      오른쪽으로 반, 왼쪽으로 반을 그려
      서로 머리를 맞댄 모양이란 거 아니겠어요.
      감각이 있는 건지, 그냥 아무 생각없이 저렇게 되는 건지,
      그걸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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