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씨 둘이 있었죠.
가을이 완연하게 익어갈 때쯤
그 두 풀씨는 한해 동안 자란 대궁의 끝에서 탱글탱글 씨앗으로 영글어 있었죠.
다른 풀씨들이 모두 가까운 곳으로 몸을 날려
땅밑으로 몸을 묻고
내년 봄에 파릇파릇한 풀로 피어날 꿈에 젖을 때
두 풀씨는 전혀 다른 꿈을 꾸었죠.
그건 바로 세상을 여기저기 떠돌고 싶다는 꿈이었어요.
그러나 그건 한 자리에 붙박힌 운명을 살아야 하는 풀에겐 불가능한 일.
한해 내내 자신이 피어난 자리를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는게 풀의 운명이란 걸
두 풀씨도 아주 잘알고 있었죠.
그러나 한번 가슴에 안은 두 풀씨의 꿈은 그 걸 알고도 지워지질 않았어요.
아예 처음부터 막다른 골목에 서 있는 꿈은 포기도 쉬운 법인데
두 풀씨는 그 막다른 골목에서도 꿈을 버리질 못했어요.
그 꿈으로 매일매일을 엮고 있던 두 풀씨에게
어느 날 생각하나가 불현듯 머리를 스쳐갔죠.
그건 바로 어느 뱃전으로 날아가 그 뱃전의 한 귀퉁이에 몰려있을
옹색한 흙먼지 위에 뿌리를 내린다는 거였어요.
그러면 비록 그 옹색한 한줌의 흙으로 살아야 하는 삶이
종종 주린 배를 움켜쥐어야 할 정도로 힘겹기 이를데 없겠지만
그래도 그 배가 바다로 나갈 때면
함께 세상을 떠돌 수 있을 것 아니겠어요.
그 생각이 머리를 스치던 날 두 풀은 날듯이 기뻤죠.
그리고 바람이 몹시 불던 날,
두 씨앗은 정들었던 씨앗의 자리를 버리고 바람을 타고 둥둥 날아올랐어요.
날아가다 드디어 배를 발견하고 두 풀씨는 그곳으로 내려앉았죠.
그리고는 그곳에서 잠이 들었죠.
봄까지 이어진 달콤한 잠이었어요.
봄에 드디어 두 풀씨는 그곳에서 풀로 피어났어요.
이제 세상을 멀리 볼만큼 키가 자랐을 때
두 풀은 가슴이 떨렸죠.
매일매일 바뀔 세상의 풍경에 가슴은 콩닥콩닥 뛰었어요.
하지만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분명 물살이 옆으로 끊임없이 이어지는데
배는 꼼짝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았어요.
주변의 풍경은 어제도 오늘도 항상 똑같았죠.
그래요, 그건 배가 아니라
사실은 배와 비슷한 작은 바위였다지요.
아니, 세상에 무슨 이런 일이 있는 거지요.
꿈에 부풀어 내려앉았던 그 배가 바위였다니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그런게 다 세상사는 우리의 삶 아니겠어요.
어찌보면 세상을 떠도는 삶은
한해내내 제가 태어난 자리를 한치도 벗어나지 않으며
매일매일 보는 주변의 것들과 새록새록 정 쌓으며 살아가는
풀의 삶을 꿈꿀지도 몰라요.
중요한 것은 꿈을 이루는데 있다기 보다
무엇인가를 꿈꾸는데 있는 건지도 몰라요.
자신이 떠나려고 하는 자신의 삶이 남들의 꿈일지도 모르니
실제로 꿈꾸던 어떤 삶을 이루고 못이루고는 중요한게 아닌 거 같아요.
그래서 두 풀은 이제 바람이 전해주는 세상 소식을 들으며
자신들이 뿌리내린 작은 바위 위에서
마치 어딘가를 향해 둥둥 떠내려가고 있는 듯한 상상에 젖으며
평생을 행복하게 살기로 했답니다.
평생을 세상을 떠돌며 살아야 하는 바람이
가끔 그 바위 위에서 잠시 휴식을 청했다가 그대로 잠들기도 했어요.
흐르는 물의 냉기로 더위를 식히며
풀냄새에 아래서 잠시 달콤한 잠에 빠졌던 바람에겐
그곳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곳이었죠.
바람은 깨어나면 아쉬워하면서도 그 두 풀씨의 꿈을 안고 다시 세상으로 날아갔어요.
그게 또 바람의 운명이니까요.
그 바위는 이제 바람에겐 달콤한 안식의 자리였고,
풀에겐 여전히 꿈의 자리였어요.
8 thoughts on “풀씨 이야기”
블로그에 게재된 사진을 보니 우리 아이들의 사진이 어떻게 찍혔을까 너무 궁금합니다.
제가 모든 사진을 다 찍어두지는 않고 방문할 때마다 글의 소재가 되겠다 싶은 장면만 찍어두고 있습니다. 그날 찍은 사진 중에 자라남 교회와 관련된 사진만 뽑아서 아래에 올려놓았습니다.
http://kdongwon.mine.nu/sharing/20060708/
김동원님 지난 7월8일 나눔의 집에서 뵜었지요?
부산에서 학생들을 데리고 왔던 자라남 교회 목사입니다.
사진과 글의 내용이 마음을 훈훈함을 느낍니다.
자주 들려서 좋은 글 읽고 좋은 사진을 가져가도 되겠지요?
안녕하세요.
학생들이 우리의 아픈 역사에 관심을 갖는 것을 보니 아주 흐뭇했었습니다.
이끌어주시는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정말 그렇군요.
제가 보는 안목이 이렇게 짧고 좁습니다.
풀잎의 보금자리가 되어준 든든한 바위죠..그쵸..^^
아이들과 아내가 그 품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잖아요. 또 편찮으신 부모님도 모신다고 들은 것 같기도 한데, 그렇다면 풀잎이 내려앉은 작은 바위가 아니가 넓찍한 품이죠. 게다가 항상 달리면서 도전하고 있으니 아주 든든한 분이구요. 항상 행복한 가정이 될 거예요.
안녕하세요? 강 영석 입니다.
‘에위니아’가 무섭게 쳐들어오고 있답니다.
바위 위에 저 풀잎처럼 아슬아슬 한게 요즘 저의 모습 같군요.
선명하게 잘 조화된 아름다운 사진 잘 보고갑니다.
“바위 위의 풀잎”이 아니라
“풀잎의 보금자리가 되어준 든든한 바위” 같은 느낌이었는데…